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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질문-자유는 어떻게 선과 악을 가능하게 하는가?

내 안의 '악'을 해부하다: 근본악과 선택의지의 자유

(본 글은 인문학 전문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칸트에게 자유는 단순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의 후기 저작인 「근본악」 (정식 명칭: 「악의 원리가 선한 원리와 동거함에 대하여, 또는 인간 본성에서의 근본악에 관하여」, 1792/1793)에서는, 인간의 자유가 어떻게 도덕적인 선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악'까지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이는 칸트의 대표작인 『실천이성비판』(1788)의 '자율' 개념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모순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이해를 위한 확장일까요? 이 글에서는 칸트 자유 이론의 복잡하고도 매력적인 구조를 '추동자-담지자'라는 기능적 이원론을 통해 쉽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I. 칸트 자유 이론의 뜨거운 감자: 『실천이성비판』 vs 「근본악」

- 두 저작 속 자유 개념, 모순인가 연속인가? 오래된 논쟁 파헤치기


칸트 연구에서 「근본악」<선택의지의 자유>(Freiheit der Willkür) 개념은 『실천이성비판』의 <자율>(Autonomie) 개념과 어떤 관계인지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양립불가능론: 일부 학자들은 두 개념이 모순된다고 주장합니다(Ortwein(1983), Prauss(1983) 등). 『실천이성비판』의 자율 개념은 오직 선한 행위만을 자유로운 것으로 보기에, 악한 행위의 자유로운 가능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도덕적 결정론'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악」의 '선택의지의 자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칸트의 '자기 비판'("칸트의 자기비판", Prauss (1983), p. 92) 결과라는 해석입니다.


동일성론: 다른 한편에서는 두 개념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봅니다(Bojanowski(2007) 등). 『실천이성비판』에서도 이미 악의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으며("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통해서만 우리는 자유를 직접적으로 의식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의미로 해석, Bojanowski (2006), p. 256), 「근본악」은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은 양립불가능론이 칸트의 '도덕법칙과 자유의 동일성' 주장을 존재론적으로 오해했다고 비판합니다.


본 논문은 이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실천이성비판』의 자유 개념이 도덕적 악을 배제한다는 양립불가능론의 주장은, 칸트 자신이 명시적으로 악의 귀책가능성을 주장하는 것(" [...] 그가 저지른 법칙에 어긋나는 모든 행위[= 악한 행위]에 대해서 [...] 그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V98)과 맞지 않습니다. 또한, 칸트에게 도덕법칙은 자유의 '인식근거'(ratio cognoscendi)일 뿐, '존재근거'(ratio essendi)는 아니므로(V4 주), 이를 존재론적 동일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칸트의 의도와 다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근본악」이 아무런 새로운 의미가 없다는 동일성론의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실천이성비판』이 자유의 '일반적' 개념과 주로 선의 가능성에 집중했다면, 「근본악」은 도덕법칙을 실제로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주관의 능력, 즉 악의 '실질적' 가능 근거를 해명하는 고유한 기여를 하기 때문입니다.


II. 『실천이성비판』 속 자유의 밑그림: 순수 이성은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가?

- '자율'과 '순수 실천 이성' 개념 분석: 도덕 법칙의 탄생 과정 살펴보기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자유의 본질을 <자율>(Autonomie), 즉 의지의 자기 입법 능력으로 봅니다. 이는 "순수한 그 자체로서 실천적인 이성 자신의 법칙 수립은 적극적 의미에서 자유다. 그러므로 도덕법칙은 다름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 다시 말해 자유를 표현한다"(V33)는 구절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 자율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칸트는 그 근거로 <순수 실천 이성>(reine praktische Vernunft)을 제시합니다. 즉, 감성적 충동(경험적 조건)에서 벗어난 순수한 이성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의지(욕구 능력)를 규정할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순수 이성은 그 자체만으로 실천적임'이라는 『실천이성비판』의 핵심 주장입니다(V3).


칸트는 이성이 실천적으로 사용되는 두 가지 방식을 구분합니다(V19).


준칙 (Maxime): 개인이 자신의 행위 원리로 삼는 <주관적인 규칙>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모욕에도 보복 없이 참고는 지내지 않는다"(V19)와 같은 것이죠. 이는 그 개인에게는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주관적 필연성>), 왜 하필 그 규칙을 따르는지는 개인의 경험적 조건(성격, 과거 경험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서로 다른 주관들에 있어서 아주 서로 다를 수 있고,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니까 결코 어떤 법칙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V25). 이때 이성은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 최종 결정권자는 아닙니다.


실천 법칙 (praktisches Gesetz): 경험적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난 <순수한 이성>이 제공하는 <객관적인 규칙>입니다. 이는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객관적 필연성>을 지닙니다.


한편, 칸트가 사용하는 '의지' 개념에는 미묘한 구분이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의지'(Wille)는 이성을 통해 규정되는 욕구 능력을 총칭하지만, 특히 「근본악」의 맥락에서는 <선택의지>(Willkür)와 <순수의지>(reiner Wille, 실천이성과 동일시됨)를 기능적으로 구분합니다. 순수의지가 도덕법칙을 <수립>하는 능력이라면, 선택의지는 감성적 충동과 관계하며 이 법칙을 행위의 동기로 <채택할지 선택하고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문 각주 3 참조: 동물적 Willkür, 인간적 Willkür, 자유로운 Willkür 구분 등) 본 글에서는 「근본악」의 맥락에 따라 Willkür를 '선택의지'로 번역합니다.


III. 법칙과 준칙, 그 미묘한 관계: 이성의 메타적 시선

- 순수 이성이 주관적 규칙(준칙)을 넘어 보편적 법칙을 요구하는 방식 이해하기


칸트는 실천 법칙객관적 필연성준칙주관적 필연성과의 대비를 통해 설명합니다. 법칙은 준칙이 가진 '주관성'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특징, 즉 '몰(沒)주관성' 또는 '탈(脫)주관성'을 지닙니다.


하지만 준칙은 단순히 법칙을 드러내기 위한 소극적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법칙은 준칙에 대해 일종의 <메타적(meta)> 관계, 즉 한 차원 높은 관점에서 준칙을 평가하고 규제하는 관계를 가집니다. 칸트는 "주관적으로 필연적인 한 법칙은 이처럼 객관적으로는 아주 매우 우연적인 실천적 원리다."(V25)라고 말함으로써, 순수 이성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주관적 준칙은 보편적 기준에서는 '우연적'이고 '불완전한' 것임이 드러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야 비로소 전체 지형과 개별 대상의 한계가 보이듯이, 순수 이성의 '전체적 시야'를 통해서만 준칙의 주관적 한계가 명확히 인식되고 극복의 대상으로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메타적 시선 때문에 순수 이성은 준칙에 대한 <형식적>(V27) 규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순수 이성은 우리가 세우는 주관적 준칙들이 과연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 될 자격이 있는지(<객관성>, <공공성>)를 검토하도록 <강제>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정언명령의 핵심 요구입니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V30)


여기서 명령을 내리는 '순수 이성'은 명령을 받는 '너'(순수하지 않은 이성적 존재자, 즉 인간과 같이 감성의 영향을 받는 존재)에게, 너의 주관적 규칙(준칙)이 언제나 보편적 법칙의 형식(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형태)에 맞도록 행위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단순히 '이렇게 하라'는 내용 제시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가진 준칙이든 그것이 따라야 할 '형식적 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이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이성의 본래적 위상, 즉 <순수성>을 회복하라는 강력한 요구입니다.


IV. 명령에서 동기로: 도덕 법칙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 '존경'이라는 특별한 감정: 순수 이성이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메커니즘 분석


순수 이성이 실천적인 이유는 단순히 명령을 내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명령이 실제로 우리를 움직이는 힘, 즉 <동기>(Triebfeder)가 되어야 합니다. 칸트에게 동기란, "그의 이성이 본성상 이미 객관적 법칙을 반드시 좇지는 않는 어떤 존재자[=인간]의 의지를 주관적으로 규정하는 근거"(V72)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순수 이성의 명령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가 될까요? 칸트는 여기서 <존경>(Achtung)이라는 특별하고 독특한 감정을 제시합니다(V73).


순수 이성의 법칙(명령)의 엄격함과 보편성에 직면할 때, 우리는 자신의 주관적이고 제한적인 실천 능력(감성적 욕구에 좌우되는 경향)의 한계를 통감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 안의 감성적 경향성에 대한 일종의 '자기 비하' 또는 '[자기] 경멸'(Verachtung)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V75). 동시에, 이러한 한계를 깨닫게 해준 순수 이성의 위대함과 무조건적인 권위에 대해 우리는 저항할 수 없는 <존경>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 존경심은 도덕법칙 자체에서 비롯된, 지성에 의해 산출된 감정으로, 이것이 바로 순수 이성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도록 우리를 움직이는 유일하고 참된 도덕적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도덕법칙이 "주관의 감성에 영향을 미치고, 의지에 대한 법칙의 영향을 촉진하는 감정[=존경]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V75)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바로 도덕 법칙이 행위의 객관적 규정 근거일 뿐 아니라 "주관적 규정 근거, 다시 말해 동기"(V75)가 되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중요한 점은, 순수 이성은 결코 우리의 욕구능력을 '직접'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순수 이성은 오직, 순수하지 않은 이성적 존재자(인간)가 세우는 '준칙'을 매개로 해서만, 즉 준칙이 따라야 할 보편적 형식을 <제공하고>, 그 형식(법칙)에 대한 <존경심>을 통해 동기를 <부여함으로써만> 간접적으로 실천성을 발휘합니다. 순수 이성은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질료)을 제공하지 못하며, 오직 준칙이 따라야 할 '형식'만을 제시합니다. 칸트 후기 저작인 『도덕형이상학』에서는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 순수 이성으로서 이성은 [...] 이 이성에게 법칙의 질료(내용)는 없으므로, <선택의지의 준칙을 보편적인 법칙 자체로, 선택의지의 최상 법칙이자 규정근거로 적합하게 하는 형식>을 이루는 것 이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관적인 원인으로부터 말미암은 인간의 준칙들이 저절로 저 객관적인 원인들과 합치하지는 않으므로, 이성은 이 법칙을 오직 단적으로 금지 혹은 지시의 명령으로 지정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VI 214, 강조는 원문의 강조 표기를 따름)


결국, 순수 이성이 동기를 부여하는 <추동자>(Treiber)라면, 그 동기를 받아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준칙)을 형성하고 선택하는 <선택의지>(Willkür)는 순수 이성의 실천성이 현실에서 발현되기 위한 <담지자>(Träger)이자 필수적인 실질적 토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이 '담지자'의 역할이 다소 배경처럼 다뤄졌다면, 「근본악」에서는 이 담지자 자신의 '자유'가 핵심 주제로 전면에 부상하게 됩니다.


V. 「근본악」의 새로운 시선: '선택의지의 자유'라는 결정권자 등장

- '선택의지'(Willkür)와 '최상의 준칙': 도덕 법칙을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능력 해부하기


「근본악」에 이르면, 순수 이성이 아무리 강력한 도덕적 동기(존경심)를 부여한다 해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려면 우리가 그것을 '동기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집니다. 이 근본적인 결정 능력이 바로 <선택의지의 자유>(Freiheit der Willkür)입니다.


"<선택의지의 자유>는 매우 특유한 성질의 것이어서, 그것은 오직 인간이 자기의 준칙으로 받아들인 (즉 인간이 그에 따라 처신하고자 스스로 보편적 규칙으로 삼는) 동기 이외의 어떤 다른 동기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없으며, 그럴 경우에만 하나의 동기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자유로운) 선택의지의 절대적 자발성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VI 23-24, 강조는 원문의 강조 표기를 따름)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선택의지의 <절대적 자발성>입니다. 어떤 동기(그것이 도덕법칙이든 감성적 충동이든)가 우리의 행위를 이끌려면, 먼저 우리의 선택의지가 그것을 '나의 행위 규칙(준칙)의 근거로 삼겠다'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근본악」의 선택의지는 단순히 특정 상황에서 어떤 구체적인 준칙(예: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 또는 '나의 이익을 우선한다')을 세우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능력, 즉 내 삶 전체를 이끌어갈 궁극적인 동기 원리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메타적> 수준의 선택 능력입니다. 칸트는 이 근본적인 선택, 즉 '도덕법칙을 모든 준칙의 최우선 조건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자기 사랑(감성적 만족 추구)의 원리를 도덕법칙보다 앞세우거나 최소한 동등하게 둘 것인가()' 하는 선택의 결과로 형성되는 근본적인 마음의 태도를 <최상의 준칙>(die oberste Maxime, VI 31)이라고 부릅니다. 이 최상의 준칙은 우리가 개별적인 준칙들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말하자면 '준칙들의 준칙'(meta-maxim)인 셈입니다.


따라서 「근본악」선택의지의 자유는, 순수 이성(추동자)이 제공한 도덕법칙이라는 동기를 내 삶의 궁극적인 원리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하고 다른 원리(자기 사랑)를 따를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담지자의 고유한 자유, 즉 '절대적 자발성'을 의미합니다. 이 능력은 선과 악 모두에 대한 책임의 근거가 됩니다. 칸트는 "도덕적 의미에서 인간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선한지 또는 악한지, 이에 대해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틀림없으며, 또는 그렇게 만든 것이 틀림없다. 양자가[어느 쪽이든]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지의 작용 결과>인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그에게 귀책될 수 없을 터이고, 따라서 인간은 도덕적으로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할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VI 44, 강조는 원문의 강조 표기를 따름)라고 말하며, 선악의 근거가 바로 이 선택의지의 자유에 있음을 명확히 합니다. 이로써 칸트의 자유 이론은 '법칙을 세우는 자발성'(순수 이성)과 '법칙을 최상의 준칙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자발성'(선택의지)이라는 두 축을 가진 <기능적 이원론>의 모습을 뚜렷이 갖추게 됩니다.


VI. 선과 악의 갈림길: '인격성의 소질'은 무엇인가?

- 도덕적 악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열쇠: 순수 이성에 뿌리내린 독특한 능력 탐구하기


그런데 '두 종류의 절대적 자발성'(순수 이성의 입법과 선택의지의 수용)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또한, 순수 이성과 구분되는 선택의지의 자유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이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칸트는 「근본악」 1절에서 [인격성의 소질](Anlage für die Personalität)이라는 매우 중요하고 독창적인 개념을 도입합니다(VI 26-28).


"<인격성의 소질>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수성(Empfänglichkeit der Achtung), 즉 선택의지[의지]의 그 자체만으로써 충분한 동기[=도덕법칙]의 감수성이다. [...] 도덕법칙의 이념은, 이것과 분리될 수 없는 존경과 함께, 그것만으로는 인격성의 소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 도덕법칙의 이념은 인격성 자체(즉 전적으로 지성적으로 고찰된 인간성의 이념)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존경을 동기로서 우리의 준칙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를 위한 <주관적 근거>는 인격성에 <부가되어 있는 것>(Zusatz)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것은 <인격성을 위한 소질>이라는 이름(Namen der Anlage)을 얻을 만하다." (VI 27, 강조는 원문의 강조 표기를 따름)


여기서 칸트는 '인격성 자체'(도덕법칙 및 그에 대한 존경심, 즉 순수 이성의 영역)와 '인격성을 위한 소질'을 신중하게 구분합니다. 인격성의 소질은 도덕법칙을 존경하고 그것을 동기로 받아들 <수 있는> 능력, 즉 일종의 '수용성' 또는 '감수성'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할 수 있음>'이라는 가능성은 '<하지 않을 수도 있음>'이라는 가능성을 필연적으로 함축한다는 점입니다. 즉, 인격성의 소질은 도덕법칙을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능력인 동시에, 바로 그 능력 때문에 도덕법칙을 외면하고 따르지 <않을>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양면적인 능력입니다.


이 소질은 어디서 기원할까요? 칸트는 놀랍게도 이 소질 역시 <순수 이성>에 뿌리를 둔다고 말합니다(VI 28: "세 번째 소질[= 인격성을 위한 소질]만이 그 자체로 실천적인, 다시 말해 무조건적으로 법칙수립적인 이성을 그 뿌리로 갖는다"). 이것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칸트의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택의지가 도덕법칙을 동기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숙고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덕법칙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도덕법칙에 대한 의식(존경심을 포함하여)은 순수 이성의 명령(자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격성의 소질은 그것이 작동할 수 있는 내용(도덕법칙과 존경)을 순수 이성으로부터 받는다는 점에서 순수 이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인격성'의 소질), 동시에 그 내용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독자적 능력이라는 점에서 인격성 자체와는 <구분>됩니다('소질'). 칸트는 이 미묘한 관계를 소질이 인격성 자체에 '분리될 수는 없지만 구분되는' 방식으로 <덧붙여진 것>(Zusatz)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치 본체에 '딱 붙어 있지만'(anliegen, 'Anlage'의 어원적 함의, 원문 각주 49 참조) 본체 자체는 아닌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 양면적인 '인격성의 소질' 때문에 우리는 도덕적 악을 <자유롭게 선택할 실질적인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악이란,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도덕법칙을 <의식하고 있으되>, 법칙으로부터의 (때때로의) 이탈을 자기의 [최상의] 준칙 안에 <채용했다>"(VI 32, 강조는 원문의 강조 표기를 따름)는 것, 즉 도덕법칙의 요구를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자기 사랑의 원리(감성적 경향성 만족)를 그보다 앞세우거나 최소한 동등한 위치에 두기로 <결단>하는 근본적인 <마음가짐>(Gesinnung, VI 25)입니다. 인격성의 소질은 이러한 악한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주관적 근거>(VI 28)가 됩니다.


동시에 이 소질은 아직 선으로도 악으로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 즉 '도덕적 <무규정성>'의 상태를 전제합니다. 이 무규정성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스스로 결정한다'는 도덕적 행위(선이든 악이든)가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완전한 중립 상태, 즉 '뷔리당의 당나귀'와 같은 <절대적 무관심성>(absolute Indifferentialität)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칸트는 이런 개념을 비판함, VI 226 참조). 오히려 칸트가 말하는 무규정성은, 한편으로는 감성적 충동(유혹)에 끊임없이 자극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법칙의 요구(의무)를 의식하고 있는 <역동적인 갈등 상태>를 의미합니다(VI 41 이하, 최초 인간의 무죄 상태 비유 참조). 바로 이 갈등 속에서 선택의지가 어떤 원리를 우선시할지 결단하는 것이 도덕적 행위의 본질입니다.


VII. 추동자와 담지자, 그 기능적 이원론: 칸트 자유 이론의 완성인가, 균열인가?

- 「근본악」의 통찰과 그 문제점: 칸트 철학 체계에 던져진 도전 분석하기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칸트의 자유 이론을 '동기를 부여하는 추동자'(순수 실천 이성)와 '동기를 수용/거부하며 최종 결정하는 담지자'(선택의지)의 <기능적 이원론>으로 파악합니다. 「근본악」은 『실천이성비판』의 논의를 부정하거나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변에 있던 '담지자'의 자유로운 결정 능력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인격성의 소질]이라는 독창적 개념을 통해 그 가능 근거와 순수 이성과의 복합적 관계(뿌리는 같지만 구분되는)를 해명함으로써 칸트 자유 이론의 체계적 이해를 심화시킵니다. 특히 이를 통해 도덕적 악이 단순한 지식 부족이나 오류, 혹은 외부적 강제가 아니라, <이성적 존재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 즉 '예지적 행위'(intelligible Tat, VI 31)의 결과로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실질적으로 설명할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근본악」은 칸트 윤리학에서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이론적 성취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오한 성취는 동시에 칸트 철학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점> 또는 <긴장>을 드러냅니다. 칸트 철학의 기본 구도에 따르면, 자유는 본질적으로 시간과 공간, 인과법칙의 제약을 받지 않는 순수한 이성의 영역(예지계)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성으로부터의 이탈이자 반(反)이성적인 행위인 '악'을 어떻게 순수한 이성적 능력인 자유의 결과, 즉 '예지적 행위'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격성의 소질' 개념은 이 모순처럼 보이는 상황을 설명하려는 칸트의 노력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순수한' 이성 안에 그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악의 근원)을 내재시킨다는 점에서, 예지계(자유, 이성)와 현상계(자연 필연성, 감성)를 엄격히 구분했던 칸트 철학의 이원론적 구도 자체에 큰 부담을 안겨줍니다. 이성 안에 어떻게 비이성적인 것의 근원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난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국 칸트 자신도 이 문제의 어려움을 인식했는지, 후기 저작인 『도덕형이상학』(1797)에서는 선택의지의 자유로운 결단보다는 실천 이성의 법칙 수립 능력(자유)을 더 강조하며, 악을 마치 자유의 적극적 발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무능력'(Unvermögen) 또는 '선의 결여'(privatio boni)로 되돌아가 설명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VI 227 참조). 이는 「근본악」이 제기했던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의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일 수 있습니다. '이성 안에서 이성의 타자(악, 비이성)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이 근본적인 문제는 이후 헤겔과 셸링 같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결정적인 영감을 주며 독일 관념론의 역동적인 논의를 촉발하는 중요한 철학사적 계기가 됩니다.


[독자의 평가와 일독을 권하는 이유]


이 논문은 칸트 철학, 특히 그의 자유와 악의 문제라는 난해한 주제에 대해 기존의 단순한 해석들을 넘어선 깊이 있고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공합니다. '추동자-담지자'라는 기능적 이원론과 '인격성의 소질'이라는 핵심 개념을 통해, 어떻게 인간의 자유가 선뿐만 아니라 악까지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칸트의 복합적인 사유 구조를 명쾌하게 드러냅니다. 단순히 학술적 논쟁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칸트의 텍스트를 면밀히 분석하며 그의 사상이 가진 내적 긴장과 철학사적 중요성까지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자유와 책임, 인간 본성 속 악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독자라면, 이 논문을 통해 칸트 철학의 정수를 맛보고 자신의 사유를 한 단계 확장하는 귀중한 지적 경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본 글은 이정환, "「근본악」에서 드러나는 자유의 구조: 추동자­-담지자의 기능적 이원론으로서 칸트의 자유 이론‒", <철학> 제142집 pp.69-105 (2020), KCI 등재 논문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논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ArtiTextSear.kc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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