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 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리뷰
목요일, [단숨에 책 리뷰]
여섯 번째 책 :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4차 산업혁명은 '유령'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실체가 없음을 폭로하는 도발적인 책. 진정으로 우리 사회가 해야 하는 것을 얘기하는 책. 이를 과학기술철학, 기술사 적으로 분석한 좋은 책.
1. 왜 읽었나
4차 산업혁명의 홍수다. 둑 터진 강물처럼 연일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로봇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온다. 다큐멘터리나 책을 찾아봤다. 보고 나서 느낀 점은 결국 중요한 것은 '리터러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재밌어 보이는 책 제목을 만났다. 제목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아니나 다를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첫 구절을 인용한 문구였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구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 <공산당 선언 중에서>
한국에 반(反) 4차 산업혁명 메니페스토라는 그룹이 있다고 한다. 이 그룹은 이렇게 얘기했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대한민국의 모든 세력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치인과 관료와 학계, 과학기술자와 인문학자는 이 유령을 자기편으로 하려는 신성한 제식을 위해 동맹을 맺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5쪽>
자크 데리다는 말했다. '유령'이란 실체는 없지만 분명 현실 층위에서 아른거리는 것이라고. 과거에서 온 것이 아니며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온 유령이라고. 4차 산업혁명은 미래에 있어 아직 현실에선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지만, 너무나도 큰 담론이 되어서 현실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는 게 반(反) 4차 산업혁명 메니페스토의 얘기다.
게다가 이 책을 기획한 사람이 홍성욱 교수라는 점도 신뢰를 높였다. 그는 과학사, 과학기술학 연구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의지가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를 연구해왔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과학 혹은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허구에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홍성욱 교수가 기획하고 다른 교수들이 쓴 책이라면 4차 산업혁명의 실체와 우리의 선결과제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2. 무슨 내용인가
앞에서 얘기했지만 좀 더 얘기해보자면
총 7개의 장으로 되어있고, 각 장의 제목은 이렇다.
1장 : 4차 산업혁명, 실체는 무엇인가 - 한국의 4차 산업혁명론이 낳은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분석과 비판 (김소영
2장 : 왜 '4차 산업혁명론'이 문제인가? - 4차 산업혁명 비판 일반론,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것 (홍성욱)
3장 : 오래된 깃발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나 - 슬로건과 키워드를 통해 살펴본 '나라가 원한' 과학기술 (김태호)
4장 : 부가가치, 초연결성, 사회 혁신 - 경제학의 관점에서 본 4차 산업혁명론 비판 (홍기빈)
5장 : 기초과학은 어떻게 신산업이 되는가? -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산업화 과정을 통해 본 혁신의 현실화 과정 (남궁석)
6장 : 정부 주도 과학기술 동원 체계의 수립과 진화 - 1960년대의 유산과 요원한 '과학의 공화국' (홍성욱)
7장 : '기초'라는 혁명 -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과 혁신의 의미 (김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4차 산업혁명론에 대한 비판과 우리 사회의 과학 기술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논하는 게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각 교수들이 공감하는 문제 인식은 다음과 같다.
-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론은 과장되었다.
- 4차 산업혁명론은 특정 기술을 발전시키면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적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 1970년대 이후 기술 혁신이 일어났지만 경제는 저성장하고 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것에는 혁명적 요소가 적다.
- 4차 산업혁명론은 국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국가가 주도해 의제를 설정하고 모든 과학의 지원을 한 분야로만 몰아넣는다고 해도 생각만큼 효과가 잘 안 날 수 있다.
- 기술이 뭔가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기술은 그 사회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3. 어땠나?
각 논지에 관해 더 많은 내용들이 담겨있다. 한국에서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 내부에 존재했던 모순은 뭔지 등도 나와있다.
이 내용을 참고해볼 만하겠다. 과학기술 전공자는 90년대 초반에 굉장히 인기 있었다. 한때는 대학교 입시에서 의대의 인기를 따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사건이 있은 뒤 의대생과 과학기술 전공자의 지위는 또 달라졌다. 자신의 병원을 가진 의사에 비해 기업 연구소에서 봉급을 받는 직장인 연구원의 지위가 더 불안정했던 것이다.
IMF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김대중 정부는 다시 과학기술을 활용하고자 했다. 당시 인터넷 산업 활성화를 강조했다. 포털 산업, 인터넷 산업 등이 이때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IMF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자유주의적인 해결 방법을 받아들였다. 즉, 인터넷 산업은 활성화되었지만 IT업계 노동자의 일자리는 더 불안정해진 것이다.
위에서 얘기했듯 결국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 구조를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배분할지의 문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알아야 하는 문제며, 기술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 그 배경에 담긴 과학적 지식, 원리, 작동방법을 충분히 익힐 수 있는 토대가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산업을 집중 육성하려 하겠지만 이와 함께 밑바탕이 될 기초과학 분야도 탄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기술 리터러시'다. 기술뿐만 아니라 이 '사회 구조'의 판을 읽고 새로운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는 굉장히 경직되어있다. 4차 산업혁명의 배경이 되는 기술, 그 저변에 깔린 과학에 대한 이해 없이 껍데기만 수입해오는 형국이 될 것이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수입해 온 외국 문물이나 문화, 제도는 대개 키치 형태로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우리 사회는 맹목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좇는 게 아니라. '이 사회는 어떻게 작동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에는 어떤 철학적, 기초과학적 배경이 담겨있는지' 충분히 학습한 후에 우리 상황에 맞게 수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