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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소리 Feb 14. 2021

코로나 시대, 박사 유학생의 일상

프로 방콕러의 기록

코로나 19의 여파는 너무나도 커서 거북이 마냥 세상 가장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박사 유학생의 삶마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특히나 미국 한복판, 그 어느 곳보다 코로나 19에 큰 타격을 받은 곳에 거주하고 있으니 오죽하랴. 재택근무 11개월 차인 지금, 이제는 새로운 삶의 양식에 완전히 적응을 하여 이 단조롭고 고요한 삶을 공유해보려 한다.


실제로 이러면 누군가의 신고로 도서관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높다.


수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존 내쉬의 실화를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 존 내쉬가 연구에 몰두한 채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의 창문에 자신의 수식을 써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구에 단단히 미친 천재나 할 법한 기괴한 행동이지만 어쨌거나 저쨋거나 존 내쉬처럼 연구에 매진해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미국 땅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매일매일 펜을 들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문명이 급격히 발달한 21세기 사회에서는 골방의 문과 대학원생도 펜이 아닌 컴퓨터 키보드를 들어야 했다. 데이터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지금, 통계에 기반한 데이터 분석이나 수학적 모델링을 통한 시뮬레이션은 문과에서도 보편적인 툴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펜을 쓰는 공부보다는 데이터 분석을 하고 코딩을 하는 데에 수십 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Work-from-home 근무 환경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는 일상 전반을 변화시켰다. 2020년 3월부터 캠퍼스가 일시 폐쇄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험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나 같은 대학원생은 학교 출입이 아예 불가능했고 모든 일들을 집에서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러다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결국에 학교에서 컴퓨터로 하던 일을 집에서 컴퓨터로 하면 그만이었다. 의외로 교수님들과의 미팅은 줌으로 하는 것이 만나서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영어 네이티브가 아닌 나로서는 피피티와 스크립트를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자신감을 키워줬다.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원활해지다 보니 같이 미팅하는 교수님들의 만족도도 덩달아 올라간 듯 보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하나의 혁신적인 변화는 세미나를 온라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이런 형태의 세미나가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세미나는 기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졌다. 분과마다 일주일에 한 명씩 미국 내외의 연구자를 초청하고 강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발표자들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들었다. 코로나 이후 세계 곳곳의 주요 세미나들이 줌을 통한 온라인으로 급속도로 옮겨갔고, 지금은 보스턴, LA, 런던 등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어렵지 않게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도 충분히 가능했을 일이지만 직접적인 대면을 선호하는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했을 변화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급속도로 확산된 것이다. 아마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온라인 세미나들이 지속될 것이다.


세상 그 유명한 대가들의 세미나도 집에서 콜라 한 잔 마시며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연구도, 미팅도, 세미나도 모두 집에서. 미국에서 인구가 밀집된 곳에 가는 것이 워낙 위험하다 보니 장을 보는 것도 아마존, 인스타카트 같은 배송 어플을 쓰고, 그럽헙이나 우버이츠를 이용해서 배달음식을 많이도 시켜먹었다 (미국은 한국만큼이나 배송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있다!). 코로나는 모든 활동들을 집에서 하도록 강요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회적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다. 한동안은 좋았다. 초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매일 아침 의무적으로 어디론가 향해야만 하는 인생은 고달프니 말이다. 학교에 가지 않고도 월급이 나왔고 집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할 수 있었으며,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쉽게 배송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도 이런 재택근무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충격적인 감염 확산속도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지만. 그럴 거면 한국에 들어와 있지, 왜 미국에 남아있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코로나 기간 동안 1년 가까이 한국에서 박사 유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도 꽤 있다.


꿀 같은 재택근무도 3개월, 6개월, 9개월이 되어가면 마냥 즐겁지마는 않다. 실제로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성과 직장 만족도가 떨어지고 다시 출근을 하고 싶어 하는 비율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들도 왕왕 있다. 나 또한 재택근무 반년째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텐션과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왠지 모를 멜랑꼴리한 감정을 종종 느끼곤 했다. 당이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싶어서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을 왕창 구비해뒀지만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했다. 대학원 동기들에게 한번 문자로 징징거려봤더니 강철 같은 멘탈을 지녔을 것 같던 동기들도 비슷한 증상들을 앓고 있었다. 


특단의 대책으로 일주일에 두어 번씩 다 같이 줌으로 커피 브레이크를 가지기로 했다. 다들 이 코시국을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뭘 하며 살고 있는지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중국인 동기인 창은 그동안 집에서 완성한 퍼즐을 스스로 그린 마스터피스 인양 보여주었다. 집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몇 시간 퍼즐 조각을 맞추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애잔한 한편,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하는 법을 터득한 게 대견해 박수를 보냈다. 브라질에서 온 파울로는 뜬금없이 한국 드라마 [비밀의 숲]을 내게 추천해주었다. 브라질 사람한테 한국 드라마를 추천받는 세상이라니... 나도 모르게 국뽕에 차올랐다 (넷플릭스에서 더 많은 한국 드라마가 선전하길).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코로나로 인한 가장 큰 일상의 변화는 사람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박사 유학생은 건강한 멘탈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의미가 남다르다. 좁아진 인간관계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일상을 공유하며 지속적으로 소통해야만 몇 년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에서 빛을 찾아야 하는 연구와 창작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선배 한 분은 지금 나와 같은 박사과정 시기에 연구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으로 한 동안 운전대만 잡아도 숨을 쉴 수 없었다고 토로하셨다. 당시 친구들과 주말마다 장을 보고 드라이브하는 것으로 공황장애를 극복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물론 훌륭한 학자가 되셨다. 


지인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것. 누군가에게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연구에 집착한 나머지 주화입마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는 박사 유학생들에게는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로 인해 물리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적잖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우울증을 일컫는 코로나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야 필수 불가결한 룰이지만 그렇다고 소통의 빈도를 줄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통의 창구가 열려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소통을 위한 내 나름의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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