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잭과 콩나무의 식민지 약탈대작전

콩나무 그림자 아래 숨겨진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적 메시지 드러내기

잭은 가능한 한 빠르게 달렸고, 거인은 그를 쫓아왔어요. 바로 그때 황금 하프가 소리쳤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거인은 흔들리는 콩나무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잭은 집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또 내려가며 소리쳤지요. "어머니! 어머니! 도끼를 가져와요, 도끼를 가져와요."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손에 도끼를 들고 달려 나왔지만, 그녀가 콩나무에 왔을 때 쫓아오는 거인을 보고는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잭은 뛰어내려 도끼를 잡고 콩나무를 자르기 시작했어요. 거인은 두려워서 주저했습니다. 그 사이 잭은 또 한 번 도끼질을 했고, 콩나무는 두 동강이 나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인은 떨어졌고 왕관이 부러졌고, 콩나무도 넘어졌습니다. 잭은 그의 어머니에게 몰래 가져온 황금 하프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보여주었고, 사람들에게 황금알을 팔았습니다. 잭과 그의 어머니는 매우 부자가 되었고, 그는 훌륭한 공주와 결혼했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잭과 콩나무 이야기, 조셉 제이콥스의 <English Fairy Tales> 중.
뤼튼 AI로 생성함

잭과 콩나무 이야기는 많은 어린이들에게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불어넣어 준 이야기로, 영국 민화에서 유래했다. 잭이 거대한 콩나무를 올라가서 겪는 기상천외한 모험은 우리에게 용기와 열정을 가져야 할 때가 언제든지 올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의문이 생긴다. 거인은 무슨 잘못인가? 그리고 잡혀먹지 않기 위해서 살해한 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황금 하프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대체 무슨 권리로 가져온 것이지? 이 동화를 읽는 아이들은 그러한 의구심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잭이 용기와 모험심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간 모습은 칭찬해 줄 수 있겠지만, 내 아이가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물건을 훔쳐온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잭과 콩나무 이야기가 영국에서 민화로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은 대영제국의 역사와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잭의 세계와 거인의 세계는 원래 서로 교류가 없었다. 하늘에 뭔가 있으리라는 상상은 해도 직접 탐험하려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잭은 용감하게 콩나무를 올라탔고, 거기서 많은 전리품을 가져왔다. 그로 인해서 무고한 거인이 죽었지만, 가난하던 잭과 어머니는 부자가 되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 아닌가? 우리는 제국들이 식민지를 확장하며 여러 보물을 약탈하고, 노예를 포획하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만들어냈던 역사를 알고 있다. 그중에도 대영제국은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 대영박물관에 쌓여있는 각국의 보물들을 떠올려보자. 그래서인지 요즘 인터넷에서는 '역사 최고의 민폐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 와서 제국의 후손들을 공격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을지 모를 제국주의적 관습과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영화 '아바타'에서 우리는 잭과 비슷한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구인들은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고, 우주를 누비던 과학자들은 막대한 자원 언옵테늄을 보유한 판도라 행성을 발견했고, 자원개발회사 RDA는 용감한 요원들을 뽑아 투입시킨다. 목표는 물론 채굴이다. 정당한 권리나 평화적 협상 따위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잭과 어머니가 부자가 되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 동화와 영화를 보고 대항해시대 신대륙의 발견과 착취, 전쟁과 식민지를 떠올린다면 이상한 해석일까? 식민지 아이들이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동화를 읽고 좋아하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일이 또 있을까?


나비족은 신장이 4m까지 자라며 손가락, 발가락이 각각 4개라서 8진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해 진화했으니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잭과 콩나무의 원작에서 하늘나라 원주민은 오우거(Ogre), 거인(Giant), 큰 인간(Big tall)이라고 표현되는데, 과연 그는 정말 거인이었을까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이민족에 대한 공포와 생소함이 반영된 과장된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외모에 관한 인종차별적 비하표현이 무척 많은데, 소위 Redneck(노동계급의 목이 붉게 탔다는 관념), Nigger(피부가 검다는 뜻에서 파생), Shrimp eyes(동양인의 눈을 비하), Yellowface(피부를 노랗게 색칠해 동양인을 묘사함) 등이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피부는 완전하게 노랗고 하얗고 검지 않으며, 상대적이고 연속적인 차이와 개성일 뿐이다. 동양인의 체격이 작은 경향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차별적 편견이 결합되면 허약하고 비겁하고 약삭빠르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다. 반대로 어떤 민족에 대해서는 신장이 크다는 이유로 폭력적이고 사악하고 지능이 낮다는 이미지가 결합될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1800년대 미국 평원의 원주민 부족들은 당시 평균 신장이 가장 큰 민족 중 하나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물론 잭과 콩나무 이야기가 그런 과학적 사실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 위의 오우거와 땅 위의 인간을 외모로 구별하려는 인식은 근본적으로 인종주의와 결합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편견이 남아있지는 않은지 성찰해봐야 한다.




이제 식민지와 제국은 역사적으로 끝난 일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제국주의나 탈식민주의도 철 지난 사상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제국과 제국주의는 다른 것이다. 제국은 멸망해도 제국주의는 살아남는다. 그것도 더 비밀스럽고 미묘한 방식으로 말이다. 거인이 왜 죽어야 했는지, 진상 규명을 위해 우리는 제국주의에 관한 유명한 논문을 검토해봐야 한다.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인 요한 갈퉁(노르웨이 사회학자)은 1971년 <A structural theory of imperialism>을 발표했다. 흥미롭게도 제국주의에 대한 갈퉁의 설명을 듣고 나면, 잭과 콩나무 이야기가 달리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 갈퉁의 1971년 논문에서 제국주의는 국가들 사이에 발생하는 특별한 지배 형태로 분석되는데, 제국주의 국가의 중심이 피지배 국가의 중심과 강한 연결(혹은 결탁)을 형성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연결은 두 중심의 이해관계의 일치를 가져오지만, 주변 지역들은 여전히 분리되어 있어 피지배 국가 내에서 불평등이 지속된다. 갈퉁은 제국주의의 두 가지 핵심 메커니즘을 소개한다: 지배 국가가 피지배 국가보다 상호 작용 과정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수직적 상호 작용, 그리고 지배받는 국가들이 분리되어 서로의 의사소통과 무역이 제한되는 봉건적 상호 작용 구조이다. 여러 블록이 형성되면 서로 다른 블록에 속한 식민지들은 제국의 허락 없이는 독자적인 경제 교류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요한 갈퉁은 경제, 정치, 군사, 커뮤니케이션, 문화로 구성된 5가지 제국주의 유형을 세밀하게 분석하는데, 특히 각 형태에서 다른 형태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과 서로 강화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제국주의와 제국 팽창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적어도 일부 제국인들에게는 종교나 문명 전파라는 명분이 먹혔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러디어드 키플링은 백인우월주의자, 제국주의자였는데, 그가 발표한 시 <백인의 짐>에서 우리는 제국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백인의 짐을 져라.
너희가 기른 최선을 최전선에 보내라.
퍼드덕대는 사람들과 야생에 맞서
육중한 마구를 차려입으라.
네 불만투성이 표정의 갓 잡아들인 포로들,
반은 악마요, 반은 아이인 자들에게.

백인의 짐을 져라.
끈기 있는 인내로
공개적인 언설과 단순함으로
몇 번이라도 반복하라.
타인의 이득을 살피고
타인의 성과를 돕기 위해서.

백인의 짐을 져라.
기근의 입을 채워주고
역병이 끝나도록 명하라.
그리하여 너희 꿈이 가까워질 때
타인을 위한 목표도 이뤄질 지니,
너희의 모든 희망을 없애버릴
나태와 이방인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라.
-러디어드 키플링, <백인의 짐> 중.


그들에게 식민지배는 침략이 아니라 지원과 원조, 기독교 전파이자 미개한 이를 구원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방인들의 저항을 극복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러한 봉사는 신이 부여한 의무이기 때문에 나태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결국 정복해야만 한다. 정작 부자가 되고 노예로 포획하고 착취한 건 그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명분으로 포장되었다는 점은 코미디처럼 보인다. 불만스러운 표정이라도 신경 쓰지 마라. 그건 결국 그 사람들을 돕는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경악스러운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제국주의가 예수와 기독교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성경은 일관되게 세계시민주의와 평등주의, 평화와 비폭력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잉카를 정복한 피사로, 아즈텍을 정복한 코르테스도 기독교인이었고, 흑인 민권운동을 이끈 마틴루터킹 목사도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신기한 느낌을 준다. 결국 중요한 건 같은 가르침을 어떻게 수용하고 실천하는지가 아닐까.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장 28절)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마가복음 10장 42~45절)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마태복음 5장 9절)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마태복음 7장 12절)


한편 논쟁적인 러시아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라는 책에서 다른 모든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근본 원인은 '경제', 즉 이윤저하에 따른 시장 확장이라고 단언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소위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로 계승되기도 했다. 경제 결정론에 따르면 제국주의와 전쟁은 우연적 현상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경쟁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한다. 그런 관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현대 국제정치에서도 보호무역과 경제동맹이 점점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더 주의해서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채사장은 <지대넓얕 part 1>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이러한 유머스러운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유지해 주는 핵심 2가지 요소는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이다. 전쟁과 유행은 자본주의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공급 과잉의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듯, 유행은 필요를 뛰어넘는 막대한 소비를 창출해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한다. 전쟁과 유행 없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그에 따르면, 결국 전쟁을 막고 싶으면 유행과 사치를 소비하라는 결론이 나온다. 당신이 명품을 사고 흥청망청 낭비한다면 자본가들은 만족할 것이다. '이 정도면 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겠어'. 하지만 사람들이 유행과 사치를 거부하고 절약하며 산다면 자본가들은 이렇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재고를 털어야 하니 전쟁을 일으킬 때가 되었네 전쟁을 정당화할만한 작가, 종교인, 교수, 정치인들 출동시켜' 나는 이런 도식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생각하며 결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명분과 포장을 걷어내고 나면 많은 전쟁에는 경제적 동기가 숨겨져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요한 갈퉁은 또한 제국주의의 세 단계에 대해 논의한다: 백인 정착민 중심의 식민지주의 단계, 국제 조직 참여를 통한 70년대 당시의 신식민지주의 단계, 그리고 신속한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향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신(Neo-Neo) 식민지주의 단계이다. 이 논문은 제국주의 이론의 결과를 검토하여 경험적으로 검증하고, 특히 수직적 무역 패턴을 고려할 때 현 세계를 잘 설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연 현재의 역사를 신-신-식민지주의 관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제국과 식민지의 관점은 단순한 착취와 명분의 허위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사적 변천의 가능성이나 개별적인 특이 사례의 중요성을 도외시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조선은 중국의 식민지였나? 프랑스의 뉴칼레도니아와 네덜란드의 카리브는 식민지인가? 현재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와 유사한 속성이 있지는 않은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탐욕과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주범이다


동화를 읽을 때는 그 화자와 청자가 누구인지 근본적으로 의심해봐야 한다. 내가 보기에 잭과 콩나무는 잭이 어머니에게 한 거짓말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늘나라의 거인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검증된 적이 없고, 잭이 거인의 부인에게 들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사실 잭은 하늘나라를 발견하고 도둑질을 하기 위한 명분으로 상대를 파렴치하고 야만적이고 잔인한 놈으로 만들어 버린 것 아닐까? 실제로 '식인'이라는 관념은 미개하고 잔인한 문화로서 정복의 명분으로 활용되었지만, 인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현상이다. 하늘나라의 거인이 땅에 내려와서 아이들을 잡아다가 먹는다고? 그렇게 자원이 풍족한 하늘나라에서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자. 두 세계가 연결된 건 잭의 콩나무 때문이고, 거인 역시 콩나무 외에는 땅으로 내려올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땅에 몰래 내려와서 아이들을 잡아먹을 초능력이 있는 거인이 콩나무에서 떨어져서 죽는다는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 쫓아왔냐고? 황금 하프를 납치했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그리고 잭은 아무런 이유 없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황금 하프를 훔쳐오는데, 제이콥스의 초판에서는 그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다. 탐욕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뭐라고 변명할 수 있겠는가. 그냥 가지고 싶으니까 가져왔다는 게 좀 무안했는지, 아동판 동화에서는 여러 설정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원래 잭의 아버지 소유였는데 거인이 훔쳐간 보물이어서 다시 되찾아온 게 정당하다는 방식이다. 침략자들이 이런 명분을 조작해 내는 건 사실 놀랍지도 않다. 심지어 침략의 명분을 만들려고 의도적으로 사건을 조작해서 자국민을 죽이는 일이 실제로도 있다. 물론 비밀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의 조작이나 거짓말이 명백히 드러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확실한 자작극(false flag)으로 밝혀진 아래와 같은 사례들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히틀러의 독일은 폴란드군복을 입은 독일군을 동원해 자국의 글라이비츠 방송국을 공격하도록 하고 그 사건을 명분으로 폴란드를 침공했다. 일본 제국은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스스로 철도를 폭파한 뒤 중국군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뒤 만주 사변을 일으켰다(류탸오후 사건). 미국 역시 베트남 전쟁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북베트남에 공격당했다고 주장한 통킹만 사건이 있었는데, 실제로 2차 공격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이 스스로 조작했거나, 부주의로 착오를 일으켜 전쟁을 시작한 것이 확실한데, 그래서 베트남 전쟁은 미국에서도 가장 부정의한 전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 역시 베트남 파병에 참여했고, 베트남에서의 학살에 연루된 부분이 있으므로 우리와 결코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불가피하게 전쟁에 동원된 개별 군인에 대한 비난가능성과는 다른 문제다) 또한 미국 군부는 쿠바 침공 명분을 위해 "여객기가 쿠바에 의해서 격추된 것처럼 위장하고, 비행기를 납치해서 미국 주요 지점들에 자살 테러를 일으키고, 마이애미 등의 시가지에서 쿠바인으로 위장한 사람이 총기난사"를 하는 작전을 세우고 거의 실행할 뻔한 적이 있다.(노스우즈 작전 참조)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1954년 이집트에서 일으킨 폭탄 테러 '라본 사건'도 결국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한국 정치에서도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사건으로 총풍사건이 있었다. 무슨 음모론이 아니라 실제 사건들이고, 대부분의 역사학자가 동의하는 사례만 추린 것이다. 미국의 정보가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그나마 일부 드러난 것이지, 중국과 소련이라고 해서 많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은 경우까지 고려하면 전쟁과 관련된 명분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직접적인 자작극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독일의 의사당 방화사건, 일본의 훈춘 사건, 노구교 사건뿐만 아니라 운요호 사건(강화도 조약의 배경), 영국의 애로호 사건(아편 전쟁 촉발), 미국의 모리슨 호(일본에 대한 개항 요구) 사건 등 상호통상을 명분으로 침공의 저의를 드러낸 사건은 매우 많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의 제국주의적 침략 이면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결국 돈과 물질인 것 같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일본에 개항을 무력으로 요구하고 후발주자인 일본은 한국과 만주를 지배하며 제국을 꿈꾸고 한국은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적극 지원한다. 역시 영국은 아편을 살포하고 전쟁으로 중국을 굴복시키고 중국은 티벳을 지배하며,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고 폴란드는 홀로코스트에 동참한다. 홀로코스트의 최대 피해자인 이스라엘 민족은 팔레스타인에서 많은 악행을 저지른다. 물론 아랍 민족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두고 서로 차지하겠다고 경쟁하며 제국들 간 분쟁인 파쇼다사건이 벌어지기까지 하는데, 남의 동네에 와서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다.




"아주머니 제가 너무 배 고픈데 아침식사 좀 나눠주실 수 없을까요?
"아침을 먹고 싶다고?" 키가 큰 거인 여자가 말했죠. "여기서 도망가지 않으면 네가 곧 아침식사가 되어버릴 거야. 우리 남편은 식인 오우거라서 토스트에 구운 소년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없거든.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곧 올 거야."
"오! 제발 아주머니, 먹을 것 좀 줘요. 어제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정말이에요, 배고파서 죽겠어요" 잭은 말했습니다.
거인의 아내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잭을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빵과 치즈 한 덩어리와 우유 한 주전자를 주었죠. 하지만 잭이 반도 먹지 않았을 때 쿵! 쿵! 쿵! 누군가 오는 소리로 집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어요.
-조셉 제이콥스의 같은 책 중.


내가 각색한 이야기는 이렇다. 잭과 어머니는 매우 배고팠다.(사실 배고팠다는 건 자기들의 느낌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들은 잘 먹고 마시면서도 끊임없는 허기와 갈증을 느낀다.) 어머니는 잭을 보고 뭐라도 가져오라고 닦달했고, 압박을 느낀 잭은 신기술로 개발된 콩나무를 타고 신세계를 발견한다. 그는 신기한 보물로 부자가 되고 싶어서 그냥 훔쳐왔고, 어머니에게는 거인이 우리의 재산을 훔쳐갔으며 인간들을 잡아먹는다는 거짓말을 한다. 어머니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냥 수긍한다. 자기도 부자가 되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잭은 생각한다. 돈을 꽤 벌었지만 이걸로는 좀 모자란 것 같다. 황금알을 아무리 팔아도 물질적인 공허함과 허기짐은 채워지질 않는다. 아무래도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다. 하늘나라에 두고 온 거인의 아내를 노예로 데려오면, 힘이 세니까 부려먹기 좋을 것 같다. 아예 하늘나라로 쳐들어가서 그 동네를 지배하면서 돈을 빼오는 건 어떨까. 하늘나라에 '친잭파'를 만들고 식민정부를 세워서 잭의 공장이 생산한 물건들만 수입할 수 있도록 강제하면 앞으로 공고한 진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옆 동네 피터, 홍길동, 스즈키가 이미 하늘나라에 진격했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다. 잭은 지금까지 번 돈으로 군사와 무기를 사 모으면서 경쟁자들보다 절대 늦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늘나라 아이들에게는 '잭과 콩나무'라는 열정적이고 모험심 넘치는 동화책을 유포하기로 한다.




고야(Goya), [1808년 5월 3일], 1814. 캔버스에 유채, 266 x 345cm


마네(Manet),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1868.


파블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 1951년작)

고야와 마네, 피카소는 각각 1746년생, 1832년생, 1881년생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다. 그들의 그림은 서로 다른 작법과 소재이지만 유사한 주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저기서 우리 편이 누구고 상대편이 누구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야의 그림은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을, 마네의 그림은 나폴레옹 3세의 멕시코 황제 처형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피카소의 그림에서 묘사된 장면은, 미군이 북한 주민을 학살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작가는 정확한 의미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적인 팩트는 역사가들이 분석해 알려줄 것이다. 중요한 건 고통받는 인간들과 침략하는 인간들이 늘 존재해 왔다는 것이고, 그 침략의 이면에는 탐욕이 있고 표면에는 거창한 명분이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몰라도 위 예술작품들을 보면 인간 역사를 흐르는 폭력과 지배, 착취의 역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오른쪽에 잭이, 왼쪽에 거인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다.


한편 마네의 그림에는 담장 너머에서 구경하는 이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들은 제국주의의 모순을 짐작하고 알면서도 그 수혜를 나눠먹는 잭의 어머니나 키플링 같은 공범과 방관자를 상징하는 것 아닐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배국의 일원이라면 일부 호전적인 세력이 그런 악행을 벌이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제국주의의 야욕은 외국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타깃을 점령, 착취하고 나면 국내에서라도 다음 타깃을 찾을 것이다. 그 순서만 다를 뿐,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모두가 물질주의에 굴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에 우리에게도 그런 침략의 역사가 있었다면 스스로 드러내고 반성하고,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백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처럼 말이다. 스스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평생 평화주의 운동에 실천적으로, 이론적으로 기여했던 그의 이야기는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서두에 인용한 잭의 탈출(혹은 도망) 장면을 자세히 보면 이제 우리는 황금 하프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 황금 하프는 어쩌면 보물이나 자원이 아니라 포로와 노예로 잡힌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는 '주인님 주인님'하고 외친다. 잭에게 납치당하고 싶지 않고, 자기의 원래 주인에게, 원래 나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잭은 그런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탈을 지속한다. 원래 하늘나라에서 거인들의 삶이 얼마나 미개하고 처참했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할 방법은 없다. 잭이 자기의 행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쏟아낸 말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인간이 물질과 이익 앞에서 최소한의 윤리마저 저버리고 거창하게 포장하는 짐승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제국주의적 태도는 특히 국제정치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사실 사회의 여러 요소 속에도 숨어있다.


부자와 빈자, 사장과 직원, 성인과 아동, 도시와 시골, 가부장과 가족구성원들, 원주민(한국에서는 한국인)과 이주민 등의 관계를 제국과 식민지의 착취 관계로 해석한다면 과도한 것일까? 물론 개별적인 현실에서는 임차인이 임대인을 괴롭히는 것처럼 다양한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강약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권이라는 울타리와 한계선을 이야기해야 한다. 아무리 자본주의적 관계로 합의를 맺더라도 잭은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사실 나는 모험정신과 열정적인 꿈을 정말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소년만화를 주기적으로 읽어야 하고 그런 태도가 행복하고 실존적인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험과 용기는 도덕, 성찰과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진짜 모험과 용기는 약자를 착취하러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물질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화 <원피스>는 해적을 주인공으로 하는 막장 만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해군이야말로 억압과 구체제를 수호하는 악당으로 설정된다. 밀짚모자 해적단은 각 섬의 불평등과 모순을 타파하며 성장하는 가장 자유로운 모험가로 나오는데, 잭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그러한 도덕은 매우 복잡하고 논리적인 추론을 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상대방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수단화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도덕적 상식 아닐까? 인류의 역사에서 어른들에게 언제나 부족했던 건 최소한의 상식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잭과 콩나무를 보고 아이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다.


끝으로 존 레논의 Imagine의 가사를 소개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너무 유명해서 진부할 정도로 잘 알려진 노래지만 가사를 자세히 보면 상당히 파격적이고 종교적으로까지 보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유물 없는 삶이 가능할까? 국가, 탐욕, 천국과 지옥이 없는 삶이 가능할까? 예술가는 가장 자유로운 상상을 하는 직업인 것 같다. 어쩌면 복잡한 정치 이론을 학습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이 이 노래 속에 담긴 인류애와 상상력을 겉핥기로 수용하는 정도만 하더라도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명시적으로,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한다. 이제는 침략적인 전쟁을 넘어서서 침략적인 구조와 인식을 근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는 세계적인 불평등과 문화적인 탈식민주의, 프란츠 파농과 세계시민주의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다음 글에 계속)


https://www.youtube.com/watch?v=YkgkThdzX-8


Imagine there's no heaven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It's easy if you try

시도해 본다면 쉬울 거예요


Imagine there's no countries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It isn't hard to do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Nothing to kill or die for

희생시킬 일도 희생당할 일도 없어요

And no religion too

그리고 종교 또한 없죠


You may say I'm a dreamer

당신이 저를 몽상가라 부를지도 몰라요

But I'm not the only one

하지만 저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요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그렇다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



Imagine no possessions

재산을 가지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I wonder if you can

당신이 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No need for greed or hunger

욕심부릴 필요도 굶주릴 필요도 없어요

A brotherhood of man

인류애만이 가득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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