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 리뷰
목요일, [단숨에 책 리뷰]
열세 번째 책 : <세상물정의 사회학>
당신은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한국 사회를 파악하는 데 좋은 책이라며 지인이 추천을 해줬다.
여러 키워드를 활용해 한국사회를 돌아본다.
예를 들면 '이웃'이라는 키워드에선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을 때 의식적으로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상황을 들며 그 이유를 분석한다. 그 이유는 '집'이 정주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매년 전체 인구의 1/5가 이사를 한다. 그 이유는 내 집이 아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월세든 전세든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끝나게 되면 대개 이사를 한다. 게다가 집을 소유한 사람도 집을 '재산 불리기' 수단으로 생각한다. 집 값이 오르면 집을 팔고 떠난다. 잠깐 머물기만 하는 사회에서 서로는 서로의 이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식으로 명품, 언론, 해외여행, 자기계발서 등의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25개의 키워드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영화 <매트릭스>의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다.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는 네오에게 모피어스가 찾아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빨간 약을 먹으면 매트릭스를 탈출해 매트릭스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고, 파란 약을 먹으면 원래처럼 매트릭스 속에 남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는 말이다.
사회학은 빨간약 같은 학문이다. 현상 뒤에 숨겨진 실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마냥 시비를 걸기 위해서는 아니다. 우리가 더 건강한 사회를 살기 위해서 어떤 점들을 고민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저자는 학문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연결 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저자의 이런 노력은 학문 세계와 현실 세계가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는 문제 인식과도 맞닿아있다. 이 때문에 맨 처음 상식이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를 논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연구자는 우리 삶을 건강하게 하는 좋은 지식(良識)을 만들어내지만 너무 어려운 그들만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읽으려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식이 상식이 되지 못하는 사회는 그만큼 건강해질 수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그는 이 거리를 좁히려 한다. 이 때문에 사회학이라는 어려워 보이는 제목을 달고 있음에도 읽기에 쉽다는 것이 포인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열풍'들의 이면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이 있었다. 어쩌면 사회학이 고민하는 지점은 저 책 제목과 같지 않나 생각했다. 같이 잘살기 위해선 그 뒷면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회학이라는 전공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입문서가 될 것 같다. 전공이 궁금한 고등학생, 전공에 진입한 대학생 이 아니더라도 진짜 문제는 뭘까가 궁금한 모든 사람의 교양서적으로도 빛날 책이 아닐까 싶다.
두 종류의 다리가 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동정이라는 감정으로 지어진 다리다. 동정의 다리는 성공의 언덕 위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냉혈인이 빼곡히 앉아 있는 성공의 언덕보다는 따뜻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정의 시선은 선해 보여도 본질적으론 승자가 패자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동정의 시선은 동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처지로 자신은 절대 전락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것이다. 동정의 시선은 아무리 따뜻해도 또한 위계적이다.
동정의 다리에서 한계를 느낀 사람은 두 번째 공감의 다리의 설계도를 들여다본다. 실업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불우이웃'을 선의의 감정에 따라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과 달리,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 사람을 실패로 몰고 간 실업이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협하는 보편적 위험이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는다.
공감은 동정이라는 따뜻한 감정으로 냉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다는 낭만적인 태도와도 거리를 둔다. 동정의 다리 위에선 이따금 불우이웃 돕기 모금이나 자선바자회가 열리지만, 공감의 다리 위에선 복지라는 제도의 나무가 자란다. 공감이 복지를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복지는 공감에 제도의 옷을 입힌 것이다.
-'성공'이라는 키워드 중에서, pp.127-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