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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쌤 카이지 May 10. 2023

급한 일도 없는데 내 말이 더 빨라지는 이유

말 많이 하는 당신이 '불통'인 이유 Vol. 5

#'폴리 폴리'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선 어딜 가나 "하쿠나마타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뜻입니다. 너무나 유명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잘 알죠. 이 못지않게 많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폴리폴리~"입니다. '천천히, 천천히'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말은 그 나라 사람들의 성격을 대변합니다. 또 그 말이 사람들의 성격을 만들어 가기도 하죠. 그래서 그런지 탄자니아 사람들 몸엔 '조급함'이 어 있지 않습니다. 느긋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덕분에 휴가차 방문한 여행객들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한 때를 즐깁니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가 국가 브랜드(?)입니다. 한국을 아는 외국인들,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감사합니다"라며 말을 건넨 뒤 "빨리빨리"라는 말로 웃음을 짓게 합니다.


엘리베이터는 '닫힘' 버튼만 표시가 지워져 있습니다. 자판기가에서 커피가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투입구에 손을 넣죠. 전자레인지가 작동하는 1분 30초를 못 참아서 '30초 카운트 다운'을 손잡이를 잡고 합니다. 그나마도 3초 남기고 문을 엽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결제할 때 카드 서명은 카운터에서 직원이 대신해주는 게 오히려 좋습니다(?). 컵라면이 익는 시간 3분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급한 성격이 말에도 묻어난다


"잘했어! 이번엔 좀 제발 천천히 다시 해볼까?"


수습 방송 기자들은 입사한 뒤 '오디오 교육'을 받습니다. 기사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비중 있게 배우죠. 시청자들에게 똑 부러지는 발음과 발성으로 기사를 읽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디오 교육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뭘까요?


"천천히 하라"는 말입니다. 정말 30초에 한 번씩은 합니다. 발성 톤을 잡을 때, 정확한 발음으로 교정할 때, 전체 문장을 읽으면서 연습할 때도 가장 큰 장애물은 '속도'입니다. 기껏 잡아놓으면 돌아서서 평소처럼 흘려 말해버립니다. 발음은 뭉개지고 꾹 눌러 놓았던 습관들이 다시 튀어나옵니다.


천천히 말을 하게 만드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데도 이렇게 고쳐지지 않는데 평소 대화는 오죽할까요? 성격이 급해 말도 빠른 사람들에게 '말 천천히 하기'는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선 고치기 힘든 습관입니다.



#'내 말'만 빠르게 내달리면 상대가 안 보인다


말을 빨리 하려면 해야 할 말도 많아야 합니다. '삼천포'로도 이야기가 몇 번 빠졌다가 "어디까지 얘기했지?"라고 하면서 돌아오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을 신경  여유가 없습니다. 결국엔 의사소통이 아닌 혼잣말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말 욕심'이 큰 경우도 많아서 상대방의 말을 진득하게 끝까지 잘 듣지 못합니다. 중간에 싹둑 잘 끊습니다. 그 사이 머릿속에 할 말이 가득 쌓였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면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일단 본인 이야기가 먼저입니다. 미세한 표정도 잡아내서 상대의 심리를 파악해야 설득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내 말하기에 바쁘면 아무것도 안 보이겠죠.


상대를 존중하고 이야기의 주인공을 상대로 두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는 방법을 짚어보고 있는데요. 결국 말을 빨리 하는 습관 역시 본인 중심의 대화법인 것입니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말을 할 때도 있다


대화를 하거나 어떤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할 때,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한 질문이 계속 나오거나 예상치 못 한 반응이 나왔을 때, 난감한 내용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될 때 우리는 당황을 합니다.


이런 경우 평정심을 잃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합니다. 생각을 고른 뒤 상황을 대처해야 하지만 무턱대고 말터 나옵니다. 충분히 고심한 말이 아니라 내가 봐도 어색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황이 더해지면서 말은 더 빨라집니다.


화가 났을 때도 비슷합니다. '성격' 말고 말을 빠르게 하는 요인은 '감정'입니다. 감정이 요동치면 본인도 모르게 '방어 기제'가 발동합니다. 이 때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빨라집니다.


숱하게 겪는 경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결과가 어땠나요? 말이 더 꼬이거나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하게 됩니다. '그 말은 하지 말 걸' 이런 생각이 들 땐 이미 그 상황은 끝난 지 오랜 뒤입니다.


말이 빨라지면 조급함이 밖으로 드러납니다. 절대 말은 '혼자' 빨라지지 않습니다. 눈빛이 흔들리고 표정도 굳습니다. 입만 움직이죠. 입에서 처리하는 대사량(?)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더 많은 말을 생각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당황을 하거나 화가 나면 제일 먼저 '사고 정지'가 일어납니다.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나왔다'는 황당한 상황이 현실화되는 겁니다.



#듣는 사람은 답답하지 않다… 나만 참으면 된다


'이렇게까지 천천히 해도 된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천히 말을 해봅니다. 단어를 하나하나 띄어서 또박또박 읽어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말이 빠르면 필연적으로 발음이 뭉개지고 뒤 끝을 흐리게 됩니다. 어느 정도면 '이 사람 성격이 급하구나'하고 넘어가겠지만, 더 빨라지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듣는 사람도 덩달아 불안해지죠. "천천히"라는 말을 백 번 해도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내렸던 극약 처방(?)입니다.


굉장히 답답하겠지만 평소 중얼중얼 끊어 읽기를 하다 보면 단어를 끝까지 발음하는 습관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려면 말을 빨리 할 수가 없죠. 속도가 느려지고 발음은 좋아집니다. 이 방법, 의외로 효과가 뛰어납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상대가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너무 빠른 사람들은 이야기를 해보면 '천천히 말을 하면 이상하다' '말이 끊기면 안 된다' 이런 강박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울타리를 쳐놓은 거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본인이 친 울타리를 안 넘어 본 겁니다. 말을 뭉개 발음하는 게 편해지면서 속도는 더 빨라졌습니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아무리 속 터지게 천천히 말을 하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결국에는 그렇게 속도를 늦추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이 지루하게 느낄 정도로 절대 말 못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듣는 사람들은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죠. 그냥 일반적인 속도로 들립니다. 그러나 본인은 평소보다 10배는 천천히 말한 거죠. 그동안 듣는 사람은 답답하지 않았다, 나만 그랬던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습관도 바뀝니다.



#당황해 말이 막히면 '작전 타임'을 부르자


방송 기자가 현장 중계차 연결을 할 때, 숱한 '돌발 상황'과 마주합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중계차까지 타고 현장에 가는 거죠. 어떤 준비를 해도 현장의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국회에서 여당과 정부가 정책을 결정할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라 생방송 연결을 하기로 했습니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회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예상을 넣어 연결 원고를 썼습니다.


그런데 생방송 도중 회의장 문이 열립니다.


"ㅇㅇ기자, 방금 회의가 끝난 거 같은데 결론이 어떻게 났습니까?"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도중 회의가 끝난 걸 앵커도 보고 있으면서 질문을 던지는 게 야속합니다. 당장 TV 앵글에서 벗어나 결과를 알아보고 내용을 전하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생방송 때문에 가장 빠르게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한 겁니다.


'대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뭐든 입을 떼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옵니다.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팩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전타임'을 부르고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취재팀도 지금 막 회의가 끝난 것을 파악했습니다. 아직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추후 당에서 이 내용을 브리핑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추가 취재를 해서 보도하겠습니다."


발표 중에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 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대화 중 당황했을 때 말을 멈추면 주도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횡설수설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보단 잠시 재정비할 시간을 버는 게 낫습니다.


농구처럼 운동 경기에서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있는 종목들이 있습니다. 잘하고 있을 때는 작전 타임을 부르지 않습니다. 상대가 치고 올라올 때, 그래서 경기의 흐름이 반대로 넘어가려고 할 때  씁니다. 잠시 쉬면서 호흡도 가다듬고 작전을 다시 세워서 반격을 하는 겁니다. 실제 작전타임을 잘 쓰는 팀은 넘어갈 뻔한 흐름을 다시 가져옵니다.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황스럽거나 화가 나면 스스로에게 휘슬을 불어 작전 타임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잠시만요"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의도는 무엇인지, 지금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은 어디까지인지…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눈앞의 장애물을 돌아갈지 깨부수고 넘어갈지 피해 돌아갈지 정합니다. 그리고 작전 타임이 끝나면 생각한 그대로 진행합니다. 이상하고 어색하지 않습니다. 막힐 땐 "잠시만요"라고 말하세요. 더 신중해 보입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에게 시선이 갑니다. 속도만 늦췄을 뿐인데 여유가 생기다 보니 발성도 톤도 신경 쓸 수 있습니다. 본인이 많은 말을 하려고 골치 아플 것도 없습니다. 상대의 말을 다 듣고 그 이야기를 이어가면 됩니다.


급하다고 더 빨리 내달리면 일을 망치기 일쑤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대화, 말하기는 혼자 100m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상대와 조깅을 하는 것입니다. 속도도 맞추고 호흡도 함께 해야 그 시간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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