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상, 학문을 넘어서 정치로, J.S.밀의 장년 회고록

고백적 기록 속에서 드러난 정치경제와 자유의 실천

(본 글은 인문학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I. 『논리학』(Logic) 완성 이후의 삶을 돌아보다

─ “연속적 역사로 서술하기 어려운” 지적 발달

─ 집필 과정과 지적 논쟁을 통해 단련된 밀의 사상


밀은 『논리학』을 마무리한 뒤, 자신의 정신적 궤적을 “크게 줄여서” 기록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I have no further mental changes to tell of, but only, as I hope, a continued mental progress; which does not admit of a consecutive history.” – 『Autobiography』, Ch.7. ─ 한국어 번역: “더 이상 전환이라 부를 만한 정신적 변화를 겪지 않았고, 단지 [계속되는 정신적 진보]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진보는 연속적 역사로 기술되기 어렵습니다.”


II. 정치 현실과 결합된 경제학

─ “생산은 자연법칙이지만, 분배는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다”

─ 추상 이론을 넘어 사회 전체를 설계하는 방법론


밀은 정치경제학을 “사회철학의 한 분과”라고 규정하며, 이를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원리로 연결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단순히 학문적 ‘추상’으로 머물러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원문에서 그는 이렇게 언급합니다.

“Political Economy… has no pretension, apart from other classes of considerations, to be a practical guide.” – 『Autobiography』, Ch.7. ─ 한국어 번역: “정치경제학은 다른 요소들과 결합되지 않은 채로는 실천적 지침이 될 자격을 스스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태도가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에 담긴 핵심입니다. 원래 생산 영역은 자연법칙에 가깝지만, 소득과 부의 분배는 인간이 제도적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을 통해 밀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무조건적 절대시에서 벗어나, 가난한 계층이 어떻게 ‘제도적 개혁’을 통해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III. 아일랜드 땅에서 배우다

─ 토지 소유와 부의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초창기 자유주의에서 점차 ‘사회주의적 실험’을 긍정하다


밀은 처음에는 전통적 자유주의자로서 사유재산제를 기본 전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 대기근을 목격하고, 정부의 도움 없이 시장 논리만으로는 빈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I was a democrat, but not the least of a Socialist…I only hoped that by universal education, leading to voluntary restraint on population, the portion of the poor might be made more tolerable.” – 『Autobiography』, Ch.7. ─ 한국어 번역: “나는 민주주의자였지만, 초기에는 전혀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인구조절을 자발적으로 하게 만들면, 가난한 이들의 삶이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으리라 희망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점차 ‘빈부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급진적 아이디어도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협동조합과 공동체 실험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은 그런 맥락입니다. 다만 밀은 이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선을 위한 자발적 연대”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IV. 『자유론』(On Liberty) 속 근본 메시지

─ 다수결이 만들어내는 획일적 여론을 경계하다

─ 해리엇 테일러와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한 ‘자유의 철학’


밀의 대표작인 『자유론』은 애초부터 ‘개인성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사회 압력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그런데 밀은 이 책의 중요한 아이디어가 아내 해리엇 테일러 밀의 통찰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In this wide sense…all my published writings were as much her work as mine.” – 『Autobiography』, Ch.7. ─ 한국어 번역: “넓은 의미에서, 제가 출판한 모든 저술은 제 것인 만큼이나 그녀의 것이었습니다.”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공적 권력뿐 아니라 다수 대중의 압력도 개인 자유를 억누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사고방식만을 강요할 경우,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정체 상태에 빠지며,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V. 의회 의원이 된 밀, 현실의 벽과 부딪치다

─ 자메이카 사태와 군정(軍政) 폭력 비판

─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


1865년, 밀은 웨스트민스터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가 중점적으로 파고든 사안은 당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메이카에서 일어난 폭동 진압 과정에서, 영국 관리들이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거나 처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밀은 ‘자메이카 위원회(Jamaica Committee)’와 함께 진상 규명에 나섰습니다.

“Whether there was to be government by law, or…by military licence.” – 『Autobiography』, Ch.7. ─ 한국어 번역: “우리의 식민통치가 법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군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무력 폭주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잔혹한 식민지 폭력에 맞선 이 행동으로 그는 보수 세력의 강한 반감을 샀지만, 사법부가 최종적으로는 법의 지배를 확인하는 판결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VI. ‘여성참정권’—처음으로 의제화되다

─ 평등 선거권 확장 속에서 여성이 배제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 “male”을 삭제하자고 제안해 의회가 술렁이다


1867~1868년, 영국은 선거법 개정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벌입니다. 밀은 하원에서 ‘여성도 동일 자격으로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는 수정안을 발의합니다.

“I moved…to strike out the word ‘male,’ and thereby admit to the suffrage all women…who possessed the qualification required of male electors.” – 『Autobiography』, Ch.7. ─ 한국어 번역: “저는 ‘남성(male)’이라는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남성과 똑같은 자격을 충족하는 모든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수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압도적 가결은 아니었으나, 약 70명이 넘는 ‘찬성표’가 나온 것 자체가 혁신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이후 조직된 “여성 참정권 협회들”의 기반이 되었고, 그 움직임은 그의 저서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 발간으로 한층 힘을 얻습니다.


VII. 다시 찾아온 ‘글쓰기’의 시간

─ 낙선 이후, 아버지의 저작 주석과 새로운 저술

─ 『Analysis of the Human Mind』 재출간과 『Autobiography』 집필


1868년 선거에서 밀은 웨스트민스터 지역구를 지키지 못하고 낙선합니다. 보수 진영이 거센 선거운동을 펼쳤고, 밀 스스로 선거자금 지출을 거부한 점도 표를 얻는 데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낙선 직후, 그는 다시 집필에 몰두합니다. 특히 아버지 제임스 밀의 『인간정신 분석(Analysis of the Phenomena of the Human Mind)』을 주석 달아 재출간했는데, 그 과정에서 현대 심리학의 성과도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I applied myself to a task…by preparing and publishing an edition of the Analysis of the Phenomena of the Human Mind.” – 『Autobiography』, Ch.7. ─ 한국어 번역: “저는 『인간정신 분석』을 재출간하며 주석을 붙이는 작업에 전념했습니다.”


VIII. 회고: “몇 년간의 의정 활동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 소수에 머물렀던 주장도, 결국 미래를 향한 밑거름


의회 낙선 이후 밀은 “작가로서 해야 할 일과, 내게 편지를 보내는 수많은 독자에게 답장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가 추진했던 ‘자메이카 사건 재조사’, ‘여성참정권’, ‘비례대표제’, ‘아일랜드 토지법 개혁’ 등은 초반에는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으나, 훗날 영국 정치가 제도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본인의 의정 활동에 대해 이렇게 적습니다.

“I had no cause to feel humiliated at my rejection by the electors…I received three or four invitations to become a candidate for other constituencies.” – 『Autobiography』, Ch.7. ─ 한국어 번역: “유권자들에게 떨어졌다고 해서 굴욕감을 느낄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른 지역구에서도 출마 제의를 받았지만, 결국 작가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밀의 정치·사상적 유산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철학과, 동시에 이 자유를 현실 제도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실천성을 모두 보여줍니다. 제7장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본 글은 Autobiography, J. S. Mill (1873, Ch.7.)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