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협동조합적 생산 방식, 노동의 매력화를 다시 생각하다
(본 글은 인문학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i) 개인 경쟁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생산 질서를 상상하다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은 “사회주의자”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두 부류를 지적합니다. 하나는 소규모 공동체를 기본 단위로 하여 사유재산과 개인 간 경쟁을 대체하려는 이들, 다른 하나는 단 한 번의 급진적 조치로 국가가 생산자원을 통제하고 재분배하겠다는 이들입니다. 밀은 먼저 오언(Robert Owen), 푸리에(Charles Fourier) 등 사상가들의 구상을 대표 예로 들며, 각종 실험 공동체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가는 ‘온건적’ 사회주의를 언급합니다. 반면 대륙(유럽 대륙)에서 더욱 활발히 제기된, 정부가 모든 자산을 일시에 몰수하여 공익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자는 ‘혁명적’ 사회주의도 중요한 한 축으로 소개합니다.
밀은 “무엇이든 실천하기 위해서는 [점진적 적용을 통한 역량 검증]이 필요하다”(Socialism, p.93)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비교적 제한된 범위에서 실험을 시작하고, 성과가 나면 차차 확장해 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혁명적 구상은 준비 없이 대규모로 실행할 경우 필연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폭력이 뒤따를 것이라 경고합니다.
(i) 조용한 변혁과 급진적 대전환의 간극
밀은 “어떤 체제든 대규모로 한 번에 도입하는 방식은 위험이 큽니다”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거대한 중앙집권형 사회주의, 즉 국가나 중앙 권력이 모든 산업을 직접 관리·감독하겠다는 개념은 [“기존의 동력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릴 수 있다는 가정”](Socialism, p.94) 때문에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반해, 실험 공동체(푸리에의 ‘팔랑주(phalanstère)’나 오언의 마을 단위 협동조합 모델 등)는 비교적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 [“교육 수준과 공동체 의식을 갖춘 이들이 먼저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같은 책, p.93)는 점이 강점입니다.
소규모 공동체 방식이라면, 구성원이 협동하면서도 기존 체계에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가 축적되면 점진적으로 다른 지역이나 사람들에게 확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밀은 이것이야말로 [“점진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재건(reconstruction)의 방식”](같은 책, p.94)이라고 말합니다.
(i) 공산주의 체제가 맞닥뜨릴 현실적 장벽
밀은 ‘온건’이든 ‘급진’이든, 사회주의의 가장 큰 문제로 [“자본 축적과 관리의 동기 부여가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같은 책, p.95)를 꼽습니다. 그는 “세계의 생산물이 지금 수준에 도달하려면 [고가의 기계, 건물 등 ‘고정자본(fixed capital)’과 생산 전 기간 동안 노동자를 부양할 ‘유동자본(circulating capital)’이 필요합니다”](같은 책, p.95)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을 공적 소유 형태로 전환했을 때도 과연 자본을 확충하고 유효하게 운용할 유인이 충분히 마련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적 생산 체제에서 사람들은 공동체 전체가 공동 소유한 생산 수단을 바탕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산물도 공동의 소유물이어서, [“배분 또한 공동체가 정한 규칙에 따라 공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같은 책, p.97)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생산 설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관리자’, ‘조직자’의 동기 문제입니다. 밀은 기존 사적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탁월한 경영의 이익이 오롯이 관리자에게 귀속됩니다”](같은 책, p.99)는 이유로 그들이 애쓰지만, 공산주의적 체제에서는 책임과 부담이 큰 관리자에게 특별한 대우를 주지 않는 한, 그 일을 기꺼이 맡으려 할 사람이 줄어들 위험이 크다고 봅니다.
(i) “일한 만큼” vs. “필요한 만큼,” 그 사이에서
사회주의가 해결하려 하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분배의 공정성입니다. 모든 이에게 똑같이 나누는 단순한 방식부터, 필요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까지 여러 이론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밀은 사람마다 능력과 필요가 제각각이기에, [“품질과 양을 동시에 고려하는 완전한 공정성을 구현하기란 극도로 어렵습니다”](같은 책, p.112)고 봅니다.
특히 [“노동 자체의 성격, 난이도, 그리고 개인의 역량 차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같은 책, p.113)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모든 구성원이 ‘같은 양’을 일하고 ‘같은 몫’을 받도록 강제하는 것은 다양한 갈등을 낳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어떤 이는 더 힘든 일을 하고도 똑같은 몫을 받아 불만이 생기고, 또 어떤 이는 몸이 약해 일을 덜 할 수밖에 없어 죄책감을 느끼거나, 그 반대 사례로 ‘게으른’ 이가 제 몫을 못해도 동일한 배분을 받으려 하면 내부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i) “새로운 길”을 여는 이들은 어떻게 대우받을 것인가?
밀은 구체적으로 “혁신의 동기”를 거론하면서, [“모험과 위험, 그리고 발명·창조적 시도 없이는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같은 책, p.106)고 말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나 집단주의 체제에서 이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려면 공동체 전체가 함께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신기술이든 새로운 사업 방식이든 그 효과가 불분명한 단계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평등 배분”이라는 원칙 아래서는 성공했을 때 얻는 과실이 개인에게 추가적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개인적 이익 외에 사회적 책임감·명예심 등 고차적 동기만으로 일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나오겠습니까”](같은 책, p.101)라는 의문이 이어집니다. 분명 뛰어난 발명가나 혁신가, 유능한 경영자가 사회 공헌의 사명감만으로 힘든 의사결정을 감당해야 하는 체제는, 충분히 매력적 보상이 주어지는 사적 체제와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i)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절충을 꿈꾸다
밀은 사회주의의 어려움을 논하는 가운데 [“산업 파트너십(industrial partnership)”](같은 책, p.109)을 언급합니다. 즉, 자본가와 노동자가 공동의 이해관계를 형성해,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 역시 성과에 따라 ‘이윤의 일정 지분’을 분배받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개인 소유”와 “협동”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도 자신들의 성과가 더 높은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동기 부여가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성과 공유’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 궁극적으로 [“노동자가 부분적으로 자본을 소유하거나, 아예 공동체 소유의 협동조합 형태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같은 책, p.110)라는 전망을 내놓습니다. 밀은 이런 제도가 [“현재 임금 노동 체계의 한계를 보완하면서도 급격한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 점진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같은 책, p.111)고 봅니다.
(i) [“유용한 노동을 싫어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없다”](같은 책, p.121) 전제
밀은 푸리에(Charles Fourier) 사상을 높이 평가하며, 이른바 “노동의 매력화”가 성취되면 사회주의 최대 난제인 “노동 동기”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푸리에주의(Fourierism)에서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복수의 ‘노동 그룹’을 조직해 개인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되며, 각자 흥미와 재능을 살려 일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효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이론입니다(푸리에 이론 전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밀이 각주에서 적극 추천하며, Socialism, p.121 참조. 또한 본문 내 [Footnote 9]에서 더 자세히 설명).
이때, 공동체는 모든 생산물에서 [노동(labour), 자본(capital), 재능(talent)] 세 요소가 기여한 바에 따라 성과를 배분합니다. 이는 순수 공산주의의 ‘완전한 평등 분배’와 달리 차등 보상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방식입니다. 밀은 이러한 푸리에적 모델이 성공적으로 작동한다면, 협동조합적 생산과 개인적 동기가 균형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 내다봅니다.
(i) “변화를 서두르지 말라, 그러나 결코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밀은 여러 난제를 거론하면서도, 미래 사회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 방식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동체가 충분히 성숙해, 높은 수준의 도덕적·지적 교육을 받은 이들이 늘어난다면, 사회주의는 실현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같은 책, p.119)고 전망합니다. 다만 그 전제 조건으로, 지금 당장 “전부를 접수”하려는 성급한 욕망을 경계합니다. 폭력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사적 소유를 제거하고 생산 수단을 넘겨받는 경우, [“혼란 속에서 제대로 된 ‘새 질서’를 구축하기는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같은 책, p.125)고 꼬집습니다.
따라서 밀은 “기존 체제(사유재산권)가 가까운 시일 내에 사라질 것이라 보기 어렵습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그 형태가 영원히 고정불변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같은 책, p.128)라고 말합니다. 그가 보기에, 사적 소유 또한 ‘역사적’ 산물로, 사회가 변하는 만큼 그 권한과 구조 역시 조정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떤 법이나 제도가 더 많은 공익에 부합한다면, 기존의 사유재산권 해석과 충돌하더라도 바뀔 여지가 있습니다”](같은 책, p.136)는 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다만, 재산권을 침해받는 이들이 존재할 경우 정당한 보상과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사유재산권이 무조건 신성불가침이라는 식의 태도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탄력적으로 변모하는 사유재산 제도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본 글은 [Socialism, J. S. Mill (1879)]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