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위기는 있다-J S 밀의 좌절과 자아 재발견

벤담주의적 개혁자를 넘어, 내면의 행복을 다시 찾다

(본 글은 인문학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I. 첫 번째 전환: 세상을 바꾸려던 젊은 개혁자의 고민

- 사회 개혁이라는 인생 목표가 흔들릴 때, 내면의 혼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제임스 밀과 벤담(Jeremy Bentham)의 영향 아래 사회 개혁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다고 회고합니다. 그에게 세상을 개혁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행복과 동일시되는 대의였으며, "개인적 즐거움보다 인류 전체의 진보에 헌신하겠다"라는 태도가 일상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1826년 가을, 그는 어느 날突(돌연)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인생의 모든 목표가 지금 다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보라… 과연 그것이 정말로 커다란 기쁨과 행복이 되겠는가?” (원문: “Suppose that all your objects in life were realized … would this be a great joy and happiness to you?” – CHAPTER V)

자신의 심연으로부터 튀어나온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이 순간, 그가 오랫동안 쌓아올렸던 모든 기대와 확신의 기반이 무너졌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목적이 더는 매력적이지 않게 보이자,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가 찾아온 것입니다.


II. 목적 상실과 깊은 우울

-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맞닥뜨린 내면의 공허와 무기력을 들여다봅니다.


“삶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은 그를 단순한 의기소침이 아니라 심각한 우울의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밀은 이 시기를 “구름 안에 갇혀 지냈다”고 표현하며, 가벼운 수면이나 교제 같은 일상적 위안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 깊은 내면의 고통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던 밀은, 아버지에게조차 이해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홀로 이 문제를 붙들고 좌절 속에서 헤매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분석적인 사고가 오히려 감정을 마비시키는 요소로 다가왔습니다. 논리적으로 어떤 것도 완전히 믿기 어려워져, 모든 흥미를 소진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III. 콜리지와 시의 위안: 공감 없는 슬픔

- 문학과 시가 줄 수 있는 감정적 위안은 때로 무뎌지기도 함을 보여줍니다.


당시 밀은 읽던 책에서조차 이전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인류의 고귀함을 보여주는 글을 통해 영감을 얻곤 했지만, 이제는 “평소보다 덜한 감동조차 더 이상 매력을 주지 못했다”고 술회합니다. 우울에 빠진 그는 큰 위안을 찾고자 콜리지(S. T. Coleridge)의 시에 눈을 돌렸으나, 그마저도 일시적인 방편일 뿐 근본적 돌파구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콜리지가 묘사한 "통로조차 없는, 무감동의 슬픔"(원문 중 “A grief without a pang, void, dark and drear…”)이라는 표현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이 시구절 그대로, 말로 하소연할 수도, 눈물로 풀 수도 없는 묵직한 허무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IV. 위기의 전환점: ‘마르몽텔의 회고록’에서의 눈물

- 우연히 마주한 장면에 흔들린 감정이 다시금 살아난 사건을 살펴봅니다.


절망의 구름이 좀처럼 걷히지 않던 어느 날, 밀은 우연히 마르몽텔(Marmontel)의 『회고록(Mémoires)』을 읽게 됩니다. 책에 담긴 가족 상실과 소년의 결의가 절박하게 그려진 장면을 읽는 순간, 밀은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나무토막도 아니고 돌덩이도 아니었다. 내 안에 아직 감정의 재료가 남아 있음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원문 의역: “I was not a stock or a stone. I had still … some of the material out of which … happiness are made.” – CHAPTER V)

이 사건은 그에게 결정적이었습니다. ‘감정이 다시금 솟아오른’ 체험으로 인해, 완전히 메말라버렸다고 느꼈던 내면에 아직 온기가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한 것입니다. 이후, 음악과 독서, 대화, 심지어 공공문제에 대한 토론 등 일상의 소소한 면에서 이전보다 조금씩 즐거움을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V. 새로운 행복 이론: “행복을 직접 추구하지 말라”

- ‘행복’에 대한 관점 변화가 밀의 사상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봅니다.


밀은 이 시기에 “행복이 모든 윤리와 행동의 기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행복을 직접 목표로 삼을 때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자신의 행복 외의 무언가에 마음을 고정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 인간 개개인의 행복은 그저 길을 가는 중 곁에서 얻어지는 것이며, 정면으로 응시하면 금세 사라져버린다.” (원문 의역: “Those only are happy … who have their minds fixed on some object other than their own happiness … Ask yourself whether you are happy, and you cease to be so.” – CHAPTER V)

이러한 통찰은 그가 여전히 공리주의(벤담의 사상)를 핵심으로 삼으면서도, 행복을 정의하는 데 있어 직접적 추구보다 다른 가치에 전념하라는 새 지향점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술과 시, 혹은 타인의 행복이라는 대의 등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를 향해 몰두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지나가는 동안” 행복을 자연스레 맞이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VI. 감정의 함양: 교육과 내적 균형의 중요성

- 지적 능력뿐 아니라 감정을 기르는 교육이 왜 필요한지, 밀의 시각을 정리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혹독한 논리 훈련과 지적 담론을 익혀온 밀은, 자신의 정신적 위기를 통해 감정을 풍부히 하고 균형 있게 유지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그는 “사고와 분석이 인간의 진보에 필수적”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으나, 한편으론 분석이 지나칠 경우 감정을 마비시키는 위험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감정을 키우지 않는다면, 사회적 개선이나 지적 발전도 온전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음악, 미술, 문학 등 감성을 일깨우는 예술의 가치가 그에게 더욱 소중해졌습니다. 실제로 그는 병적 우울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베버(C. M. von Weber)의 오페라 <오베론(Oberon)>을 듣고 큰 기쁨을 되찾았다고 술회합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 음악의 새로움이 사라져 그 감흥이 줄어드는 문제를 고민했지만, 예술적 감흥 자체가 마음을 고양시킨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VII. 단절과 새로운 결합: 감성과 지성의 조화

- 벤담적 급진주의와 새로운 사유가 어떻게 동화되고, 충돌했는지를 정리합니다.


우울에서 회복되어 가는 과정에서, 밀은 여러 지적 교류를 통해 과거의 신념을 ‘완전히 버리기’보다 ‘더 넓게 포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콜리지(S. T. Coleridge)와 카를라일(Thomas Carlyle), 그리고 독일 관념론 등에서 나오는 인간 내면의 풍부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는 여전히 공리주의와 합리적 사고가 제시하는 실용적 기준을 중요하게 간주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떤 ‘틀 지어진 인간(made man)’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틀을 넘어서, 말하자면 ‘사고의 자유’를 찾기 시작했다.” (원문 의역: “He told me how he and others had looked upon me … as a ‘made’ or manufactured man …” – CHAPTER V)

밀은 이렇게 말하며, 아버지와 벤담의 가르침 안에 담긴 강력한 ‘분석력’과 ‘세상을 바꾸는 의지’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이 처절하게 체험한 내면의 균열과 감정의 귀중함이 결합되어야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역설합니다. 결국 그는 ‘감정을 무시하는 냉정한 이성’과 ‘냉정한 이성을 거부하는 막연한 감성’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려 했던 것입니다.


VIII. 새로운 시야: 한 시대의 전환을 바라보며

- 밀의 사상적 재정비가, 이후 그가 펼치는 논리학·정치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엿봅니다.


이 ‘정신적 위기’를 겪은 뒤, 밀의 시야는 한층 넓어집니다. 그는 사회 개혁이 단순히 제도와 구조의 변경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개인이 가진 내적 성숙과 정서 함양, 그리고 다양성의 존중이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그가 이후 집필한 『논리학 체계(System of Logic)』나 『자유론(On Liberty)』 등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경험과 정신적 성장을 옹호하는 모습으로 구체화됩니다.

한편, 밀은 자신이 성장해 온 영국 사회가 가진 귀족적·재산 계급 중심의 구조, 그리고 그것이 대중에게 미치는 폐해를 비판하면서도, 그저 제도를 뒤엎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합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누려야 할 행복과 자유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그 원동력으로서 교육, 감정의 풍부함, 사회적 제도 개선이 조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본 글은 Autobiography, J. S. Mill (1873, Ch.5.)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