부산, 비 막이 열리고 시작되는 7명의 음악여행

by 탈고

비가 내릴 수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날의 아침. 습할 만큼 습했지만, 기상청에선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였기에 당당하게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공연리허설이 있는 장전동이 아닌, 경성대학교로 향했다. 이유는 촬영 감독인 찬영(전찬영. 뭐없네 프로젝트 촬영 감독)이가 경성대학교 연극 영화과이고 학교에서 장비를 빌렸기 때문. 그곳을 향하는 지하철은 밖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장대 같은 빗줄기의 절망스러움을 조금 미룰 수 있었고, 여행 전 마지막 만남이자 리허설이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경성대와 부경대가 자리한 대연동은 언제나 친근하고 반가운 곳이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나의 모교 또한 경성대학교였기 때문이다. 3년 반, 학교 밖 세상에 관심이 많았던 시간이었고, 빚내어 꾸역꾸역 다녀왔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2015년 중순, 큰 결심 하에 자퇴를 했다. 부모님의 떨군 고개 밑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죄송함과 부담감이 수반된 선택. 바닥을 더듬거리며 출구를 찾던 2015년, 그 어두웠던 터널의 중간쯤에서의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터널 끝은 보일 기미가 없었다. 그나마 손전등 같았던 ‘학생 신분’도 버린 터라 앞이 캄캄했다. 아마 자퇴를 하고 빈집에, 빈방, 빈 이불 안에서 하염없이 고개를 떨구고 하루, 이틀을 보내던 그 시절도 오늘처럼 비가 많이 왔었다. 잘 풀릴 거라는, 일이 주어 질것이라는, 기회가 올 거라는, 그리고 비가 그칠 거라는 희망하에.




어느 정도 집은 탈출했다고 생각하는 요즘도 소낙비는 끈질기게 온다. 오늘같이 장대비가 퍼붓는 날이면 어릴 적 친구들과 진지하게 나눈 이야기들을 생각나게 한다. 하느님의 눈물이니, 오줌이니 하는 수많은 가설을 주장했던 그때. 과학 시간에 배운 그것보다 비가 오는 날은 그때의 이야기가 먼저 생각난다. 요즘도.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을 나오는 길에 그때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하느님은 왜 눈물을 그치셨느냐는 짧은 생각에 잠겼고, 이네 비도 피해 뛰겠다는 다짐으로 정신없이 학교를 향해 달렸다. 오늘은 소나기도 아니기에 하느님은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IMG_2876.JPG
IMG_2888.JPG


촬영장비는 꽤 많다. 촬영을 위해 준비한 카메라만 4대, 삼각 다리 두 개. 가볍게 말하지만, 카메라를 담은 집은 그리 가볍지 아니기에… 다행히 양또형(양재동. 뭐없네 프로젝트 아티스트)의 집이 근처이고 차를 소유한 유일한 사람이기에 우린 떨어지는 비를 피하면서까지 장전동에 갈 필요는 없었다.

서로의 우산 틈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공유하며 전달에 전달하는 장비와 손들의 이음. 차에 구겨 넣고 몸은 더 작게 구겨 넣고 나니 막막했던 빗소리가 꽤 듣기 좋게 차 안의 음악과 어울렸다.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와 Radiohead의 ‘High And Dry’, 그리고 양또형이 매일 다닌다는 도시고속도로 위, 차들의 와이퍼들. 하나같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우리가 줄지어 나누었던 손등의 빗방울만큼이나 차 안의 오감도 따뜻한 조화를 가지고 있었다.


IMG_2898.JPG
IMG_2963.JPG



카마그라드(장전동에 있는 양또형의 작업공간이자 합주실)에 도착하니 손은 더 많아졌다. 이미 와있던 대한이 형과 관훈(이관훈. 뭐없네 프로젝트 아티스트)이 그리고 민지(김민지. 뭐없네 프로젝트 아티스트)가 얼른 나와 짐들을 나누어 옮겼다. 때마침 비도 그쳤고. 멀리서 현애도 인사하며 나의 한 짐을 뺐어 들었다. 처음으로 모든 맴버가 다 모이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누군가의 슬픔과 고뇌가 걷어지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연극의 암막처럼 비는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기다림의 벽이 아닐까… 학교를 자퇴하고 하는 일 없이 이불 속, 그 터널을 기어 다니던 시간이 생각났다. 내방 창문에 떨어지는 빗소린 오늘처럼 좋게 들리진 않았었다. 그리고 내 손과 이어 잡을 그 누구의 손도 없었다. 문 받은 불안과 눈치의 가시방석이었다. 그런 시간이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지 아직 가늠하기 어렸다. 하지만 그 덕에 카마그라드에 옹기종기 모여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이 더없이 단 건 확실했다. 쓴 약을 먹고 고사리에 쥐여주는 어릴 적 엄마의 사탕처럼 달았다.





나에게 이번 여행의 의미를 묻는다면 질겨지기 위함이고, 그래서 끊어지지 않는 줄 하나를 만들어 오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오늘 비를 맞는 나에게 의미 있는 뜻 하나를 던져주듯, 이번 여행도 앞으로의 미래에 큰 뜻을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물론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한이형은 다른 지역의 아티스트들과 많은 소통을 할 거라 말하며, 과거 부산을 찾은 서울의 기획자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김없이 힘찬 즐거움이 가득했다. 현애는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초창기 의미를 잘 안고 꼼꼼하게 지역마다 무대를 준비했다.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민지, 음악을 하며 받아온 상처와 발목에 단단히 묶인 족쇄에게 너그러운 치유와 자유를 가지고 올 수 있을까. 그리고 무대 위에서 자신의 곡을 처음 선보이게 될 관훈이. 앞으로 더 많은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으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영화제나 또 다른 촬영현장의 기회가 생겼으면 좋을 찬영이.




저마다 간직한 이야기도 다르고 여행을 하고자 하는 의미도 다르다. 하지만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짐들처럼, 나누어 맞잡으면 결국 하나의 이어짐이 된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할 여행의 이야기는 각자의 새로운 기록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어 이어나갈 막의 시작이다.

keyword
탈고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프로필
팔로워 125
작가의 이전글여행을 떠나기 전, 늦어진 겨울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