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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소리 Apr 02. 2021

불확실성의 시대, 경제적 생존에 대한 소고

20세기 경제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 중의 하나는 불확실성(uncertainty)과 기대(expectation)의 도입이다.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그랬듯, 경제학에서 불확실성의 도입(그리고 소위 말하는 합리적 기대)은 이 학문 전반을 갈아엎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제활동이 본질적으로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과 이 사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의해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요새 주식시장이 뜨겁다 보니 최근에 이걸 몸소 체험한 분들도 많을듯하다. 중앙은행이 얼마의 돈을 풀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앙은행이 이후 어떤 행동을 할지 불확실하다는 점과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기대를 하는지가 주식시장을 요동치게 만드니까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점은 이런 불확실한 사건들이 주사위 던지기처럼 완전히 랜덤하다는 것이다. 침팬지가 애널리스트들보다 수익률이 더 높은데 투자해서 뭐하냐는 식이다. 그런 분들은 전설적인 투자자들인 벤자민 그레이엄, 피터 린치, 워런 버핏과 같은 대가들의 장기 수익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다. 그렇다. 불확실성은 완전히 무작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식이 짧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불확실해 보이는 일들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훨씬 더 선명하게 예측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보이다.



그렇다면 이 불확실한 시대에 경제적 행복을 위해 주식을 열심히 공부하고 정보를 빨리 캐치해서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차후 여기에 대해서도 글을 쓰겠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왜 절반의 애널리스트들은 침팬지보다 수익률이 낮을까? 주식시장과 같은 복잡계에서 모든 심리적 압박을 이기고 합리적 기대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피터 린치가 말했듯, 일반인들은 가장 잘 아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면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분야는 무엇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니 나 자신에 대한 투자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경제적 생존을 위한 첫걸음이다.


흔히 쓰는 경제학 용어 중에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표현에 거부감이 드는 분들도 있겠지만 심플하게 말하면, 개인의 역량을 의미한다. RPG 게임을 할 때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게임에서 다양한 스킬과 테크트리가 있듯이, 현실에서도 우리는 레벨업을 어떻게 할지, 어떤 테크트리로 나아갈지 고민을 해야 한다. 인적자본 축적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스킬 트리를 채워나가는 것과 같다. 농담이 아니라 2010년대 노동경제학의 중요한 발전 중 하나인 과업중심 모형(task-based model)은 대학에서 어떤 전공 공부를 하는지, 사회에 나와 어떤 직업을 가지는지, 어떻게 이직을 하고 커리어를 쌓아나가는지를 마치 RPG 게임의 스킬 트리처럼 설명한다.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불확실성을 줄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수만 가지 일이 존재하고 그중에 내게 맞는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할지, 수학을 전공할지, 의학을 전공할지, 변호사를 할지, 회계사를 할지, 마케팅 관련 직무에 지원할지, 회계 관련 직무에 지원할지 등등 수많은 옵션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우리는 각자에 맞는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누가 하던 똑같은 직업은 똑같이 돈 버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Winner takes it all"이라고 했던가. 최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같은 직업 안에서도 임금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쿨 이후 변호사들이 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상은 잘 나가는 변호사는 과거보다 더 잘 벌고 못 나가는 변호사는 더 쪽박 찬다. 유튜버를 하나의 직업이라고 부른다면, 그 격차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노동소득이 수입의 원천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가 수리적 계산을 잘하는지, 말빨이나 글빨이 좋은지, 사람 대하는 일에 남들보다 능숙한지 등등 말이다.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결국 내 노동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길이다. 물론 나 자신만 안다고 해서 다 끝나는 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내가 가진 특성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능숙하게 버는지 알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의외로 졸업 후 직장을 구해야 하는 대학생들도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직업을 할 때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Wiswall and Zafar, 2015). 전공별, 직업별 평균소득이나 근속연수와 같은 정보들은 의외로 검색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이런 중요한 정보를 반영하여 전공과 직업을 선택할리 만무하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2015년 즈음부터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데이터(대졸자 직업이동경로조사)를 보면 2005년 즈음부터 이과-문과의 소득격차는 이미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소득의 관점에서만 보면, 대학 전공별 차이는 고졸과 대졸 사이의 차이만큼 크다. 공학계열 전공과 교육계열 전공의 소득격차는 2배까지도 벌어진다. 그러나 공학계열 전공을 하더라도 수학적 능력이 떨어지면 크게 높은 소득을 얻기는 힘들고, 전공과 관련 직장을 얻으면 30% 높은 소득을 받는다 (Kinsler and Pavan, 2015). 요즘 떠오르는 컴퓨터 개발자는 어떨까?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평균적으로 높은 소득을 받기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발전하는 젊은 코더들을 따라잡기 힘들어지고 소득도 가파르게 낮아진다 (Deming and Noray, 2020). 지금처럼 열기가 더해져서 개발자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면 평균소득 수준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코딩학원에 보내는 건 그 아이의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 경제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잘하고 오래 할 수 있고 더 즐거운지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둘째, 내 특성과 시대적 흐름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확보하고 어떤 직업, 직장을 구할지 오랜 기간 숙고해봐야 한다. 글빨만 좋다고 작가를 해야겠다고 마냥 생각하면 굶어 죽기 십상이고, 남들이 코딩 학원을 다니니 나도 코딩이나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면 시간 낭비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가장 올바른 사회적 변화는 인턴쉽의 확대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내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고 적당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직업군에서 미리 좀 굴러볼 기회를 주니까 말이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을 찾으면 그만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를 길게도 늘어놨지만 시류에 휩쓸려 당연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주식이나 코인에 전재산을 넣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지만, 이런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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