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를 보고
지난 5월,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간 건 아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액션 영화를 보면서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다. 당시 영화관에서 인기 있던 영화는 <분노의 질주>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였다. 둘 다 화려한 영상들로 관객들의 정신을 2시간 동안 엎어 치고 메치는 흔한 할리우드 영화라 생각했다. 두 영화 모두 썩 기대가 되진 않았다. 아무거나 봐도 좋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더 빠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를 보기로 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영화는 상당히 즐거웠다. 우선, <19곰 테드>보다는 미국식 유머 코드가 터지는 곳이 있었다.(<19곰 테드>는 마냥 저질스럽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드랙스가 맨티스에게 하는 대사들은 좀 저질스럽긴 했는데, 이 대사들이 결국은 드랙스의 위선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돼서 좋았다. 로켓의 대사들도 재치 있었다. 그루트의 귀여운 행동들도 돋보였다.
인물들의 배경 설정도 흥미로웠다. 인물들은 모두 자기를 만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다. 피터는 그의 아버지 에고에게 버림받았다. 가모라와 네뷸라의 아버지는 두 딸을 극심한 경쟁 속에서 키웠다. 로켓도 자기를 만든 박사에게서 버려졌고, 욘두도 가족에게 버림받은 고아였다. 맨티스도 가족은 없었다. 소버린 족은 아예 아버지가 없이 인공자궁으로부터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아비 없는 자식들이 만드는 이야기였다.
그 속에서 인물들이 품고 있는 욕망은 서로 달랐다. 피터는 아버지와 34년을 떨어져 살았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가모라를 사랑했다. 네뷸라의 아버지는 네뷸라와 언니를 계속 싸우게 만들었다. 네뷸라는 몸은 언니와의 싸움에서 질 때마다 기계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언니 가모라에 대한 경쟁심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욘두는 자기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데 대한 모멸감을 품고 있었다. 드랙스는 상대방을 외모로 판단하였다. 맨티스는 친구가 없어 사교성이 부족했다. 로켓은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는 것을 거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각각의 욕망은 에고를 만나고 그의 본심이 드러나면서부터 여기저기서 충돌한다. 피터는 그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 에고도 만나고, 사회적 삶을 준 아버지 욘두도 만난다. 두 명의 아버지는 영화 속에서 둘 다 죽는다. 하지만 피터의 마음속에서는 다르다. 그는 생물적 아버지 에고를 버리고 사회적 아버지 욘두를 아버지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피터는 우리는 바라는 것이 가까이에 있는데도 멀리서 찾는다고 말했다.
가모라와 네뷸라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가모라와 네뷸라는 아버지와 세상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인다. 가모라는 세상 반대편에 너와 같은 피해자들이 많다며 그들을 돕자고 이야기한다. 네뷸라는 아버지를 죽이자고 이야기한다. 결국 구조 자체를 깰 것이냐, 구조의 피해자들을 구제할 것이냐의 문제다. 가모라는 그 상황에서 그래도 우리는 남매라고 말하고 포옹을 한다. 다시 말해, 구조를 깰 것이냐, 구조의 피해자를 도울 것이냐는 결국 한 줄기로부터 나온 길이라는 것이다. 서로 싸우고 헐뜯기보다는 서로 의지하고, 도울 필요가 있다는 얘기로 보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또다시 우주를 지키는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에고를 만나고 서로의 욕망을 확인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이제 어떤 행동을 보여줄까? 특히 이번 여행에서 두 아버지를 다 잃은 피터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