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과 열등감, 마녀사냥에 대하여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면 새삼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선녀와 나무꾼>에서의 폭력적인 행위를 보고 충격받는 경우도 있지만, 뭔가 좀 더 기묘한 의미에서 심층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어떤 학자들이 건국 신화를 분석해서 역사적 해석을 도출해 내는 것처럼 동화에서도 관점에 따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비평가들은 <겨울왕국>을 보고 LGBT의 권리를 은유한 거라고 하던데 타당한 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동화를 재해석해서 2차 창작하는 경우는 매우 많고 어떤 면에서 진부하기도 하다. 말레피센트, 위키드, 후크 정도가 생각나는데, 굳이 새로운 스토리를 붙이지 않더라도 동화에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동화에 대한 해석은 아이들의 창의적, 비판적 교육 측면에서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어서 몇 가지 사례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동화 백설공주에서는 왕비(여왕이 아니다)와 거울이 빌런으로 나오는데, 그들의 이름은 잘 나오지 않는다. 디즈니판에서는 그림하일드라는 이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백설공주의 진 주인공은 왕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거울이란 상징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아정체성이란 걸 가지고 있고, 이는 거울로 보는 자기 모습으로 표현된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시인 이상의 <거울>('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또꽤닮았소'), 윤동주의 <참회록>(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이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속의 거울이 떠오를 수 있는데 너무 복잡해지면 안 되니까 일단 잊어버리도록 하자. 사회학자 쿨리는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라는 말을 만들었고, 철학자 라캉은 '거울 단계'(Mirror stag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는데, 심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는 것처럼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자라면서 언젠가부터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순간, 다들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는 다시 말해 자기만족보다는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자아가 형성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아무튼 왕비는 거울과 대화를 통해 백설공주에 대한 질투와 살의를 느낀다. 이건 소위 열등감이다. '어린이 여러분 현실에 마법의 거울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현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울에게 물어보며 자기를 괴롭히고 타인을 증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와 타인을 미워하기 위해 마법의 거울 따위는 필요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들은 성인이 되면 높은 확률로 지독한 경쟁을 해야 하고 스스로의 무능을 괴로워하면서 왕비처럼 잘 나가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정신과적 질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거울을 보면 자기 자신이 싫을 거고 외모도 성격도 능력도 형편없다는 생각에 분노와 화풀이를 사회적 약자에게 돌릴 가능성도 높아요. 괜찮아요 대다수 어른들도 이미 그러고 있거든요 그 덕분에 세상은 발전하니까 개인이 불행한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물론 이건 농담이다)
그렇다면 이 동화의 교훈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모든 얘기에 교훈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릴 때 백설공주를 읽으면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일단 미녀로 태어나면 미움을 받으니까 그러지 말라는 건가? 사냥꾼에게 상냥하게 대해줘야 생명을 지킬 수 있단 걸까? 미녀는 낯선 난쟁이들에게 대접받을 자격이 있단 걸까? 아니면 멋진 왕자가 찾아올 테니 절망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걸까? 이름 모를 왕비에게 관심을 둔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결국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고, 상대를 해치려고 애써봤자 사냥꾼은 당신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겨우 죽이는 데 성공해 봤자 상대에게는 조력자가 있고 왕자를 만나서 잘 먹고 잘 살 테니,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말고 각자 행복하게 살자.'
생각해 보면 거울은 잘못이 없는 거 같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인지 지독하게 물어본 건 거울이 아니라 왕비고, 스스로 넘버원이라는 자부심이 무너지게 된 것도 거울이 아니라 왕비의 마음 때문이다. 실제로 백설공주가 더 예뻐져서 미움을 받은 걸까? 그건 중요치 않을 것이다. 아니 취향이 이토록 다양한 세상에서 애초에 제일 예쁘다는 말이 성립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
여기서 절대 빠져선 안될 문제는, 외모지상주의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사회구조, 열등감과 비교의식, 획일화를 부추기는 세상에 대한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설공주>에서 진정한 피해자는 공주가 아니라 왕비일 수 있다.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뛰어난 지적, 기술적 재능을 좋은 쪽에 활용했다면 평등한 세상에서는 왕비가 아니라 왕이나 대통령, 총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부장적 구조에서 아마도 사위에게 왕국을 물려주려고 했을 텐데, 그 왕자 말도 들어봐야 한다. 어쩌면 지독히 공부하기 싫어하고 소위 '얼굴만 반반한' 캐릭터일 수도 있지 않나? 백설공주의 애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훌륭한 통치자가 될 거라는 추론은 어떻게 가능한 거지? 어쩌면 그에게는 왕위를 물려주는 것보다, 왕비 자리를 받는 것이 더 행복한 결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선택한 적이 없는 걸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우린 이런 부분들에 딴지를 걸고, 아이들과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왕비는 캐릭터상 마녀로 설정된다. 놀랍게도 마녀 사냥은 동화가 아니라 실화다. 여성이라는 집단을 마녀(요녀)와 성녀로 구분하고 한쪽을 린치하는 일은 전혀 낯설지 않은데, 그러한 행위는 마녀가 성녀를 괴롭히고 질투했다는 식으로 왜곡되고 정당화된다.
어찌 보면 왕비는 억울한 누명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왕비가 노파로 변장한 게 아니었다면, 백설공주는 그냥 가출해서 지내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노파에게 사과를 사서 먹었는데 목에 걸려 질식한 거였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차별적인 인식과 잘 결합된다. 아! 그 나쁜 왕비가 소중한 공주를 괴롭히려고 노파로 변장한 거였구나! 독사과를 만들다니 이런 끔찍한! 그런 몹쓸 상상력으로 멀쩡한 왕비를 마녀로 몰아서 처벌하는 게 300년 전까지 결코 불가능한 사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노파로 완벽하게 변장할 마법 능력자가 겨우 사과 하나를 잘못 만들어서 살인에 실패했다고? 단순 질식이었나면 애초에 독사과일 필요도 없지 않나?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차별 앞에서 이런 합리적 의심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몹쓸 흑인들이 소중한 백인 여성을 겁탈했다! 국무부에 205명의 간첩이 숨어있다! 이런 식의 의혹이 있을 때 우린 자기 속에 숨은 편견이 없는지 다시 한번 더 의심해야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마녀사냥의 주요 피해자는 가부장제에 부합하지 않는 성소수자나 유능한 '미망인'(아직 죽지 못한 아내라는 뜻으로 과거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단어다), 매력적인 외모의 여성들이었다는 연구들도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외모와 성적과 연봉을 숫자로 비교하는 세상에서, 자기의 거울과 행복하게 대화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어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해야 하는 법이다) 다른 사람도 예쁘지만 나도 예쁜 부분이 있어. 애초에 예쁜 거에 그렇게 집착할 필요가 있나? 예쁘다는 건 다양한 기준이 있을 수 있어. 거울 속 요정이 나보고 별로라고 해도 뭔 상관이야 내가 보기에 괜찮으면 그만이야. 거울 보고 단장할 시간에 글쓰기 연습이나 한번 더 하거나 친구 가족들과 데이트 한번 더하자. 우리는 이런 생각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무비판적으로 백설공주를 읽고 나면, 어떻게 해야 넘버원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지, 넘버투가 되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왕이면 경쟁자의 새싹부터 잘라야 한다든지, 나이를 먹으면 다들 못생겨지니까 미리미리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든지, 상대가 죽었는지는 다시 한번 확인사살해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제발 남의 눈치는 그만 보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기에는 인생이 짧다. 1등만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1등도 잠깐 행복하고 다시 불행한 세상이라고 한다. 백설공주가 행복해 보인다면, 그건 공인 외모지수 1등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기묘한 거울에 맨날 질문하고 있지 않아서다. 외모관리나 패션이 모조리 쓸모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랜드캐니언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감탄하듯이 자기 외모를 원하는 방향으로 시도해 보고 행복해하는 건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칭찬할 일이다. 다만 남의 SNS와 비교를 시작하거나 순위를 매기기 시작할 때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백설공주 이야기는 기존 민담에 기초해서 19세기에 만들어졌다는데 열등감과 무한경쟁, 비교의식과 획일화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극대화되는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무서운 진실이지만, 세상은 당신에 무관심하지 않고, 당신의 열등감과 비교의식을 어떻게든 자극해서 자본 증대에 기여하도록 작동한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불편과 불행을 느껴서 자기 상태에 불만족하고 더 노동하고 소비하도록 물질에 의존되게 할 것인지, 수많은 뷰티상품과 피부과 진료와 첨단 LED마스크로 나이를 낮추고 안티에이징과 시술, 수술로 늙은 왕비가 아니라 어린 백설공주처럼 될 수 있게 할 것인지,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런 일에 전문가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피부과, 성형외과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까 나중에 쓰기로 하자. 이 모든 이야기를 저자가 의도했을 리는 없겠지만, 이야기라는 건 이렇게 흥미롭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재해석될 수 있고, 그래서 예술가들은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미래를 선취하기도 하며 이는 결코 드문 사례가 아닌 거 같다.
--위 모든 글은 제가 쓴 게 아니고 가상의 화자 입장에서 쓴 것입니다. 글쓴이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Pexel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