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진, <누운 배> 리뷰
목요일, [단숨에 책 리뷰]
다섯 번째 책 : <누운 배>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눈길을 끈다. 중국에 있는 한국 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소설로 풀었다. 사내 정치 얘기고, 사내 권력관계 얘기고,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방법에 대한 얘기고,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다.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주억거릴만한 그런 얘기다.
1. 왜 읽었나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을 읽고 오랜만에 한국 장편 소설을 읽어야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한국 소설이 언제였던가 고민하며 책을 골랐다.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내가 정말 재밌게 읽었던 책인데, 두 소설의 공통점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장강명 작가의 <표백>까지 읽으며, [한겨레문학상]은 믿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OO상 수상작이 아닌 책을 읽어볼까도 했지만, <당선, 합격, 계급>에서 문학상 수상작도 안 팔린다고 했으니, 어느 책이라도 읽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첫 문장이 시선을 끌었다.
2. 어떤 내용인가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반전 스릴러물은 아닙니다.)
중국에 있는 한 조선소에 진수해놓은 배가 넘어가는 장면부터 '내'가 퇴사하는 것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회사는 보험금을 다 받아내기 위해 보험회사와 신경전을 벌인다. 무엇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전액 보상금을 받는다'는 지령 하에 조직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의 대기업 임원을 영입하고, 그들은 중소기업의 실제 상황과는 관계없이 그들 나름의 관성으로 이래라저래라 하고, 여기에 원래 조직원들은 반발해서 퇴사를 결심한다. 회사 상황은 악화되고, 채권단은 새로운 사장을 선임한다.
새로운 사장은 기존의 회사 문화와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었다. 대부분 새 사장의 '발언'을 통해 그의 생각, 관성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 등이 이어진다. 그는 단호하고, 철저히 원인 분석을 하고, 시시비비를 모두 따져가며 일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의 실적은 개선되었으나 내부원들은 그 나름대로 불만을 쌓아갔다. 결국 회장 라인을 탄 사람과, 사장 간의 알력 다툼이 있었고, 사장은 회사를 떠나게 된다.
이후 회장 라인의 사람들은 다시 그들의 관성대로 회사를 운영해나가고, '나'는 회사의 미래가 없다고 여기며 퇴사를 결심한다. 30대 초반의 '나'는 회사를 보며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정의 내리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3. 어땠나
소설은 현실의 재구성이다. 그리고 독자는 재구성된 세상을 읽으며 이 소설 속 세상이 살만한 세상인가?를 질문한다. 좋은 소설에 대해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인훈의 <광장>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좋아한다. 최근 한국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이전 세대 작가만큼 돋보이지 않는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자 입장에서 이 세상이 살만한가를 느끼기에 최근 한국소설은 그 정도가 부족하다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누운 배>는 돋보이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한국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관리자의 나태함과 이를 받아들이는 젊은 직원의 문제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유지되어 온 방식을 비판하고, 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정신이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작가는 새로운 사장의 'FM대로 방식'이 적절한 방식이라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는 FM대로 였지만 구성원을 힘들게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짚어냈단 느낌이 들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비슷했다. 기존에 부조리한 시스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구성원들은 그 체제를 편하게 여겼다. 문제는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한 새로운 내무반장이 내무반을 개혁하겠다며 이런 활동, 저런 활동을 깐깐하게 시작할 때였다. 관리자 정도의 계급이 된 사병들은 그 체제를 못마땅해했으며, 다른 부대에 가서 내무반장 욕을 그렇게 하고 다녔다.
인간 세상은 (이 책에서는 사물이 운행되는 이치라고 해서 '물리'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물리는) 무 자르듯 쉽게 나눠지지 않는다. 굉장히 복잡하게 돌아간다. 그래도 좋은 일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다. '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젊음이 내 것이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 이 젊음이 회사 속에서 '습득한 기술'로 등가 교환되거나, 그만큼의 '지위'로 교환되거나, '연봉'으로 교환되지 않는다면 그 일은 제대로 된 일이 아니다. 젊음을 태우기만 하는 것이다.
라캉이 말했듯 대개 우리는 '남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내가 진짜로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전시된 인생 중 하나를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건 젊음을 제대로 보내는 것일까? 내 젊음이 제대로 교환되고 있는 것일까? 직업을 선택할 때, 그리고 직업을 가진 이후에 끝없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하는 것.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2부 이후로는 상황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게 아니라 사장의 입을 통해, 아니면 내 입을 통해 '어떤 가치'를 계속 설명하듯 전파한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통해 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도 시대정신이 담겨있고,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좋은 소설이라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