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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쌤 카이지 May 05. 2023

다정하게, 할 말 다 하고도 안 싸우는 비법

말 많이 하는 당신이 '불통'인 이유 Vol. 13

아들~ 방에 밥그릇이랑 컵이 있네?

어머니는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날은 치워주지도 않고 이 말만 남기곤 나가셨습니다. 귀찮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밥그릇과 컵이 눈에 들어옵니다. '방은 스스로 치웠으면 좋겠다. 특히 밥그릇이랑 컵은 당장 내놓기를 바란다' 어머니의 메시지가 제게 정확하게 전달됐기 때문입니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 내가 이 집 가정부야?"


잔소리를 계속해도 방이 정리되지 않으니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하면 말이 좋게 안 나갑니다. 참다 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겐 '방을 치웠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본인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좋을 리가 없죠. 치워야 할 건 알겠지만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만 반감을 갖고 바로 방어를 하게 됩니다. 마음에 없는 모진 말을 하게 되죠.





남편이 학원 강사를 하는 지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통 집에선 말이 없다네요. 어느 날 학원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됐는데 밖에선 남편이 굉장히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지인은 너무 서운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 많고 다정다감한 사람인지 전혀 몰랐네. 집에선 말 한마디 안 하면서…"


본인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싸해진 분위기로 저녁 자리는 끝났고, 돌아와서 남편과 크게 말다툼을 했다며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당신 종일 밖에서 말 많이 하는 거 알아. 피곤하겠지.
그래도 집에서 하루 일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 어떻게 생각해?"



#화를 안 내고 할 말 다 하는 방법 - 비폭력대화


1984년 미국의 비영리 평화 단체 CNVC(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에서 '비폭력대화'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우리의 본성인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셜 B. 로젠버그-

쉽게 말하면 상대방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양 쪽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연구를 한 겁니다. 그 결과가 '비폭력대화'라는 것이죠.


그들은 대화의 툴을 만들었습니다. 서로 화를 안 내고 할 말을 다 하는 '공식'이죠.


① 관찰한 내용만 말하기
② 그 행동을 본 느낌을 말하기
③ 그래서 나의 욕구는 무엇인지 말하기
④ 정확하고 솔직하게 부탁하기


앞서 소개한 지인의 고민을 이 공식에 맞춰 풀어보겠습니다.

①당신은 밖에선 말도 많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고 하는 말에 놀랐어.
②집에선 피곤하다면서 나랑 대화도 잘 안 하는데, 그 말을 듣고는 서운했어.
③나는 우리 식구가 저녁 식사 때 정도는 모여서 하루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④당신 생각은 어때?


상황 인식을 상대방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관찰'이라는 표현을 썼죠. 일어난 일만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금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돌려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본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감정은 누릅니다.


그래서 뭐가 하고 싶은지, 욕구를 이야기합니다. 같은 방식입니다. '너무 직설적이라 반감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수 있지만, 상대방과 상황을 같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진솔하게 받아들여질 겁니다. 이 때도 감정이 앞서 나오면 안 됩니다. 욕구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봅니다. 이야기를 하면 최대한 객관적으로 듣습니다. 역제안을 해오면 대화로 절충점을 찾습니다.


'비폭력대화'가 '다정하게 할 말 다 하는 방법'으로 알려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사실, 공식에 맞춰서 말을 해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스트레스받는 일입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싶죠. 그래서 '비폭력대화'의 핵심만 짚어 보겠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느끼는지 솔직하게 말하고

감정을 배제한 채 자신의 욕구를 표현합니다.


수많은 사례에서 우리는 욕구가 있으면서도 이를 돌려 말해왔습니다. 남 탓을 하고 비교를 하면서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낳았죠. 이제 욕구를 표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감정이 해소가 되고, 상대와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가 뭔가 의도를 숨기는 게 느껴지면 아무리 친분 있는 사이라도 방어막이 쳐지는 게 사실입니다.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 마음에 없는 말로 방어를 해 서로 상처를 주죠. 애먼 대상에 짜증을 내거나 화풀이를 하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이나 부부 등 같은 공간에서 이런 모습을 다 봐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욕구충돌 문제가 자주 발생합니다. 앞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까운 사이에 대한 칭찬이 유독 인색하다고 했었죠. 잘한 일은 그냥 넘어가고 못 한 건 못 넘어가니 갈등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답은 알고 있었다… 알고도 돌아갔었다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그럼 나도 오해는 안 했을 텐데…
다음부터는 싫으면 싫다 솔직하게 말해줘 그래야 알지


영화를 처음부터 같이 보고 싶다 vs. 하던 일부터 마무리하고 싶다


아내와의 욕구충돌이 말다툼으로 비화된 뒤… 어느 정도 감정이 차분해졌을 때 다시 둘이 앉아서 복기를 해봤습니다. 차라리 제가 느낀 대로 말했으면 아내 입장에선 기분이 덜 상했을 거랍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말은 돌려해 놓고선 아내가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했죠. 속 시원하게 "처음부터 같이 보고싶다"고 말했으면 아내도 그에 맞게 대응을 했을 겁니다.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은 막았겠죠.


"아까 앞사람이 새치기를 하는 바람에 지금 기분이 좀 안 좋은 상태야. 쫌만 이따 얘기할게."


그 이후 한 번 해봤습니다. 아내는 기꺼이 혼자 있을(?) 시간을 줬습니다. 기분이 풀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 같으면 또 애먼 데 감정을 풀었다가 갈등을 일으켰을 겁니다. '금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좋았습니다.'


공식대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매번 그럴 수도 없습니다.


감정은 누르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한 뒤에 솔직하게 이렇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됩니다.

그리고 꼭! 상대의 의사나 의견을 물어보세요.

매번 뭔가 풀리지도 않고 답답하기만 했던 대화에 숨통이 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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