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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VS 의심, 헤어질 결심이 던지는 서늘한 로맨스

진실한 사랑을 추적하며 드러나는 서사구조 파헤치기

(본 글은 인문학 전문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I. 형사와 피의자의 만남

- 사랑과 의심이 교차하는 서스펜스적 시작


영화 헤어질 결심은 2022년에 개봉하여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형사와 피의자라는 금기된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본 논문(이하 ‘본 논문’이라 칭함)은 이 작품을 둘러싼 ‘사랑’과 ‘의심’이라는 이항대립 구도를 중심에 놓고, 그레마스(A. J. Greimas)의 구조주의 기호학적 방법론을 적용합니다.


“이 작품은 형사와 피의자 관계로 만난 남성 주인공 해준과 여성 주인공 서래가 서로를 욕망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핵심 의소인 ‘사랑’과 대립항 ‘의심’을 축으로 하여 구성된 기호사각형은 사랑과 의심의 이항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국에 이르는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한 서사의 심층 구조를 명료하게 밝혀준다.” - (본 논문, p.1)


즉, 극 중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해준(형사)과 서래(피의자)의 감정은 처음부터 ‘이성’과 ‘금기’를 넘나듭니다. 해준은 범인일 수도 있는 상대를 사랑하게 되고, 서래는 자신의 정체와 과거를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드러내는 방식으로 해준에게 다가가죠. 과연 이들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인지, 혹은 파멸을 예비한 불안한 기호(記號)에 불과한지, 작품은 계속해서 의심과 욕망을 교차시킵니다.


II. 구조주의 기호학, 그리고 행위소 모델

- 욕망과 방해, 정보전달 관계를 통해 본 인물 구도


본 논문은 서사분석을 위해 그레마스의 ‘행위소 모델(actantial model)’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는 서사를 구성하는 여러 인물들이 주체(주인공)·대상(주체가 욕망하는 것)·조력자·대립자·발신자·수신자라는 여섯 가지 범주로 나뉜다고 봅니다.


“그레마스의 기호학적 분석틀은 '연구자 개인의 사회문화적 속성의 영향에서 최대한 벗어나 기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텍스트의 심층적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다.” - (본 논문, p.2)


이를 영화 헤어질 결심에 적용해보면, 우선 형사 해준이 욕망하는 대상은 서래입니다. 동시에 서래도 해준을 욕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와 피의자’라는 관계가 이들의 욕망을 방해하기도, 혹은 자극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해준은 남편을 살해했을지도 모르는 서래를 ‘조직(경찰)’과 ‘법(사회규범)’의 힘을 빌려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임무를 띠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이미 그녀에게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가 결정적 단서를 쥐고도 증거를 폐기하거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모습은, 서래의 ‘조력자’가 되어버린 형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본 논문은 “월요일 할머니의 폰에서 서래가 남편을 죽였다는 강력한 증거를 발견했음에도, 해준은 이를 묻어둔다”라고 분석합니다(본 논문, p.4).


III. 서래, 욕망의 주체가 되다

- 진실을 향한 과감함과 자기파괴적 행보


한편, 서래 역시 영화 속에서 주체적인 욕망을 가진 존재로 부각됩니다. “서래는 자신의 목숨을 던질 정도로 해준을 욕망하고, 그의 조력으로 피의사실을 은폐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해준의 ‘의심’을 부추기면서 그를 파멸로 이끈다”라는 서술에서 보듯(본 논문, p.4), 그녀는 수동적 희생양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목표(해준의 ‘사랑’)를 향해 직진합니다.


서래는 중국인 디아스포라이면서 한국어가 서투른 여성이기도 하며, 첫 남편(기도수)의 폭력과 소유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인을 계획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라는 서래의 대사(본 논문, p.8 인용)는, 정형화된 윤리나 제도에 구애받지 않는 그녀의 사고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나아가,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파괴적으로 증명”한다는 분석(홍수정, 2022)처럼, 서래는 두 번째 남편(임호신)마저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해준을 다시 한 번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파국을 재촉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녀의 욕망은 철저히 자기파괴적입니다.


IV. 사랑이냐, 의심이냐: 기호사각형의 두 축

- 대립항을 통해 드러나는 심층 의미


본 논문은 그레마스가 제시한 기호사각형(semiotic square)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기호사각형은 “의소들의 구조적 관계, 즉 상반관계, 모순관계, 함의관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틀”이며, “신화와 담론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유용한 틀”(김경용, 1994: 302; 본 논문, p.2)입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의소는 ‘사랑’이고, 반대축에는 ‘의심’이 놓입니다. 그리고 각각에 대한 모순항(‘사랑하지 않음’ vs ‘의심하지 않음’)이 얽히면서, 해준과 서래의 관계가 전반부(부산)·후반부(이포)를 거치며 변주됩니다.


“사랑’과 ‘의심’이라는 의소의 대립은 형사 해준이 서래라는 피의자를 열렬히 의심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이 사랑하게 되는 모순적 장면들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 (본 논문, p.5)


즉, 전반부에서 해준은 서래에게 느끼는 호감(사랑)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고(사랑하지 않음으로 가장), 결국 전근을 택합니다. 후반부에서는 서래가 다시 사건을 일으켜 해준을 찾아오고, 해준 역시 자신이 애써 외면했던 사랑을 더는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의심과 사랑이 동시에 깊어지면서 비극으로 내달립니다.


V. 멜로와 스릴러의 교차, 남성적 장르 포뮬러

- 여성 서사의 가능성과 충돌하기


헤어질 결심은 수사물의 포뮬러를 충실히 따르면서, 남성적 장르에서 흔히 등장하는 ‘팜므 파탈’ 이미지를 차용합니다. “수사물, 느와르, 스릴러는 극히 남성적인 장르이며, 사랑과 의심의 대립은 주로 남성 주인공과 그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팜므 파탈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사 가닥에서 발생한다”라고 지적하듯(본 논문, p.6), 여기서 서래가 담당하는 구도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서래는 ‘형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그의 삶에 잊지 못할 흔적을 남기는’ 인물이 됩니다. 본 논문 역시 “결국 ‘해준’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비밀을 깨닫는 기회를 주고, 자신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여성적 서사의 활약과는 거리가 먼 희생양의 위치에 머물게 된다”고 분석합니다(본 논문, p.7-8).


이런 점에서 헤어질 결심은 여성 캐릭터가 전면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장르의 관습적 한계를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어질 결심>은 얼핏 여성적 서사가 강렬하게 기입된 텍스트처럼 보이지만...남성적 수사극의 외피 아래 그 가능성이 온전히 실현되진 못한다”라는 결론은 시사점이 큽니다(본 논문, p.8).


VI. 의식 VS 무의식: 안개 속에 숨은 감정

- ‘사랑의 진실’을 추적하는 또 다른 시선


본 논문은 라캉(Lacan)의 관점에서, 이 작품이 의식(상징계)과 무의식(실재계)을 어떻게 충돌시키고 있는지도 다룹니다. 해준은 경찰 조직과 혼인 제도라는 상징계 속에서 늘 원칙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하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이 서래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평온한 숙면을 취한다”는 사실(본 논문, p.9)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가 서래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억압해온 무의식적 욕망을 해방시킨다는 뜻입니다. 한편 서래에게 “언어의 단절과 이질적 문화”는 상징계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개인적 고립이나 자기파괴로 이어집니다. “서래는 한국어가 서투르고, 남편들을 연달아 죽음에 이르게 하며 금기를 서슴지 않음으로써 상징계의 균열을 표면화한다”라고 본 논문은 설명합니다(본 논문, p.9).


안개 낀 풍경, 안약, 곰팡이 난 벽처럼 흐릿하고 모호한 이미지는 인물들이 명확히 설명하기 힘든 감정(무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이포에서 자주 등장하는 ‘안개’는, 해준이 스스로의 욕망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헤매고 마는 혼란한 심리를 투영합니다.


VII. 결말에 드러난 사랑의 역설

- 욕망의 환유와 확인 불가능한 진실


본 논문에서는 작품 결말에 이르러 비극적으로 갈라지는 두 사람의 행보를 두고 “사랑이 그 진실함을 드러내는 순간 그 사랑의 유효기간은 끝나고, 주체는 새로운 욕망으로 이동한다”라고 해석합니다(본 논문, p.10). 유명한 영화 속 대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은 시작됐다’라는 대사는 사랑의 진실을 역설한다.” - (본 논문, p.10)


즉, 욕망은 실재(무의식) 속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얻는 순간 다시 다른 대상으로 환유(換喩)되는 속성을 지닌다는 것이죠. 결국 서래가 바닷속에 자신을 영영 감추어버림으로써, 해준은 끝내 ‘사랑’을 붙잡지 못한 채 계속 그 결핍을 떠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는 곧 “죽음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수한 서래의 자기소멸”이자, ‘사랑인가 의심인가’라는 질문에 아무도 답하지 못하게 만드는, 서늘한 열린 결말입니다.


VIII.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잔혹하게 아름다운

-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우리에게 남긴 여운


헤어질 결심은 완벽히 규정하기 힘든 ‘장르적 하이브리드’입니다. “수사물의 외피 안에서 멜로 장르가 뒤섞이며, ‘사랑과 의심’이 서로 대립하지만 결국 합쳐지는 방식”은(본 논문, p.6) 관객에게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해준의 ‘집요한 의심’이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유지되고, 서래는 오히려 그 의심을 이용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 뒤 스스로 사라집니다.


결국 이 작품은 무겁게 가라앉은 바다 풍경과 안개 속에서,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도록 만드는 역설적 매력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랑의 ‘진실함’을 꿈꾸면서도, 동시에 ‘사랑의 진실’(욕망의 끝없는 환유)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곱씹게 됩니다.


[독자의 평가와 일독을 권하는 이유]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한마디로 ‘사랑’을 다루면서도 결코 달콤하거나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사와 피의자의 모호한 관계 속에서 ‘정말 사랑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또한 수사물의 형식을 빌려 장르적 쾌감을 유지하면서도, 심층에서는 인간 욕망의 본질과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감정의 늪’을 파고듭니다. 더욱이 여성 캐릭터를 ‘능동적 주체’로 그리면서도 그 운명을 비극적으로 마감시키는 서사는, 장르의 전복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이렇듯 헤어질 결심은 ‘의심과 사랑’의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고 싶은 모든 관객에게 깊은 사유와 여운을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본 글은 [이희승,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사구조 분석: 진실한 사랑 혹은 사랑의 진실”, 『예술교육연구』 제22권 제2호, pp.1-12 (2024), KCI 등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논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ArtiTextSear.kc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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