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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소리 Feb 01. 2021

박사과정 유학, 왜 가는 거야? (3)

소명

중급 수준의 학부 경제학에서 배우는 중요한 개념 중에 기간 간 대체효과(Intertemporal Substitution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선택함에 있어 현재와 미래의 비용과 편익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춘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오늘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내일 이익이 돌아온다면 괜찮다는 것이다. 오늘 치킨을 사 먹는 대신 삼성전자 주식 영점 몇 주를 사는 것처럼 말이다. 진로, 혹은 커리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 간 대체효과가 내포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초, 중, 고, 대학 16년 동안 우리는 이 기간 간 대체효과를 체화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 때 노는 걸 참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 예쁜 아내를 얻을 수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 않나.


박사과정은 아마도 이 프로세스를 극단까지 밀고 간 사람들이 선택하는 진로일 것이다. 도대체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길래? 대체로 많은 박사과정생들은 연구를 업으로 삼는 학계에서 일하기 위해 박사과정을 선택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더스트리에서 좀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박사과정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국제기구나 국가기관에서 일하고자 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을 통틀어 '소명'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소명의식이 없다면 박사과정 자체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명은 개인적 삶의 목적을 실현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는 다양한 삶의 양태 속에서 각자 어느 정도의 소명의식을 기르며 살아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삶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해봤을 테니까. 2010년, 나에게도 이런 고민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대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대학에 입학하여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시작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엠티며, 미팅이며, 클럽이며... 군대 같은 규율이 있는 기숙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냈던 터라 늘 새로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새로움이 공허함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일 같이 있던 술자리는 늘 학교 앞 호프집에서 시작해서 동틀 녘 순댓국집에서 끝나는 똑같은 패턴이었고 정신없는 랜덤게임에는 원초적인 재미 외에 어떤 의미 있는 즐거움도 없었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공허함이 흘러가는 시간을 채우도록 하기엔 젊은 날이 너무 아까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그걸 좀 배우려고 일터로 향했다. 여러 군데서 알바를 했는데 모 신문사 편집국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답을 찾는 데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어린 학생에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때까지 내 관심은 항상 내 개인에게 있었다. 모든 활동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내가 잘 살기 위해 하는 일이었고 이것이 어쩌면 공허함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그곳에서 바라본 사회는 여태껏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수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으며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보탬이 된다면 의미 있는 삶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앙가주망. 사회문제의 해결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사회문제는 너무 복잡한데 내가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공부가 필요했다. 다행히 전공인 경제학은 복잡다단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정책이나 사회 변화의 결과에 대해 자신 있게 얘기한다. 예를 들면,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학은 최저임금 하나에도 수많은 메커니즘을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일반균형(General Equilibrium)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학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목표도 더 좁혀져서 IMF, World Bank, ILO와 같은 경제 관련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곳에서 일하려면 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의 전문성을 길러야 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박사학위를 필요로 한다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박사과정에 진학해야 하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박사과정 진학에 대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심플하게 해당 박사과정을 졸업한 사람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면 된다. 경제학의 경우, 졸업자 개개인의 cv(curriculum vitae)나 링크드인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와 전공, 취업 결과를 구글링해보면 된다. 예컨대, "stanford economics phd placement"라고 검색해서 학교 웹페이지를 클릭하면 아래와 같은 창을 볼 수 있다. 2020년 스탠포드 경제학과 박사 졸업자들이 무슨 전공을 했고, 어디에 취직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예전과 달리 학계가 아닌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우버, 링크드인 같은 IT기업으로 가는 비율이 높은 점도 눈에 띈다.



국내 박사과정은 어떨까? 한국에서 유일하게 경제학 박사과정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서울대 박사과정 졸업자의 취업 결과는 아래와 같다. 가치판단을 하기에 조심스럽지만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할 경우 그 진로의 폭이 해외 박사과정에 비해 현저히 좁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박사과정에서 과거 누군가 갔던 길이 꼭 내가 가는 길이 되리란 법은 없지만 남들이 갔던 길과 내가 갈 수도 있는 길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래서 적어도 경제학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이 훨씬 선호된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전 세계 해당 분야 박사과정에 대한 채용시장을 살펴보는 것이다. 경제학의 경우 박사과정 졸업자 채용시장도 AEA Job Openings(https://www.aeaweb.org/joe/listings)를 통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 수백 개 대학, 기업, 기관들이 대부분 이 곳에 경제학 박사 채용공고를 낸다. 예를 들어, 여기서 World Bank를 검색해보면 아래와 같은 잡포스팅을 찾을 수 있다. 세계은행의 어느 부서에서 채용을 하고, 어디서 일을 하며, 무슨 일을 맡게 될 것인지 꽤 상세히 나와있다. 이 포지션에 채용이 되면 국가의 조세정책이나 재정정책이 가지는 평등성에 대한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팀에서 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포스팅에 따라서는 연봉 수준과 부가적인 혜택(연구비, 의료보험, 정착비용 등)에 대한 설명도 쓰여있다. 다른 분야라 하더라도 이와 유사한 웹사이트, 혹은 Glassdoor 같은 구직구인 사이트에서 어렵지 않게 잡포스팅들을 찾아볼 수 있다.



소명은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 중 하나다. 동시에, 소명의식은 험난한 박사과정을 견디는 동안 가장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준다. 그래서 단순히 공부가 좋아서, 연구가 좋아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나름의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박사과정을 진학할지 고민이 되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에도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혹자는 남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몇 년 간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소명을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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