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인간이 맞닥뜨리는 고독과 희망의 교차로-니체 (7)
(본 글은 인문학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I. 마법사(Magician)의 등장
II. 은퇴한 교황(Out of Service)의 고백
III. 가장 추한 인간(The Ugliest Man)이 말하는 신의 죽음
IV. 자발적 거지(The Voluntary Beggar)의 선택
V. 그림자(The Shadow)와의 대화
VI. 정오(Noontide)의 침묵
VII. 인사(The Greeting)와 ‘더 높은 인간’
VIII. 신 없는 세계, 그리고 남겨진 과제
니체가 그려낸 <자라투스트라>의 여정은 때때로 기괴하고 의외의 인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법사로 등장하는 노인은 광기에 가까운 몸짓과 함께 고뇌 어린 절규를 쏟아내며, 자라투스트라의 연민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자라투스트라는 이런 ‘연민’의 구제자가 아니라, 더 높은 통찰을 바라는 사색자입니다.
[I] 마법사의 비통함은 특정 신이나 존재를 향한 절박함으로 표출됩니다. 그는 “오, 낯선 신이여, 그대가 무얼 원하오? (Oh, thou unfamiliar God! What wilt thou?)” - (LXV. THE MAGICIAN, I절)라고 외치며, 자신을 옭아매는 초월적 시선을 가진 존재에게 절박하게 말을 겁니다.
[II] 그러나 자라투스트라는 이 극적인 절규를 보고도 냉정히 꾸짖습니다. 그는 마법사를 향해 “그대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을 뿐이오! (Stop this, thou stage-player!)” - (LXV. THE MAGICIAN, II절)라고 일갈함으로써, 오히려 ‘거짓된 태도로 고통을 연기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마법사가 실제로 고뇌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무대’에 세우는 모순적 태도임을 드러냅니다.
<LXVI. OUT OF SERVICE>에서 자라투스트라는 과거 신에게 일생을 바쳐온 마지막 교황을 만납니다. 그는 “나는 그분을 마지막까지 섬겼소. 이제 나는 더 이상 주인이 없고, 그러나 자유롭지도 않소. (Now, however, am I out of service, without master, and yet not free)” - (LXVI. OUT OF SERVICE, I절)라고 말하며, ‘낡은 신이 죽은’ 이후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잃어버린 채 방황한다고 고백합니다.
[III] 이에 자라투스트라는 낡은 신이 정말로 무너졌음을 상기시키면서도, “그 낡은 신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소... 그는 정말 죽었소. (that old God liveth no more: he is indeed dead)” - (LXVI. OUT OF SERVICE, II절)라 못박습니다. 그에게 더 이상 주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님을 보여주며, 오히려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서야 함을 암시합니다.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는 <LXVII. THE UGLIEST MAN>에서 펼쳐집니다. 여기서 ‘가장 추한 인간’은 자신의 죄책감을 담아, 자기가 곧 ‘신을 죽인 자’라고 고백합니다.
[IV] “그 신은 모든 것을 보고 있었소… 나는 그런 증인을 살려 둘 수가 없었소. (He ever beheld ME: on such a witness I would have revenge)” - (LXVII. THE UGLIEST MAN)라는 말에서, 그는 신의 절대적 시선이 자신의 치부를 남김없이 폭로한다고 느껴 그 시선을 제거하려 했음을 드러냅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너는 신을 죽인 살인자입니다!”라고 부르며, 결국 ‘신이 없는 세계’가 가져올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 인물은 ‘신을 제거하였으나, 오히려 더욱 견딜 수 없는 고독과 혐오에 빠져 있다’는 역설을 체현하고 있습니다.
<LXVIII. THE VOLUNTARY BEGGAR>에서 만나는 ‘자발적 거지’는 과거 풍족함과 명예를 모두 버리고 세상을 떠돕니다. 그는 “나는 단지 행복을 구했을 뿐이오… (I was seeking happiness upon earth… for that end, however, I would fain learn of these kine.)” - (LXVIII. THE VOLUNTARY BEGGAR)라고 말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제대로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고, 자신을 겸허히 낮추어 ‘소들과의 교감’을 시도합니다.
[V] 자라투스트라는 그런 그에게 “나의 동굴로 오시오… 크고 넓으니 잠시나마 평온을 찾을 수 있으리다. (Now, however, take leave at once of thy kine… My cave is large)” - (LXVIII. THE VOLUNTARY BEGGAR)라며 초대합니다. 이 행위는 그를 단순히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돌이켜볼 여유를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LXIX. THE SHADOW>에서, 자라투스트라의 뒤를 쫓는 ‘그림자’가 등장합니다. 스스로를 “나는 영원히 떠도는 자요… 주인도 없고 목표도 없소. (A wanderer am I, who have walked long at thy heels; always on the way, but without a goal, also without a home)” - (LXIX. THE SHADOW)라 칭하며, 자라투스트라를 따라다니는 이유를 고백합니다.
이 그림자는 자기 자신의 불안정함을 자라투스트라에게 투영하지만, 자라투스트라는 “그대의 방황을 그림자에게 돌리지 말라”는 식으로 응수합니다. 인간은 결국 자기 그림자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며, 목표 없이 방황한다면 어디든 그림자는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LXX. NOONTIDE>에서 자라투스트라는 한낮의 태양 아래 잠시 눈을 붙이며, 깊은 무의식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VI] “보라, 세계가 지금 완벽한가… 이 황금빛 순간에 내가 추락하듯 잠들어버리는가? (Hath not the world now become perfect?... Do I not fall? Have I not fallen—hark! into the well of eternity?)” - (LXX. NOONTIDE)
여기서 정오는 빛과 의식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자, 모든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시간입니다. 그 정점에서 자라투스트라는 오히려 가장 깊은 고독과 마주함으로써, 내면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듣게 됩니다.
<LXXI. THE GREETING>에서는 결국 자라투스트라의 동굴에 온갖 절망 어린 이들이 모여듭니다. 왕, 마술사, 교황, 거지, 그림자, 가장 추한 인간 등… 모두가 자기 고통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자라투스트라는 일면 그들을 환대하면서도, 동시에 단호히 외칩니다.
[VII] “참으로, 그대들은 모두 더 높은 인간일지도 모르오… 그러나 내 가르침에는 맑고 매끄러운 거울이 필요하오. (Ye may, verily, all of you be higher men... I require pure, smooth mirrors for my doctrines.)” - (LXXI. THE GREETING)
그가 진정 ‘기다리는 자’는 이들보다 더 강건하고 환희에 찬, “사자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 ‘더 높은 인간’의 도래를 위해서는, 지금 모여 있는 이들 역시 하나의 징후이자 다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를 통해 끊임없이 묻는 것은 신이 죽은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무의미가 만연한 현대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까요? 자라투스트라가 만나는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은 그 질문에 대한 여러 모습과 단계, 혹은 실패를 보여줍니다.
결국 자라투스트라가 기다리는 ‘더 높은 인간’이란, 과거의 낡은 신앙과 가치에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의 도덕과 삶의 의미를 힘차게 ‘창조’해내는 존재입니다. 신 없이도 허무에 빠지지 않으며, “스스로를 넘어서는 인간”을 꿈꾸는 니체적 사유의 정수가 이 책 전편에 펼쳐집니다.
(본 글은 [THUS SPAKE ZARATHUSTRA, Nietzsche (1883)]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