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 그리고 초인을 향한 길을 따라가다- 니체 (8)
(본 글은 인문학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후반부(특히 LXXII~LXXIII, “The Supper”와 “The Higher Man” 장)는 차라투스트라와 그의 손님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사유를 나누는 장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를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나만의 법일 뿐, 모두를 위한 법이 아닙니다.” (“I am a law only for mine own; I am not a law for all.” - 원문 LXXII)
이는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기 길을 따르는 이들에게만 유효한 ‘내면의 법’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후 차라투스트라의 대화 속에서 본문은 기존의 신 개념 ‘죽음’과 동시에, 새로운 인간상인 초인의 탄생을 역설합니다. “신이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바란다.” (“God hath died: now do WE desire—the Superman to live.” - 원문 LXXIII, 2절)라는 외침에서 드러나듯, 니체에게 인간은 스스로를 뛰어넘는 운명을 지닌 ‘과도기적 존재’입니다. 이른바 ‘더 높은 인간(Higher Man)’은 기존의 도덕과 관습을 해체하고, 자기 의지로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려는 상징적 개념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사상을 대중이 밀집한 ‘시장’에서 한 번 펼쳐 보았지만, 이내 회의에 빠집니다. 그 심정을 그는 “내가 모든 이를 향해 말했을 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And when I spake unto all, I spake unto none.” - 원문 LXXIII, 1절)라는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이처럼 대중(market-place)은 니체가 말하는 ‘더 높은 인간’이 자기를 온전히 개화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다수의 차원에서 ‘우리는 모두 같다’라는 단순 평등 담론이 오가고, 심지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더 높은 인간이라면 스스로의 고유한 영역에서 자라야 한다”라는 뜻으로 “더 높은 인간들이여, 시장에서 멀어지라.” (“Ye higher men, away from the market-place!” - 원문 LXXIII, 1절)고 역설합니다.
‘신이 죽었다’라는 선언은 니체 철학을 상징하는 문제 제기입니다. 오랫동안 절대적 권위였던 신의 부재가 드러나고, 인간은 과거 도덕·종교체계가 흔들린 상태에 처합니다. 니체는 이를 “인간은 끊임없이 넘어가고 내려가는 존재이다” (“O my brethren, what I can love in man is that he is an over-going and a down-going.” - 원문 LXXIII, 3절)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는 인간이 더는 기존 권위를 당연시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가치를 스스로 세워야 하는 과도기적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더 선해져야 하고 동시에 더 악해져야 한다.” (“Man must become better and eviler.” - 원문 LXXIII, 5절)라는 대목처럼, 니체는 기존 선악의 정의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판단과 창조를 요청합니다. 결국 신의 죽음 이후 인간에게 남은 과제는 ‘초인’을 지향하며, 자기 삶을 ‘가치 창조’의 장으로 삼는 것입니다.
‘더 높은 인간’이라 함은 고통을 피하기보다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그 과정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악하다(‘Man is evil’) — 그렇게 말했던 자들은 내게 위안이 되었다. 아, 그것이 오늘날에도 진실이기만 하다면!” (“‘Man is evil’—so said to me for consolation, all the wisest ones. Ah, if only it be still true to-day!” - 원문 LXXIII, 5절)라는 니체의 문장을 보면, 인간 안의 ‘악’이야말로 자기 극복과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 견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착함’만으로는 결코 새로운 길을 열 수 없으며, 과감히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용기가 필요함을 뜻합니다. 연민이란, 남을 동정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 자기 능동성을 훼손시키고, 그 결과 ‘힘의 의지(Wille zur Macht)’가 꺾이기 쉽다는 점에서 경계 대상이 됩니다.
니체 철학의 핵심은 영혼 또는 정신을 우위에 둔 전통을 비판하고, ‘육체(Leib)’의 삶의 에너지를 긍정하는 데 있습니다. 그는 “높이 오르려거든, 너희의 다리를 스스로 사용하라. 다른 사람의 어깨를 타지 말지어다.” (“If ye would go up high, then use your own legs! Do not get yourselves carried aloft.” - 원문 LXXIII, 10절)라는 말로, 자기 삶의 주체가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역설합니다.
이는 ‘땅’과 ‘자연’에서 얻는 생동의 힘, 그리고 육체가 주는 욕망과 감각을 부정하지 않아야 새로운 가치 창조가 가능하다는 메시지입니다. 즉, 인간은 정신-육체의 분리를 넘어선 통합적 존재로 재탄생해야 비로소 ‘초인’을 지향할 수 있습니다.
본문 후반(LXXVIII, “The Ass-Festival”)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손님들은 돌연 나귀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당나귀를 숭배하였다.” (“And worshipped the ass.” - 원문 LXXVIII)라는 인용구는 기존의 ‘신성’ 이미지가 우스꽝스럽게 대체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이는 누구보다 신을 거부하던 사람들이 다시금 엉뚱한 방식을 통해 숭배를 반복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장면입니다. 니체가 특히나 ‘웃음’을 강조하는 것도 이 대목과 이어지는데, 자기 성찰 없이 타성적으로 무언가를 맹신하는 모습을 꼬집는 동시에, 그런 부조리를 웃음으로 넘어서야 한다고 제안하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아니라 웃음으로 죽인다.” (“Not by wrath but by laughter doth one kill.” - 원문 LXXVIII)라는 구절도 그러한 풍자의 연장선입니다.
니체에게 ‘웃음’은 파괴적이면서도 창조적인 힘입니다. 특히 밤과 취함, 그리고 웃음이 결합할 때,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유를 열어젖힐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깊은 밤에 스스로 몰입하여 “불행은 ‘가라! 사라져라!’라고 말하지만, 모든 기쁨은 영원을 원한다.” (“Woe saith: ‘Hence! Go!’ But joys all want eternity.” - 원문 LXXIX, 11절)라고 노래합니다. 이는 고통조차 긍정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기쁨은 순간을 넘어 영원으로 이어지길 원한다는 그의 ‘영원 회귀(Ewige Wiederkunft)’ 사상을 상징적으로 담아냅니다.
또한, “행복한 가난에 축복 있으라!” (“Blessed be moderate poverty!” - 원문 LXXII) 같은 표현에서 보듯, 니체는 단순히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용맹한 정신과 극복의 힘이 깃든 풍요로움을 말합니다. ‘취중(醉中)’이라는 설정은 인간이 자기 한계를 깨어 일상의 틀을 무너뜨린 상태를 함축합니다.
마지막 LXXX, “The Sign”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밤의 축제가 끝난 뒤, 스스로를 새벽의 태양처럼 단장하고 동굴을 나옵니다. 어두운 밤에 몰입했던 그는 다시 빛으로 향하는데, 이는 새로운 시작과 성장을 상징합니다.
“한 번의 밤이 영원이라 해도, 그 영원을 또다시 극복하는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라는 니체의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권위를 탈각한 상태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해체·재구성하면서 ‘더 높은 인간’에 도전해야 하며, 밤의 내면을 헤치고 나와 맞이하는 새벽은 그 과정의 은유입니다.
결국 신의 죽음 이후, “높이 오르려거든 네 다리로 스스로 오르라.”라는 차라투스트라의 선언을 붙들고, 개인은 ‘초인’을 지향하는 도정(道程) 속에서 새로운 태양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본 글은 [THUS SPAKE ZARATHUSTRA, Nietzsche (1883)]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