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생각으로 자리 잡은 건 여간해선 몸 밖으로 빼내기 힘들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마치 어떤 영양분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들은 평소엔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있다.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압도할 정도의 제어장치로 변하곤 한다.
예를 들자면 절벽에 서서 바다를 향해 다이빙하는 영상을 본다고 치자. 우리는 어딘가에서 언젠가 뛰어내린 기억을 가지고 온다. 억지가 아니다. 그 숨 막히는 간질거림은 찰나의 순간에 번쩍하고 그냥 느껴진다. 그리고 강한 바람이 불던 어느 순간을 더 한다. 그리고 시원한 바다에 빠진 기억도 더 한다. 그럼 나도 모르게 “으!”라는 소리를 내지르며 다이빙하는 듯, 모든 감각을 긴장시키곤 한다.
휴가란 그런 생각 하나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바다, 계곡, 워터파크 뭐 등등.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세상 찝찝함을 온몸으로 빨아들일 때, ‘풍덩’하고 빠졌던 물의 온도. 모든 더위와 찝찝함은 쓸려가고, 청량감 가득해진 피부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의 감촉. 백종원 님이나 수요미식회가 한 번쯤은 다녀간 맛집. 또는 숯불에 구워 먹은 삼겹살과 소주의 맛. 그 생각들로 우리는 휴가가 끝난 후의 일상을 버티곤 한다.
이번 나의 휴가는 거제도였다. 조선업이 휘청하고 약 2년이 지나서인지 사람이 없었다. 휴가철인 이유도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떠나고, 타지사람들은 유명관광지 몇 곳에 몰려있었다.
즉흥적인 여행을 선호하는 나로선 정보 검색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유명 관광지고 나발이고 고현, 옥포, 장승포, 해금강. 이 네 단어만 어디서 주워듣고 무작정 갔다. 숙소 예약은 그냥 어딘가 잘 곳이 있겠지 했다.
첫날, 옥포항에 들어섰던 순간의 느낌이 여전하다. 그 조용함과 침착함. 뻘뻘 흘린 땀조차 일순간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숨죽여있었다. 사람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옅은 파도 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배 부딪치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바다는 원래 조용한 곳이다. 부산에 살며,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말은 필요 없다. 공허한 공기를 뚫고 들리는 잔잔한 물소리면 모든 설명이 가능한 곳이 바로 바다라는 곳이었다.
두 번째 날은 장승포였다. 포구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차는 감상이 감정으로 바뀌는 시간을 방해하기에 도보를 택했다. 선택은 탁월했다. 해안도로 밑으론 아직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숨은 해변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그곳엔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흔히 sns에서 보던 해외의 에메랄드빛 해변이 거기 있었다. 수경을 끼고 뛰어든 바다 안에선 손바닥만 한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칠 수도 있었다. 가끔은 먹는 건가 싶어 따끔거리게 나를 쪼기도 했다.
바다 안에서 그들과 이질감이 없었다. 그곳에선 말을 할 수가 없다. 듣지도 못한다. 서로에게 소통의 방법이 사라지니, 그냥 움직이는 데로 바라보고 이해하게 된다. 하늘과 바다, 절벽과 숲. 나의 모든 감각이 닫는 공간에 사람은 나뿐, 그 외의 생명만이 나를 포위하고 있는 이름 없는 해변에선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자유로웠을까. 존재의 특별함을 위해 소리칠 방법도, 이유도 없어서.
그래서 좋았던 걸까. 타인에게 나의 특별함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어서.
가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보았을 때 경외심이라는 걸 느끼곤 한다. 두려움과 존경, 공포와 환희가 뒤섞인 그 경외감을 세 번째 날의 해금강에서 느낄 수 있었다.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해금강의 단단하고 기괴한 절벽과 암석들은 불가능함을 단정 짓고 있었다. 인간이 제아무리 다양한 지식을 쌓고, 많은 경험을 해서 거대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미(美)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인간에겐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 모두 공평하게 분배된 불가능함. 죽음을 맛보기 전이라고 한들 영생이 불가능하단 것쯤은 누구나가 알고 있으니, 수긍할 수밖에 없는 공식이다.
생각은 퇴적물처럼 점점 쌓이기 마련이다. 경험이 하나, 둘 늘어 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생각의 지층도 두터워진다. 우리의 삶은 그 지층 위를 여행하는 짧은 순간일지 모른다. 계속해서 걸어가다 언젠가 그 지층의 기괴한 절벽과 암석, 수평선이 있는 끝과 조우하는 순간. 그런 마지막 순간을 위한 여행 말이다.
모두는 언제가 그 마지막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나의 끝에 조우하게 될 풍경이 경외감이 들 정도로 아름다울지, 아니면 조악하게 꾸며진 억지스러운 아름다움일 지는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축적하면서 살아가는지에 달려있지 않을까.
우리 각자의 이번 여름휴가는 어떤 생각을 쌓으며 끝이 났을까. 각자 일상으로 돌아갔을 우리를 버티게 해줄 그 생각들을 지금이라도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