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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르타르 Jul 29. 2017

성수동에서 담은 순간들

서울지역탐방

열차가 성수역에서 멈췄다. 냉큼 열차에서 내렸다. 한동안 문을 닫았던 공장들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3번 출구로 향했다.

성수동에서 만난 예술시장 포스터

먼저, 3번 출구에서 바로 보이는 길을 걷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었다. 중심 길 한 블록 뒤에서 성수동을 보고 싶었다. 자동차 공업소 몇 개를 지났다. 그러다 포스터를 발견했다. 예술시장 느낌이 물씬 나는 포스터였다. 공장지대와 예술이 공존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무 문에 켜켜이 쌓인 시간

성수동 공장지대는 지금까지 봐왔던 공장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간 봐왔던 공장들은 문과 외벽이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는 회색 공장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이곳의 문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모습의 공장은 시대극에서나 봤지 실제로는 처음이었다. 나무로 된 문에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벽돌로 만든 외벽

외벽을 만들 때는 빨간 벽돌을 이용했다. 벽돌 한 단을 쌓고 그 위에 시멘트를 칠하는 작업을 반복하던 건축 당시의 모습을 상상한다. 최근에는 벽돌로 건물을 잘 짓지 않는다. 무언가로 벽을 만들고 바깥에다 타일을 붙여서 마감한 건물들이 많다. 회색 타일에 다른 색깔을 넣어볼 법도 했을 텐데. 그런 시도가 실패한 걸까 아니면 건물 외벽 색이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대부분 건물 색은 회색이나 노란빛이 약간 도는 미색이다. 벽돌로 만들어진 주택가는 종종 봤다. 성수동에 있는 벽돌 건물은 다른 느낌을 준다. 일단 이곳의 건물은 일반 주택보다 훨씬 더 크다. 커다란 건물은 내 마음을 압도한다. 곳곳에 떨어져 나간 시멘트가 보인다. 벽돌도 곳곳이 파였다. 흉물스럽진 않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뿐이다.

'다 같은 빨간 벽돌 건물이 아니오. 내 이름은 대림이오.'

이 건물에도 이름은 있었다. '내 이름은 대림이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소중한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이곳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곳이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성수동에 대해 사전 지식이 별로 없었던 터라, 이곳도 안 쓰는 공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이곳은 '대림창고'이고, 성수동 하면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1970년대에 미곡창고로 쓰이던 건물인데 그 창고 내부를 개조해서 전시실 겸 식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높은 천장, 넓은 공간. 왼쪽에 공간이 또 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입구를 들어서면 커다란 설치미술품이 우리를 맞았고, 왼쪽 방에도 미술작품들이 있었다. 설치미술품과 왼쪽 방으로 들어가는 문 사이의 통로를 지나면 높은 천장에 널따란 공간에서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마주 앉은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곳이 바로 옆 공간.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미디어에 많이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본 인테리어는 차가운 느낌이 강했다. 검은색, 은색, 흰색, 회색 등 무채색이 강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이곳은 따뜻한 느낌이었다. 차이라면 나무가 많이 쓰이고 주황색 조명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자그마치 = 예상보다 훨씬 많이'

이어서 방문한 곳은 인쇄공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카페 '자그마치'. 이 단어는 예상보다 훨씬 많이라는 뜻으로 약간의 놀라움을 담고 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조그맣다'라는 단어가 생각나서 작은 카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약간 놀랐다.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집에 돌아와서 검색해보기 전까지는 인쇄공장을 개조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널찍한 공간과 자그마치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음을 종이에다 글로 담아내던 곳이 이제는 컵에다 커피를 담아내는 곳으로 바뀌었다. 약간 소리가 울리는 구조긴 했지만 감성적인 인테리어와 널찍한 공간에 있노라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대림창고에서 느꼈던 것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이랄까?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는 이 곳, 성수동.

건물 안에서 나오면 그곳에는 다시 일상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고, 누군가는 개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지고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성수동의 가게들은 외벽에도 하나 둘 네온사인과 조명을 밝히기 시작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유바바의 온천장이 개장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았다. 뒤에 일정 때문에 돌아가야 하는 그 길이 아쉬웠다.

진지 금지 입니다.

성수동을 빠져나오면서 본 표지판이다. 두 개의 표지판이 겹쳐져서 '진지함을 금지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진지 금지. 성수동 문화예술공간은 재밌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었다. 조용했던 공간에 누군가는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상하이 모간산루 M50이 떠올랐다. 그곳도 문을 닫은 공장들을 개조해 미술 작업장으로 쓰고, 전시를 하는 공간들로 활용됐다. 시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정책도 있었다고 한다. 성수동 역시 도시재생사업 프로젝트로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다음에 방문할 땐 동네의 역사와 문화를 살린 개성 넘치고 재밌는 마을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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