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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상호성,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에서 돌봄을 읽다

서로에게 의존하며 성숙해 가는 관계의 미학

(본 글은 인문학 전문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I. 인정이론에서 사랑 찾기

- 인간의 '자기믿음'을 형성하는 출발점 살펴보기


인간은 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할까요. 그리고 그 인정 속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하게 될까요.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권리·연대·사랑이라는 세 가지 인정의 축을 제안합니다. 특히 <사랑>은 “강한 감정적 결속(Gefühlsbindung)으로 이루어진 모든 원초적 관계”로, “상호주관적 인정을 통해 자기믿음(Selbstvertrauen)을 형성해 가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라고 말합니다(“사랑(Liebe), 권리(Recht), 그리고 연대(Solidarität)라는 세 가지 형식에 따른 인정관계들은 상호주관적 인정을 통해 자기믿음, 자기존중, 자기 가치부여라는 긍정적 자기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당사자의 좋은 삶에 기여한다.” - 본문 89쪽 참조;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p.188). 그러나 기존 연구들은 권리·연대라는 ‘사회적’ 영역에 더 치중해 사랑의 인정형식 자체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해 왔습니다(본문 88쪽).


본 논문은 호네트가 제시한 세 가지 인정형식 중에서 사랑을 다시 바라봅니다. 저자에 따르면 “사랑의 인정은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준다”라는 점에서 가장 ‘선행적’인 의미를 띱니다(본문 89쪽). “공생적 융합과 상호 독립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특별한 관계”가 사랑이며, 이를 통해 각 개인은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II. 어머니-아이 모델의 의미

- '원초적 공생'에서 시작되는 독립과 의존의 해석


호네트는 『인정투쟁』에서 사랑의 전형을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로부터 설명합니다. “아이와 어머니는 초기에는 미분화된 상호주관성 속에서 서로를 분리하지 않고 완전히 의존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본문 92쪽). 아이는 생존 욕구 충족을 위해 어머니가 반드시 필요하고, 어머니 또한 임신 기간과 출산 과정 등에서 아이와 일체감 속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차츰 현실을 인식하며 어머니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할 때, 곧 어머니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독립적 타자임을 깨닫게 된다”라는 설명이 꽤 독특합니다(본문 94쪽 참조). 호네트는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의 대상관계이론을 통해 이를 해석하는데, “아이의 공격적 분노는 어머니가 정말로 내 소유물이 아닐 수 있음을 시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어머니가 완전히 떠나지도, 지나치게 무감각하지도 않게 적절히 대응해줄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파괴적 충동들을 통합”하며 타자의 독립성을 인정합니다(“어머니가 아이의 폭력을 견디고 여전히 아이에게 사랑을 지속할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파괴적 충동들을 통합’하고 자신의 전능성을 제한하면서 어머니를 하나의 타자로서 사랑하게 된다.” - 『인정투쟁』, p.199; 본문 95쪽). 이로써 <자신 역시 독립된 주체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돌봄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되지요.


III. 돌봄과 상호성의 원리

- 독립적 주체가 되어가는 길, 그리고 상호 존중


이러한 초기 발달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사랑의 인정관계는 단순히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애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호네트는 “서로에게 애정을 주고받되, 타자의 독립성과 경계를 인정해주는 것”이 사랑의 필수 구성요소라 강조합니다(본문 97쪽 참조). 이를 통해 “아이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면서도, 타인의 정서적 돌봄이 여전히 지속된다는 믿음 속에서 자기 잠재력을 창의적으로 펼쳐낼 수 있다”라는 것이지요(본문 94~95쪽).


바로 이 점이 호네트가 말하는 <자기믿음>과 직결됩니다. “내가 무엇이든 욕구해도 괜찮으며, 그 과정에서 무너질 때 나를 붙잡아줄 누군가가 있다”라는 감각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태도의 바탕이 됩니다. 호네트는 이렇게 형성된 자기믿음이 일종의 ‘삶의 토대’가 되어, 훗날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든다고 봅니다(본문 96~97쪽).


IV. 인정을 위협하는 무시의 유형

- 폭력, 무관심 등 사랑을 훼손하는 병리적 형태들


한편 “사랑이 허물어지는 경험”은 권리·연대가 무시당할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을 줍니다. 호네트는 “신체적 폭행이나 고문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으로 자기믿음을 파괴하는 방식”이라 분석합니다. “한 인간에게서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가능성을 빼앗는 폭력은 가장 근본적인 인격적 굴욕”이며, 이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자기 존재 전부가 타인의 의지에 무방비로 맡겨졌다는 절망감을 안긴다”는 것이지요(“고문이나 폭행 같은 신체의 훼손방식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이 신체적 고통이 아무런 보호 없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을 정도로 타인의 의지에 내맡겨져버린다는 느낌과 연결되어 있다.” - 본문 100~101쪽; 『인정투쟁』, p.252).


하지만 이런 극단적 폭력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언어적 학대나 차가운 무관심, 돌봄의 부재 역시 사랑의 관계를 직접 훼손하며, 그 피해는 결국 자기믿음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본문 102쪽)는 지적입니다. 즉 폭력의 정도가 어떻든 간에, ‘상대가 나를 사랑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안정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V. 『분배냐, 인정이냐?』 이후의 변화

- 가족 바깥으로 확장되는 사랑의 규범


호네트는 초기에는 어머니-아이 관계라는 ‘발달론적’ 접근을 택했지만, 이후 『분배냐, 인정이냐?』에서는 “가족뿐 아니라 친밀한 모든 관계에서도 애정과 돌봄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원칙론적’ 설명을 발전시킵니다(본문 105~106쪽). 즉 사랑을 통해 “필요한 돌봄을 주고받는 상호성”에 주목함으로써, 기존의 가족 중심 설명이 갖는 한계를 보완하려 한 것이지요.


이제는 “돌봄이 어느 일방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상호적인 관심과 보호가 가능한 관계야말로 사랑의 고유한 원칙”이라 주장합니다(본문 108쪽 참조). 이는 가부장적 가족질서에서 흔히 나타나는 여성의 돌봄 노동 편중에 대한 비판적 함의를 담고 있으며, 친밀성 관계 안에서도 새로운 투쟁이 촉발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의 요구를 균형감 있게 충족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이것이 곧 “인정투쟁”의 한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VI. 사랑과 권력의 문제

- 비대칭적 돌봄의 현실과 인정이론의 과제


그러나 가족과 돌봄의 영역에는 여전히 불가피한 비대칭성이 남아 있습니다. “극도의 노년기, 중증 장애처럼 돌봄이 일방적으로만 요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 (본문 110쪽)는 점을 고려할 때, 호네트가 말하는 <상호돌봄>이라는 틀이 과연 이런 현실을 온전히 포괄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아이리스 영(Iris M. Young) 등 여러 연구자들은 “비대칭적 돌봄을 고려하지 않으면, 사랑의 관계를 ‘동등한 상호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본문 108쪽)고 지적합니다. 호네트 스스로도 “돌봄노동의 사회적 평가와 분배의 불평등성”에 관한 문제를 전혀 외면하지 않았지만, 사랑이라는 인정범주와 어떻게 접목할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본 논문의 결론입니다.


VII. 포괄적 상호돌봄의 가능성

- 대칭과 비대칭 사이에서 균형 찾기


논문에서는 “돌봄의 상호성”을 지나치게 교환적·등가적으로만 이해하기보다, 관계마다 다른 정도의 ‘주고받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본문 112~113쪽). 어린아이나 신체적 제약이 있는 사람을 완벽히 대등하게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대상조차도 언제든 응답을 통해 나름의 돌봄을 되돌려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것이지요. 곧 “서로를 배려하고자 하는 기꺼운 태도 자체가 사랑의 본질”이며, 이를 통해 “완전히 비대칭적인 돌봄도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는 방향입니다(본문 113~114쪽).


물론 이런 구상이 모든 경우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지나치게 수동적인 돌봄” 혹은 “일방적 헌신”을 강요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네트의 인정이론이 가진 “좋은 삶에 있어 인정의 불가피성”이라는 관점은, 비대칭적 돌봄에 대해서도 나름의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본문 114쪽).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혀 돌보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그 자체가, 상호인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제안이지요.


[독자의 평가와 일독을 권하는 이유]


이 논문이 던져주는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 안의 사랑’, ‘친밀한 관계에서의 돌봄’에 새로운 도덕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아이를 기르고 노인을 부양하는 행위를 ‘자연스러운 일’로 치부하는 대신, 그것이 서로의 독립과 의존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인정의 과정>임을 명확히 짚어주지요. 또한 “어머니-아이”라는 전형적 모델을 통해 사랑의 전개 양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면서도, “어떻게 이 비대칭을 개선하고 확장된 돌봄을 구현할 것인가”라는 현대적 과제도 흥미롭게 제기합니다. 호네트의 인정이론을 사랑이라는 감각적이고도 복합적인 주제로 연결해보길 원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논문입니다.


(본 글은 [장성빈,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에서 사랑의 상호성" <사회와 철학> 제47집, pp.88-118 (2024), KCI 등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논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ArtiTextSear.kc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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