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술도 그렇게 많이 사 먹였는데,
소통이 안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A 선배,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부장 진급을 하려고 나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일 머리야 회사 안에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죠. 항상 '불통'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벌써 2년째 같은 이유를 듣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지나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소통'이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리더 자리를 꿰차지 못했습니다. 그게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만사형통'이 아니라 '만사소통' 시대긴 한가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A 선배는 후배들과 정말 자리를 많이 마련했습니다. "그 술값으로 중고차는 뽑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요. 점심,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을 찾기 어려웠죠. '그 자리에도 나왔어? 거긴 또 누구랑 아는 사이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반응이 그냥 그렇습니다. 선배 귀에 들어갈까 걱정될 정도로요. "A 선배가 부장인 부서는 안 가고 싶다"는 말도 합니다. 답답하고 억울할 만도 합니다.
전 소통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 당시엔(?) 흔하지 않은 남녀합반이었습니다. 성적 고민이 한창이어야 할 때, 연애 고민까지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숱한 상담으로 내공이 쌓였습니다. 말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죠. 재미도 있는 편이어서 '또래장군' 역할을 도맡아 왔습니다. 술자리에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런 자리가 너무 재미있었죠.
오죽하면 말을 하는 직업을 찾았고, 방송기자까지 하게 됐을까요.
10년 차쯤 되니 기회가 왔습니다. 어린 막내급 기자들로 이뤄진 팀을 맡게 됐죠. 전 그전과는 다른 팀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쯤 지났을까, 우연히 후배들이 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너무 그립이 세다, 강압적이다" "말이 잘 안 통한다" "무섭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느낌이 생생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안타깝지만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A 선배'의 모습이 나에게서도 언뜻 보였습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소싯적 자타공인 '말 잘하고 재미있는 형'이었기 때문에 대화에 있어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만으로 소통 잘하는 리더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던 겁니다.
'대화'와 '소통'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짚어 봤습니다. 아내에게 제 문제가 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모르고 있던 제 단점을 말해줬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줘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거기서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걸 다 참고 있었어?'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평소 아내와 말다툼했던 기억이 스쳐 갑니다. 부부끼리 의견 충돌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일정 수준을 넘는 경기에서는 정말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가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기본기'에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온갖 화려한 기술로 승부하는 경기, 결국 승리를 거머쥐는 팀은 역설적이게도 기본에 충실한 팀입니다. 실수 없이 필요할 때 차곡차곡 득점을 하면서 게임을 가져옵니다.
대화… 너무 쉽게 봤습니다.
기본기 없이 잔기술로만 소통을 해왔습니다. 지위가 올라가고 상대해야 할 사람이 많아지니 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말 잘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대체로 좋아합니다.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실제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건넨 사람입니다. 말솜씨가 화려하고, 재미가 있진 않아도 이야기에 존중이 묻어나고, 배려가 일상이 된 사람.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도 품어줄 수 있는 사람. 무례함도 품격으로 덮을 수 있는 사람.
리더는 이런 사람이 돼야 했던 겁니다.
하나하나 대화의 방식을 바꿔봤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잘못하고 있던 게 너무 많았습니다. 맞다고 내세웠던 신념이 후배들을 결박했습니다. '조언'할 게 너무 많았죠. 언제부터인가 말을 듣는 것보다 제 말을 더 많이 했습니다. 팀을 운영하면서 답답한 게 쌓일수록 저는 더 많은 말을 쏟아냈습니다.
저야 말로 '말은 많이 하는데 불통인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 말하는 법을 굳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미 부족한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기본'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말과 행동에선 그걸 느낄 수 없었던 겁니다. 저와 대화를 하는 상대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던 겁니다. 얄팍하게 머리로만 아는 정도로는 부족했습니다.
술자리 나 모임에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던 문제였습니다. '재미'로 덮을 수 있었죠. 그런데 지위가 올라가고 공적인 대화를 하면서부터는 대화의 걸림돌이 됐습니다.
그냥 공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성격을 바꿔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인드셋'부터 다시 가다듬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소통이 밥 먹여 주는 시대'입니다. SNS가 일상이 되면서 소통의 범위는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전엔 소통에 실패해도 지인 몇 잃고 끝났지만 이젠 나의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이 있으신가요?
'대화의 자세'부터 틀어져 있을 겁니다. 다시 바로잡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