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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메신저

by 타르시아 Mar 10. 2025

‘oo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내가 큰 맘을 먹고 들어간 메신저의 첫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집에 인터넷 선이 깔린 첫 날, 나는 말로만 듣던 인터넷 카페에 처음으로 접속을 했다. 그 카페는 그 당시 내가 들어가있던 재수학원의 반 친구가 만든 카페였다. 한창 입시 공부를 해야 할 때, 인터넷 카페를 들어가는 것은 뭔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재수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활기찼고 내가 속했던 반 친구들은 항상 새로운 인간관계에 목말라 있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왜 그 친구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그리 열정적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지역, 같은 나이의 사람들과 지냈던 고등학교와 달리 재수학원에서는 서울에서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나이대 역시 다양했다. 나처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개중에는 대학을 이미 졸업하고 나서 다시 자신이 원하는 대학 입학에 다시 도전하는 20대 중후반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했기에 학창시절 내내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워했던 나조차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내뿜는 인간적인 매력과 특성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번 친해져보고 싶다.’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카페 메신저로 들어가자 몇몇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했다. 그 인사가 끝나자 다시 채팅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채팅을 읽어내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내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멍하니 그들의 대화를 구경하다 조심스럽게 ‘안녕히 계세요.‘ 라는 말을 하고 퇴장 버튼을 눌렀다. 그게 나의 메신저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그렇게 한번 혼이 난 후, 나는 재수 생활 내내 카페에는 들어가보아도 메신저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는 메신저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휴대전화로는 많은 메시지를 자유롭게 보낼 수 없었다. 한 달마다 단문 100개 정도만을 무료로 보낼 수 있던 그때의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친구를 새로 사귀면 우리는 서로의 msn 메신저 주소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순간, 가방을 던지고 나는 바로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 상대의 상태가 ‘대화 가능’ 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대화 가능‘ 상태가 되는 순간,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더블클릭했다. 그렇게 대화는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메신저 대화는 1대 다가 아닌 1대 1의 채팅이었기에 나는 재수 때의 순간처럼 내가 언제 대화에 끼어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가끔 친구가 다른 친구를 초대하여 1대 3이나 1대 4가 되는 순간, 나는 그때처럼 다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낯설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그들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에 어울릴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처럼 나에게도 누군가가 쓴 <메신저 대화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대 1 채팅을 해도 가끔씩 다른 친구가 또 다른 1대 1 채팅을 내게 걸어오면 그때도 쉽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두 개의 대화가 동시에 진행이 되면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지, 어느 대화방에 먼저 대답을 해야 할지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그 msn 메신저는 내게 ‘넓은 세계‘ 를 보여주었다. 그 당시 블로그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몇몇 온라인 친구들을 알게되었고 매일 밤마다 그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 당시, 컴퓨터는 내 방이 아닌 외따로 떨어진 구석진 방에 있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운 방이었다. 추운 걸 몹시 싫어하고 잠을 매우 사랑하는 나였지만 그 친구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나는 밤마다 내 방의 불을 끄고 잠을 자는 척하다가 거실에 있던 부모님이 안방으로 들어가시면 몰래 내 방을 빠져나와 그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새벽 1-2시까지 그들과 이야기를 끝없이 주고받았다. 책 이야기, 음향기기 이야기, 게임 이야기, 서로가 사는 이야기 등, 대부분 같은 사람들과 하는 비슷한 이야기였지만 대화의 내용은 매일 새로웠다. 그리고 항상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남긴 채, 메신저를 끌 때마다 나는 내게 중얼거렸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렇게 말도 없고 남에게 말 걸기도 싫어했던 내가 많이 변하긴 했다.’ 라고.  하지만 나의 그 즐거웠던 msn 메신저 생활은 대학 졸업 이후 끝을 맺었다. 깊은 우울에 빠진 이후로 나는 컴퓨터도 켜지 않고 그렇게 친해 메신저만이 아닌 오프라인으로도 연을 맺기까지 한 온라인 친구들과도 만남을 끊었다.     


다시 메신저를 만난 것은 직장에 들어와서였다. 일반 메신저는 아닌 사내 메신저였다. (내가 메신저와 연을 끊은 사이에 msn 메신저는 사라졌다.) 처음에는 몹시 낯설었다. 업무로 메신저를 사용한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업무상으로 불쑥 말을 거는 것도 낯설었고 그 사람들과 업무상으로 필요한 대화만 딱딱하게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그에 익숙해져 갔다. 나중에는 오히려 업무가 아닌 이유로 내게 메신저 대화를 청하는 사람들이 어색해질 정도였다. 나의 입사 동기들, 내 옆에 앉은 선배들이 직장 내의 친한 사람들과 메신저를 하는 걸 보면 뭔가 부럽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학 때처럼 이제는 그저 친해지고픈 마음으로,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메신저 대화를 걸 수가 없었다. 그곳은 직장이었고 모든 이들이 내게는 다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업무상으로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때처럼 내 솔직한 속마음과 꿈을 터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첫 직장을 떠나고 나는 메신저가 아닌 카카오톡과 본격적으로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매일 카카오톡을 쓰면서도 이 카카오톡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내게 카카오톡은 필요하지만 언제나 멀어지고 싶은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걸 통해 직장 사람들, 친구들, 그리고 한동안 사귀었던 옛 연인과 수많은 이야기를 하였지만 나는 언제나 카카오톡의 ‘1’이 뜨는 순간, 그 메시지가 누군가에게 오는 것인지에 대해 항상 두려워한다. 그리고 옛 연인과의 마지막 며칠 동안은 대화방에서 ‘1‘ 이 사라지는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 이별의 말을 들은 그에게서 날아오게 될 메시지가 무엇일지도 두려웠고 나는 그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지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업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두번째 직장을 퇴사하기 며칠 전까지 나는 퇴근을 하자마자 카카오톡의 알림을 꺼놓았다. 잠깐만 읽지 않아도 미친듯이 쌓이는 업무 관련 오픈채팅방의 내용을 보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업무에 관련된 내용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너무 무능력하게 느껴졌고 조금만 모르는 개념의 이야기가 나와도 내가 무언가를 또 놓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카카오톡을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정을 붙이지 못한 존재일 뿐, 그 역시 ‘메신저’ 로 자신의 기능을 다할 뿐이기에.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받으면서 카카오톡 없이는 살지 못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 다만 나는 여전히 msn 메신저를, 매일의 대화에 설레던 나를, 그때 만났던 사람들을 깊이 그리워할 뿐이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추억이고 나는 과거가 아닌 오늘을 사는 사람이지만 아직도 내 눈 앞에는 가끔씩 그 광경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접속을 기다리면서 누군가의 상태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사람의 상태가 ‘대화 가능’ 이 되면 오늘은 무슨 대화가 이어질까 하고 두근대며 마우스 더블클릭을 하던 그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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