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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총기 사이-니체가 풀어낸 짜라투스트라의 관점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넘어서는 사유의 무대

(본 글은 인문학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I. 니체와 짜라투스트라의 등장

- 오랜 은둔 끝에 태양을 향해 외치는 자, 새로운 가치를 위해 내려오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19세기에 활동한 독일 철학자로, 당시 전통적 가치관과 종교적 신념의 붕괴를 과감하게 예견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I부 프롤로그에서, 주인공 짜라투스트라는 산속에서 10년간의 고독을 마치고 세상으로 내려와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태양을 향해 “너 위대한 별이여!” (원문: “Thou great star!”) - 제I부 프롤로그 1절이라고 외치며, 오랫동안 은둔하며 쌓은 지혜를 이제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결심합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자신이 가진 지혜가 “벌이 너무 많은 꿀을 모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원문: “Lo! I am weary of my wisdom, like the bee that hath gathered too much honey.”) - 제I부 프롤로그 1절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내려감’(down-going)을 통해 인간들에게 지식을 베풀고,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존재 의의를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 내려감의 과정에서 우리는 니체가 그리고자 한 초인(Übermensch)의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II. 신은 죽었다

- 전통적 종교관의 균열과 새로운 인간상을 향한 충격적 선언


니체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는 “신은 죽었다(God is dead)”라는 선언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제I부 프롤로그 2절에서 오래된 수도자와 마주치는데, 그는 “이 늙은 성자는 아직 ‘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구나!” (원문: “Could it be possible! This old saint in the forest hath not yet heard of it, that GOD IS DEAD!”) - 제I부 프롤로그 2절라고 속삭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적 가치와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붕괴를 상징하며, 인간이 더 이상 신적 권위에 의존해 삶의 의미를 구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종교의 상실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인간 스스로가 새롭게 채워야 함을 역설합니다. 짜라투스트라는 구도자나 은둔자처럼 삶을 부정하거나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삶 자체를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초인(Übermensch)’ 개념을 제시합니다.


III. 초인(Übermensch)

-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와 삶의 의미


니체에게 ‘초인’은 단순히 힘이 강한 인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원문: “Man is something that is to be surpassed.”) - 제I부 프롤로그 3절라는 선언이 핵심입니다. 기존의 도덕과 권위를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시장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파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I teach you the Superman). 지상(地上)의 의미가 되도록 하라” (원문: “I TEACH YOU THE SUPERMAN... The Superman is the meaning of the earth.”) - 제I부 프롤로그 3절라고 외치며,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자기 극복을 시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때 ‘초인’은 추상적이고 먼 이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를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땅 위에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IV. ‘마지막 인간’과 대중

- 편안함에 안주하는 존재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


짜라투스트라는 초인과 대비되는 존재로 ‘마지막 인간(The Last Man)’을 제시합니다. 제I부 프롤로그 5절에서, 군중은 짜라투스트라에게 “우리에게 마지막 인간을 달라! 그러면 우리가 너에게 초인을 선물하겠다!”라고 야유 섞인 목소리로 요청합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안일함에 빠진 이 ‘마지막 인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찾았노라’라 말하며 깜빡이는 그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멸시할 능력도 없다” (원문: “‘We have discovered happiness’—say the last men, and blink thereby... who can no longer despise himself.”) - 제I부 프롤로그 5절

마지막 인간은 도전이나 창조보다 편안함, 안락함을 우선합니다. 갈등이나 위험을 피하고, 안전과 미미한 쾌락에 만족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니체는 이러한 ‘마지막 인간’의 등장을 인간 정신의 퇴보로 파악합니다. 창조와 자기극복을 통한 삶의 고양이 아니라, 외부 권위나 기존 질서에 타성적으로 매달리는 태도를 경계한 것입니다.


V. 세 가지 변신(Three Metamorphoses)

- 낙타, 사자, 그리고 아이를 통한 의지의 변화


제I부 ‘짜라투스트라의 연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비유 중 하나가 ‘세 가지 변신(Three Metamorphoses)’입니다. 니체는 인간 정신의 발달 과정을 [낙타 → 사자 → 아이]라는 상징으로 설명합니다.

Ⅰ) 낙타(Camel): 전통의 무게와 의무를 짊어지는 단계입니다. “무거운 것을 내게 지워 달라!” (원문: “What is the heaviest thing... that I may take it upon me.”) - 제I부 ‘The Three Metamorphoses’라는 자세로 스스로 짐을 지고, 순종하며 기존 가치를 존중합니다.

Ⅱ) 사자(Lion): 기존의 권위와 가치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는 단계입니다. 사자는 “너는 해야만 한다(Thou shalt)”를 외치는 용을 향해 “나는 원한다(I will)”로 맞서며, 기존의 법칙을 부수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합니다.

Ⅲ) 아이(Child): 부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와 순수한 시작을 의미합니다. “아이야말로 망각과 새로운 출발, 신성한 긍정의 상징” (원문: “Innocence is the child... a new beginning, a game... a holy Yea.”) - 제I부 ‘The Three Metamorphoses’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이 세 단계는 궁극적으로 낡은 가치에만 매이지 않고, 스스로 긍정적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과정을 암시합니다.


VI. 자기극복과 ‘내려감’(down-going)

- 위대한 목표를 품은 이가 겪어야 하는 고독과 시련


짜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사명에 대해 “나는 황량함으로 몸소 내려간다” (원문: “Thus began Zarathustra’s down-going.”) - 제I부 프롤로그 1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내려감’은 단순한 추락이 아니라, 더 높은 가치 실현을 위해 의식적으로 고통스러운 길을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그 과정에서 ‘밧줄 위의 곡예사(rope-dancer)’ 이야기가 제I부 프롤로그 6절에 등장합니다. 곡예사는 높은 곳에서 위험하게 줄을 타다가, 다른 광대에게 밀려 떨어져 죽습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며 “네 영혼은 육신보다 더 빨리 죽을 것이다” (원문: “Thy soul will be dead even sooner than thy body.”) - 제I부 프롤로그 6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지닌 유한성과 동시에, 그 파멸 앞에서도 초연해야 한다는 니체의 관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자기 극복의 길에 들어선 이는 종종 이런 고독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나는 도둑이 아니라, 나의 보물을 주려는 자”라고 선언하며, 궁극적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새 가치를 공유하고자 노력합니다. 이 과정이 곧 인간이 스스로를 극복하는 ‘영웅의 여정’입니다.


VII. 몸을 경멸하는 자들(Despiser of the Body)

-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다움을 옹호하기


제I부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서 짜라투스트라는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나는 한 마디를 하겠다. 그대들 스스로 몸을 버릴 줄 모른다면 침묵하라!” (원문: “To the despisers of the body will I speak a word... I wish them... to bid farewell to their own bodies—and thus be dumb.”) - 제I부 ‘The Despisers of the Body’라고 말합니다.

이는 과거 영혼과 육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영혼(정신)만을 고귀하게 여기고 몸을 천시해 온 전통적 관념에 대한 비판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몸을 ‘더 높은 지혜를 담은 다층적 존재’로 인식합니다. “나의 몸이야말로 나의 최고 지혜” (원문: “There is more sagacity in thy body than in thy best wisdom.”) - 제I부 ‘The Despisers of the Body’라고 주장하며, 인간이 땅(현실) 위에서 자신의 몸을 긍정해야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VIII. 죽음의 설교자들(Preachers of Death)

- 삶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경고


마지막으로, 제I부 ‘죽음의 설교자들’에서는 삶을 부정하고 종교적·도덕적 교의를 통해 죽음을 찬양하거나 피안(彼岸)을 추구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짜라투스트라는 “불필요하게 많은 존재들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그들은 오직 ‘죽음’을 설교한다” (원문: “The earth is full of those to whom desistance from life must be preached.”) - 제I부 ‘The Preachers of Death’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결핍과 고통을 이유로 삶 자체를 부정하고, 죽음이나 ‘또 다른 세계’를 도피처로 삼습니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그대들이 참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몸을 긍정하고 땅을 긍정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현실의 삶을 풍부하게 영위하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와 즐거움을 창조하라고 촉구합니다.

결국 니체가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말하고자 한 핵심은, 인간이 안락함이나 전통 신념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재정의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초인(Übermensch)은 비현실적인 이상인이 아니라, 날마다 몸과 정신을 긍정하며 적극적으로 변화와 창조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지향점인 셈입니다.


(본 글은 [THUS SPAKE ZARATHUSTRA, Nietzsche (1883)]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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