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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쌤 카이지 May 03. 2023

돌려 말하는 건 더이상 미덕이 아니다

말 많이 하는 당신이 '불통'인 이유 Vol. 12

쉬는 날입니다. 모처럼 집에서 영화 한 편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여전히 부산합니다.


"자기야, 먼저 영화 보고 있어요. 난 이거 마무리하면서 볼게요."
"그래도 같이 봐야지, 그럼 좀 기다릴게요."
"아니야, 난 어차피 가만히 앉아서 잘 못 보잖아요. 괜찮으니까 먼저 보고 있어요."
"그걸 꼭 지금 해야 해? 이 리모컨은 왜 항상 말썽이야!"


심기가 불편해져서 애꿎은 리모컨에 화풀이를 합니다. 아내 눈에 이런 행동이 좋게 들어올 리가 없죠. 휴일 저녁, 맥주 한 잔 하면서 기분 좋게 마무리하려던 계획이 크게 틀어집니다.



#욕구의 충돌


다툼은 사소한 곳에서 시작돼 크게 번집니다. 돌이켜 보면 별것도 아닐 때가 많죠. 아내가 사전에 양해를 구했으니 그냥 영화를 시작하면 됩니다. 평소에도 아내가 자주 그랬던 걸 아니까요. 혼자 보고 있으면 아내가 맥주를 들고 옆에 앉아서 같이 재미있게 봤을 겁니다. 괞찮다고 했으면 괜찮은 건데, 제가 불편을 못 참은 거죠.


<남편 생각>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극장에서 볼 시기를 놓쳐 집에서 본 겁니다. 영화관에서처럼 '각 잡고(?)' 설레는 감정으로 영화를 보고 싶었던 거죠. 하던 일을 멈추고 옆에 앉아서 처음부터 같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내 생각>
아내에게 집은 영화관이 아닙니다. '편하게' 볼 수 있죠. TV 앞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집 정리하면서 운동(?)도 하고 싶고요. 사실 영화 처음 부분은 예고편을 미리 봐서 안 봐도 압니다.


이 두 사람의 욕구가 충돌한 겁니다. 일상 다툼은 이렇게 각자의 욕구가 해소되지 못해 감정이 쌓이면서 빚어집니다.


'욕구'


말이 거창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물과 공기처럼 욕구는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배가 고프고, 잠이 오는 등 본능적인 욕구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까지…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이 욕구죠. 아니,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욕구가 있네요.ㅎ



#왜 돌려 말할까?


그런데 저희 부부의 대화를 보면 이상합니다. 막상 가지고 있는 '욕구'를 둘 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욕구가 충족되면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감정이 일죠. 반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감정이 상하는 걸 넘어서 좌절감까지 맛봅니다. 그래서 혹시나 내 말 때문에 상대가 불편할까 혹은 감정이 상할까 싶어서 돌려 말합니다.


우리 문화권에선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논리적인 말하기나 글쓰기를 위해서 '두괄식' 표현을 따로 배워야 할 정도죠. 어순도 서술어가 제일 뒤에 옵니다. 자신의 감정은 제일 끝에 표현합니다. 아예 숨기는 경우도 많죠. '한국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사람이 너무 직설적으로 보일까 봐, 거칠게 보일까 봐,일종의 배려를 하는 겁니다. 문제는 그렇다고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구를 숨기면 오해가 싹튼다


"A야! 또 옷걸이에 옷 안 걸고 책상 위에 올려놨네? 너 진짜 누굴 닮아서 그렇게 게으르니?"


주로 부모와 자식들 사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대화입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옷걸이에 걸면 좋겠다'는 욕구가 저런 모진(?) 말로 표현됐습니다. 짜증스러운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옷 정리를 안 했다는 걸 게으르다며 확대하고 단정 지었습니다. 듣는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두 사람은 굉장한 감정 소모를 했을 겁니다.




"김 대리, 지난주에 몇 개 팔았지? 150개 정도 됐던 거 같은데… 이번주 담당이 누구지? 이 대리 아니야?"
"부장님, 제가 놀다 왔겠습니까? 직원도 더 요청했는데 붙여주지도 않고 너무 하십니다!"
"지금 내 탓하는 거야?"


부장이 담당이 누군지 묻기만 했는데 이 대리는 크게 마음이 상했습니다. 도발을 하고 말았죠. 부장도 나름 배려를 해줬는데 대뜸 본인 탓을 하는 이 대리에게 큰 실망을 했을 겁니다.


부장은 이 대리의 실적이 부진한 것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아니, 따지고 혼을 내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곧이곧대로 표현했다간 반감을 사겠죠. 그래서 나름 돌려서 표현했습니다.


이 대리에겐 의도가 빤히 보였습니다. 거기에 동기인 김 대리와 비교를 한 것 자체가 너무 싫습니다. 차라리 화를 내지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이유를 물었다면 대답을 했을 겁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본인을 비난한다고 느끼면 즉각 자기 방어에 나서거나 반격을 합니다. 특히 이렇게 두 사람 모두의 욕구가 해소되지 않고 충돌할 땐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죠. 서로 남의 탓으로 돌려 더 큰 갈등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감정은 숨기고 '하고 싶은 것'만 차분하게 표현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문제로 번지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욕구는 숨기는 게 미덕…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여러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모두 우리 생활에서 너무나 자주 있는 일입니다.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상대방이 내 탓을 합니다. 참을 수가 없죠. 좋은 의도로 시작한 대화가 파국을 맞습니다.


욕구는 숨기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대화를 해도 상대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해소가 되지 않습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죠. 오랫동안 마그마를 모아 온 화산처럼 갑자기 본인도 모르는 새 감정이 터지고 맙니다. 상대방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죠. 즉각 '반격 모드'에 돌입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먼저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을 해야 합니다. 최대한 지금 일어난 일만, 객관적으로 짚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도 오해 없이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그러고 나서 본인의 욕구를 이야기하겠죠.


상대가 욕구를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아는 선'에서 넘겨 짚지 말고 물어봐야 합니다. 욕구를 숨겨서 더 큰 갈등을 빚는 것보다 적절하게 끄집어내서 소통을 해야 오해가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면서 감정이 상하지 않게 표현할지가 관건이겠네요.


'다정하게 할 말 다 하는 법'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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