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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in Apr 15. 2024

망각

생각의 호수에 가라앉은 기억


꿈은 없는 이들에게는 더 가혹하다.


 없다는 것은 목표가 없는 것일 수도, 어쩌면 돈과 입지가 없는 것일 수도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가진 사람보다는 가지지 못한 사람일수록 꿈은 성취하기가 더 가혹하다, 마치 귀성길을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일까, 그만큼이나 이 시대의 꿈이라는 것은 돈이 없이, 혹은 여유가 없이는 쉽사리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근례에 느꼈던 가장 큰 문화충격은 아직 입시도 보지 않은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자신들이 일종의 커뮤니티에서 했던 더빙이나 녹음 경력을 마치 성우 경력처럼 기재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대학 입시나 채용에서 경력으로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그나마 그런 것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관료제 방식에서 벗어난 그 어떤 곳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곳을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그런 아이들은 성우라는 꿈을 목표로 정해두고 앞서 걸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불러와서 몇 가지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첫째로는 성우 학과나 전문 수업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가 성우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 둘째로는 우리나라 성우 업계가 정말로 협소하다는 점, 셋째로는 성우가 되고 나서도 당장에 살기 위한 돈벌이가 될지 희박하다는 점, 이 세 가지를 말해주어도 마음속 깊이 목표를 정해둔 사람이라면 쉽사리 성우의 꿈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건 절대로 나쁜 점이 아니다, 자기가 정해놓은 목표에 꿋꿋이 나아가겠다는 집념이니,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독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오는데, 바로 성인이 되고 나서 스무 살 중후반 즈음이 되고 나면ㅡ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ㅡ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먹고 살아갈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엔 성우로 잠깐 활동했던 사람을 상담했던 이야기를 하자면, 그 사람은 ‘성우’라고 할 수 있는 정도까지에 갔어도, 실제로 내가 하고 싶은 연기나, 정기적으로 제의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가 꿈꿨던 성우라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나이를 먹어서도 계속 돈이 궁해지는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답답했기에, 이 자리를 끝까지 지켜나가야 하는지 내게 문의했다.


 나로서는 해줄 말이 정해져 있지만 쉽사리 꺼내기 힘들었다, 현실이란 것은 가혹하기에, 꿈보다는 생존이 먼저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가져왔던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기엔 나는 자격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진지하게 다른 목표를 고려해 봐라’라는 말 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아직 꿈꾸는 학생들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자동차와 그마저도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는 상황에서 그들은 걸어서 도로 위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대학교 입시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그 목표에 대해서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속도를 내서 달리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꿈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 멈춰있거나 아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현대에 절어버리면서 우리는 우리가 가졌던 꿈들을 마음속 깊이 밀어 넣고 생존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꿈들을 서서히 망각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다른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면서 오히려 어릴 적 품었던 꿈이 갑자기 다시 선명해지곤 한다. 이번엔 한 고등학교 교사였던 내담자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분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일종의 염증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제공하는 요직과 중추를 사양하고, 같은 재단 하의 중학교에서 진로 상담 교사로 직접 자원해서 가셔서 여유를 즐기고 계셨다, 그러면서 그분과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하시는 말이,


 “내가, 젊을 적에 운동을 열심히 했었는데”


 이 말을 서두로 씁쓸하게 웃으면서 중학생들을 대하면서 들었던 느낌을 자기에게 털어놓곤 하셨다, 그러면서 예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했었는지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았다, 사람이 자기 자리에 정착하고 나면 정말로 내가 가야만 했었던 고향이 어디였는지 깨닫게 되는구나,라고


 아직 나는 그 선생님이 살아왔던 시간보다 현저히 젊다, 나에게 상담을 받는 사람들 대다수가 나보다는 연륜과 경험 모든 것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카드라는 명목을 앞세워서 그 사람들에게 조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 위로만을 건네는 것 밖에 하지 못한다.


 나도 타로상담사가 내 꿈은 아니었다, 위에서 다뤘던 성우를 꿈꾸는 학생들처럼, 나도 성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왜 없는 자가 꿈을 더 이루기 힘든가에 대해서, 나는 그 이야기에 산 증인이자 증거가 돼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나는 인문계 대학에 입학하고 그나마 우수했던 성적의 역사를 전공하게 된 것이다.


 그보다 더 이전에 뭘 모르던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이 꿈이었다,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조련사도 되고 싶었더랬다, 그 꿈들을 간신히 기억해내고 있는 것처럼, 어릴 적 꿈은 서서히 생각의 호수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의 호수가 모두 말라버리고 나는 날이면 다시금 땅 위로 드러나겠지, 영화를 봤을 때도 음악은 점점 말라가는 생각의 호수에서 기억을 땅 위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현실이라는 늪 속에서 둘러싸인 우리의 호수는, 수면이 어디까지 올라와 있을까,


 꿈을 붙잡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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