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이상을 좇는 누군가를 볼 때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는 직장인들도 많다. 내 주변에도 직장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공부를 더 해볼까 고민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현실적이라 함은 우리 삶을 제약하는 여러 조건들, 예컨대 돈은 얼마나 있고 학력이 어떻게 되고 생계를 꾸려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집을 사야 하고... 누구나 고민하는 그런 걸 일컫는다. 확실한 사실은 이런 현실적 조건들이 모두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주식이 대박이 날지, 집값이 오를지, 어느 회사에 입사하게 될지, 연봉은 얼마나 될지 모두 패를 까 보기 전에 알 수 없다. 불확실한 삶 가운데 단 하나 확실한 진실이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얘기했듯이 우린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가장 현실적인 사람은 죽음이 내 앞에 항상 버티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스님과 목사님 같은 종교인일지도 모른다. 반면,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타이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장 중요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의 선택을 완전히 뒤바꾼다. 왜 그럴까? 인생 전반의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시간할인율(Time Discount Rate)이다. 1년 후를 현재에 비해 어느 정도의 가치를 두느냐인데 시간할인율이 1이면 1년 뒤에 현재와 동일한 가치를 둔다는 의미이고 0.9이면 현재에 비해 90%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2년 뒤에 대해서는 0.9의 제곱, 즉 81%만큼의 중요도를 둘 것이다. 이 시간할인율은 사람마다 다르고 저금을 얼마나 할지, 주식에 얼마나 투자할지, 집을 살지 월세로 살지, 대학에 갈지 말지 등 대부분의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할인율이 낮은 사람은 욜로족에 가까울 것이고 할인율이 높은 사람은 파이어족에 가까울 것이다.
시간할인율은 죽음에 대한 자각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결국엔 내가 죽고 없어진다는 사실을 골몰히 생각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는 두려움부터 느끼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터부시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고 받아들이게 될 때 마음속에 남는 단 하나의 질문은 "죽음 앞에 던져진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지금과 죽음의 시점이 나에게 동일한 가치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시간할인율이 1이 되는 것과 같다. 먼 미래라고만 여겼던 죽음이 때때로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지 않나. 현재와 동일하게 중요한 그 마지막 내 임종의 순간, 난 무엇을 더 가치 있게 여길 것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존경받으며 이 세상을 살다 간 많은 인물들도 이 고민에 고심했던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세계인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줬던 죽음 중 하나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다. 21세기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세상 가장 큰 부자이자 현재도 수많은 사람들이 히어로로 여기는 그의 죽음은 인간이 결국 한낯 미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죽음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훨씬 앞둔 이전부터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유명한 스탠퍼드대학 졸업 연설에서 말했듯이, 그는 매일 거울을 보며 내일 당장 죽는다면 오늘 했던 일이 옳은 결정인지 되물었다. 그리고 진짜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이 결정을 내리던 모든 순간에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었음을 고백했다. 세상 모든 걸 거머쥐고도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죽음을 선고받는 입장에서 얼마나 죽음을 피하고 싶었을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그는 그 죽음의 순간을 늘 준비하고 있었고 후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은 완전히 다른 상태이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신의 상태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머릿속에서 일상적 욕구를 희미하게 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때때로 겪는 현자타임과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선택의 순간은 더욱 두려워진다. 잃을 것이 많아지고 기회의 폭이 줄어들면서 선택의 무게가 너무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을 늘 자각하고 사는 사람에게 죽음의 무게는 그 모든 무게를 압도한다. 쇠사슬처럼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현실적 제약들을 내려놓고,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숨이 멎어가는 그 순간을 상상해보라 (사실 그 순간은 그리 멀리 있지도 않다). 그 순간의 나라면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