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980년대 노동시에 담긴 가난과 사랑의 위대한 변주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주체성 이해하기

(본 글은 인문학 전문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I. 1980년대 노동시의 ‘새벽’

- 현실 체험에서 싹튼 변혁의 씨앗 찾기


1980년대 한국 문학사에서 노동시는 단순한 계급문학이나 현실고발의 차원을 넘어, 시대적 전환과 자기 각성의 의미를 심도 있게 담아냈습니다. 특히 “가난”과 “사랑”을 연결 지은 시도들은 당시 노동자들의 구체적 삶과 그들이 처한 사회구조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 노동시는 “민족문학의 새로운 창작 주체가 등장했다”라고 평가될 정도로, 직접 노동 현장에서 일해온 시인들이 스스로의 현실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한편, 집단창작이나 릴레이창작과 같은 독특한 방식도 활발히 시도되었는데, 이는 전통적 시 창작 관행을 넘어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 노동자 시인들은 “취업공고판 앞에 선” 개인적 자아(박영근, p.132)를 통해 “가난”한 노동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빈 몸 빈 손으로 착취의 피라밋을 향해 진군하지 않으면 안 되는”(백무산, p.137) 투쟁 의지를 전면에 부각했습니다. 이러한 ‘빈손의 노동자’가 보여주는 목소리에서, 1980년대 노동시는 가난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변혁의 가능성을 싹틔우고자 했습니다.


II. ‘가난’의 재발견

- 착취와 대립 속에서 찾는 공통적인 것


1980년대 노동시에서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폭력적 ‘소유’에 의해 구조적으로 착취되고 소외된 수많은 이들의 “공통적인 조건”이었습니다. 본문에서 “1980년대 노동시에 나타난 ‘가난’은 노동자의 공통적인 조건이자, ‘소유’로 규정된 자본가와 그를 뒷받침하는 권력에 대한 대립항이다”라고 정리하였듯이(p.131), 이들 작품은 그러한 구조적 배제를 더욱 선명히 드러냅니다.


예컨대, “높은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어쩌다 계집아이들이 크래카를 씹으며 지나갔다”(박영근, 취업공고판 앞에서, p.132)처럼, 시적 화자는 자본의 상징적 풍요와 그 아래서 상처받는 삶을 함께 비추어 ‘가난’의 부조리를 부각합니다. 동시에 김해화 시에서 보이는 “저들이 쟁취해내고야 말 무노동 무임금”(p.139)이라는 선언은, 자본가와 권력 집단이 노동자의 가난을 어떻게 당연시했는지 고발하며, 가난이야말로 그들이 뿌리 깊게 제도화해온 폭력을 드러내는 지점임을 암시합니다.


한편, “우리들의 웃음과 아름다움과 빛을 송두리째 빨아먹는 흡혈귀”(박노해, 어쩌면, p.138) 같은 직설적 표현은, 착취의 이면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환기하며 ‘가난’을 투쟁의 명분이자 도덕적 우위의 밑거름으로 제시합니다. 결국 이 가난은 비참함만을 의미하지 않고, “집단적인 주체로 나아가는”(p.131) 계기를 마련하는 공통된 분모이자 투쟁의 근원이 됩니다.


III. ‘사랑’이라는 새로운 활력

- 주체성의 탄생과 확장 모색하기


‘가난’이 만들어낸 현실적 비애와 절망을 극복하고, 역동적인 변화와 연대를 이끌 원동력으로 1980년대 노동시는 ‘사랑’을 주목했습니다. 본문에서 “1980년대 노동시에 나타난 ‘사랑’은 가난을 극복하는 변화의 힘이며 자신을 능동적 주체로 변화시키는 본질이다”(p.131)라고 강조하고 있듯이, 사랑은 시인들에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근본적 변혁을 일으키는 에너지로 그려집니다.


대표적으로 박노해의 시 사랑에는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 / … 사랑은 자기를 해체하는 것 / 우리가 되어 역사 속에 녹아들어 소생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p.144). 이는 사랑이 외적 낭만이나 희망을 말하기보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불평등과 억압을 뒤집을 강력한 운동성임을 보여줍니다. 또, “사랑은 노동, 지루하고 괴로운 노동자의 길”(박노해, p.144)이라는 언급처럼, 사랑은 희생과 실천을 전제하는 지난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IV. 노동자-되기의 과정

- 가난한 사랑에서 발견되는 각성


1980년대 노동시에서 시적 화자들은 처음에는 가난에 순응하거나, “취업공고판 앞”에서 막막해하는 개인적 자아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곧 “대열”과 “대결”(박노해, p.141)을 통해 집단적 주체로 변모하고,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박노해, 이불을 꿰매면서, p.143) 자각하는 자기성찰도 이룹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이들 시가 ‘배타적 분할의 원리’를 파훼해 가는 과정(본문 p.131, 147)을 통해, “나 또한 다른 약자를 억압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자각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즉, 노동자가 겪는 억압을 고발하는 동시에, 가정·성별 등 또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위계나 차별에도 맞서는 ‘내적 각성’을 함께 그려냈습니다. 그 결과, 사랑은 무작정 감싸는 정서가 아니라, “갈라섬으로 일치를 향해 가는 잔인한 실천”(박노해, p.144)이자, 폭넓은 연대를 위한 전환점으로 작동합니다.


V. ‘분노’와 ‘고통’을 넘어

- 사회적 약자의 힘으로 일어서기


이처럼 1980년대 노동시는 ‘가난’을 뚫고 나오는 분노와 ‘사랑’의 고통을 결합해, 새로운 주체 “노동자-되기”의 서사를 완성합니다. “사랑은 잔인한 것, 냉혹한 결단 / 사랑은 투쟁, 무자비한 투쟁”(박노해, p.144)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여기서의 사랑은 고통스러운 각성과 도약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자멸이 아닌 능동적 힘으로 전환됩니다. 예컨대, 김해화 시에 등장하는 “뜨겁게 내딛는 우리들 사랑의 눈부신 첫걸음”(p.145)이라는 구절은, 좌절과 비애를 거쳐 연대와 투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랑의 잠재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자본·권력이 만들어낸 수동성과 억압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각성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힘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VI. 삶정치와 확장되는 연대

- 타자와 함께하는 사랑의 실천


네그리와 하트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자본·권력이 삶 자체를 지배하려는 ‘삶권력(bio-power)’에 맞서 아래로부터 이뤄지는 비판과 참여가 바로 ‘삶정치(bio-politics)’입니다. 김해화의 시에서 “잘못 흐르는 물살들을 막아다오 / 총칼의 물살, 압제의 물살”(p.146)이라는 호소는, 폭압적 구조에 주눅 들거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 같은 삶정치의 가능성은 소수의 희생이 아니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밑불이 된다”(백무산, p.145)는 연쇄적 각성을 통해 실현됩니다. ‘가난’이라는 공통의 조건 아래 맺어진 사람들은 ‘타자-되기’의 윤리성과 맞물려, 더욱 넓은 사회적 연대를 지향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이러한 과정은 곧 ‘공통적인 것’을 생산하는 실천이자 새로운 주체를 생성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p.131)라고 분석합니다.


VII. 시가 보여준 미래의 가능성

- 공통적인 것 생산하기


‘가난’과 ‘사랑’은 배타적 소유와 지배를 넘어서는 ‘공통적인 것’을 생성하는 핵심 요체입니다. “1980년대 노동시는 ‘가난’으로부터 공통적인 것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는 시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p.131)라는 결론에서 보이듯, 이들 시인들은 애초에 결핍으로만 여겨지던 ‘가난’을 능동적 주체 탄생의 기회로 재해석했습니다.


결국 “빈 몸 빈 손으로도 새 역사를 일구겠다”라는 전망 속에서 “우리가 되어 역사 속에 녹아들어 소생하는”(박노해, p.144) 비전을 그려낸 것입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프리랜서 등 새로운 노동 현실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질문을 던집니다. 곧, 가난과 사랑을 재발견하여 집단적 해방과 연대를 모색하는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이들 작품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VIII. 오늘날의 의미

- 1980년대 노동시가 남긴 유산


지식과 정보가 주도하는 비물질적 노동 시대라고 해도, “노동자성”과 “사회적 약자”를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1980년대 노동시가 제시한 “가난”과 “사랑”의 통찰은, “온 세상 관계가 평등과 사랑으로 일치되어야 한다고 믿는 / 민주적으로 단결된 우리”(박노해, p.141)라는 선언과 함께, 배제되거나 소외받는 자들의 현실을 돌이켜 보게 합니다.


“1980년대 시적 기획과 지향은 다소 변화되고 수정되었을지언정 그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p.131)라는 말처럼, 시인들이 예민하게 포착한 삶정치와 공통적인 것의 힘은 다가올 미래를 향한 실천적 구상으로도 이어집니다. “가난한 사랑”을 노래한 이들 목소리가 단절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다음 길에 대한 풍부한 은유로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독자의 평가와 일독을 권하는 이유]


1980년대 노동시에 깃든 ‘가난’과 ‘사랑’이라는 화두는 지금 다시 읽어도 전혀 낡지 않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노동자이기에 경험한 고난과 부조리, 그리고 이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피어난 사랑의 에너지는 결코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불안정한 노동 환경과 다각화된 계층 갈등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값진 통찰과 연대의 언어가 될 것입니다. 시대를 대면하는 이 시인들의 치열한 목소리는 우리에게 삶정치의 가능성과 공통의 미래를 향한 희망을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본 글은 [오윤정, "1980년대 노동시에 나타난 ‘가난’과 ‘사랑’의 의미" <인문과학연구> 51(1) pp.131-150 (2025), KCI 등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논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ArtiTextSear.kci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