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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Dec 10. 2023

경찰의 곰탕

끓어오르는 분노는 어찌할 것인가

어젯밤부터 이어진 비상사태로 규진을 포함한 강력팀 형사 전원은 초긴장 상태였다. 스토킹 피의자 남성이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납치해서 잠적한 것이었다. 초기 스토킹 단계에서는 여성청소년과에서 담당했지만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사건의 성격이 납치로 달라진 이후부터는 강력팀이 투입되었다. 피의자는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남겼다고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피의자가 차량을 이용해 피해자를 납치한 장소를 파악하여 주변 CCTV를 확보했다. 어디로 이동했을지 예상해 볼 수 있는 단서가 전무했다. 피의자, 피해자 모두 휴대폰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피의자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해 이동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CCTV는 끊겼다. 피의 차량이 화면을 벗어나 사라지면 다른 위치에서 촬영된 CCTV 영상을 가져다가 다시 돌려보며 피의 차량을 찾아내어 이동한 방향을 확인한다. 이 지루한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 가며 피의자의 동선을 파악하느라 밤새 씨름을 했다. 피의자는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동, 용인에서 평택, 다시 평택에서 춘천으로 이동하는 식으로 수 차례 목적지를 바꾸어가며 옮겨 다녔다. 피의자가 어떤 위해를 당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한 시라도 빨리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규진은 팀장 박경위에게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 강릉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 쪽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CCTV랑 30분 차이니까 우리가 지금쯤 출발해야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그게 좋겠어. 오형사, 최형사는 차 한 대로 따로 따라오고 이형사는 나랑 같이 출발하자고."

박팀장은 정형사에게 CCTV로 위치 확인되는 대로 바로 연락해 달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규진은 박팀장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야 피의자는 피해자의 집으로부터 100km 정도 떨어진 춘천의 어느 등산로 초입에서 발견되었다. 검거 당시 피의자는 피해자와 함께 차 안에 있는 상태였다. 차 안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상태는 처참했다. 의식이 희미한 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얼굴과 몸 여러 곳에 폭행의 흔적이 있었고 옷과 속옷이 찢긴 상태였다. 피의자는 차를 세워 놓고 술을 많이 마신 듯 운전대 쪽으로 고객을 박고 잠에 들었던 것 같다. 피의자는 경찰에게 체포될 당시 한 손에 들고 있던 흉기를 내려놓고 순순히 투항했다. 규진은 피의자에게 겨누고 있던 테이저 건을 거두고 다가가 수갑을 채웠다. 등뒤로 수갑이 채워진 피의자에게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피의자를 경찰서로 이송하는 차 안에서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박팀장이 전화를 받았다.

 "응. 그래. 오형사. 피해자 상태는 좀 어때?"

규진은 전화를 받는 박팀장을 힐끔 쳐다보았다.

 "응. 알았어. 그럼 진술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겠구먼? 그렇지? 그럼 오형사도 복귀하도록 해. 그래. 알았어."

규진은 박팀장의 통화가 끝나자 용의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밤새 도망 다니느라 피곤했던 피의자는 술까지 취했던 터라 고개를 숙이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이따금씩 웅얼거리듯 잠꼬대를 했다. 규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이쿠!"

규진은 이렇게 외치며 팔꿈치로 졸고 있는 피의자 놈의 목덜미를 세게 내리찍었다.

 "악!"

잠에서 깬 용의자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규진은 "아이고, 괜찮아요?"하고 능청스럽게 그를 걱정하는 듯하다가 이내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이렇게 소리쳤다.

 "야! 최형사! 너 운전을 왜 이렇게 험하게 하는 거야?"

 "네? 제가요?"

운전대를 잡은 최형사는 느닷없이 날아든 선배형사의 책망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룸미러를 들여다보았다. 그때 조수석의 박팀장이 최형사의 어깨를 토닥였다. 최형사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가져가자 박팀장은 뒷좌석의 규진을 돌아보며 눈짓을 했다. '그만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규진에겐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이 하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 예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표현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딸이었다. 예쁘게 커가는 딸을 보면서 규진은 이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아빠로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유치원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아내가 딸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규진은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유치원 같은 반 친구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딸아이가 꼬옥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내 딸도 사내 녀석을 만나 내 품을 떠날 날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규진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를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괴롭히는 사내놈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성범죄와 연관된 용의자를 검거할 때면 규진은 유독 거칠고 가혹하게 굴었다. 그런 규진의 변화를 박팀장은 눈치채고 몇 번인가 주의를 준 적 있지만 박팀장 자신도 규진의 심정을 잘 알기에 더 이상은 집요하게 지적하지는 않았다.


경찰서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였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진술녹화실로 들어갔다. 진술녹화실 밖에서 규진은 여성청소년과에서 인계받은 그간의 피의자의 스토킹 기록을 출력했다. 피의자 차량 트렁크에서 수거한 여성 핸드백을 과학수사대(CIS)에 지문 현출을 요청했다. 얼마 후 핸드백에 찍혀있던 지문 현출 결과를 받아 AFIS(Automatic Fingerprint Identification System : 지문자동검색시스템)로 조회했다. 5년 전 실종 된 여성이었다.


진술녹화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규진은 피의자를 신문하고 있던 최형사에게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잠시 눈을 돌려 피의자를 쳐다보았더니 슬리퍼를 신은 다리를 신나게 떨고 있다. 서류를 받아 든 최형사가 몇 장을 넘겨가며 살펴보는 동안 지금까지 최형사가 작성해 놓은 조서를 읽어보았다. 피해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규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낀 것이다. 피의자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었다. 반성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형사는 살펴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피의자를 향해 물어봤다.

 "박수진씨 아시죠? 5년 전에 실종된 박수진씨 핸드백이 왜 당신 차에 있던 거죠?"

 "아~ 수진이요? 수진이를 알긴 아는데, 핸드백이 왜 트렁크에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시치미를 떼며 뻔한 거짓말을 하는 피의자를 규진은 악마라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악마. 저 피의자 놈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곧 이혼할 예정이라며 접근해서 직장 후배였던 피해자와 교제를 시작했다. 피의자가 이혼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피해자는 이별을 통보하고 회사도 퇴사했다. 그러나 피의자는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교제를 이어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피의자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된 5년 전 실종된 여성의 핸드백은 또 다른 사건을 암시해주고 있었다. 저 뻔뻔한 얼굴에 발차기 한 방 먹여주고 싶은 충동이 끓어올랐다. 발차기를 맞고 바닥에 나동그라지면 그 얼굴을 짓밟아주고 싶다고까지 규진은 생각했다.


규진은 진술실 문을 닫고 나왔다. 화를 참는 것이 점점 힘들어짐을 느꼈다. 이내 자리로 돌아와 업무에 몰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하며 규진은 기지개를 켰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을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규진의 얼굴을 푸석푸석했다. 얼굴은 기름이 번들번들하고 머리카락은 꾸덕꾸덕하게 비듬이 가득하다.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한 잔 탔다. 한 손에 종이컵을 들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책상 아래 휴지통 안에는 벌써 여러 개의 빈 종이컵이 뒹굴고 있다.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박팀장은 최형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했다. 혐의는 납치, 폭행, 강간이다. 피의자는 강간에 대해서는 혐의를 부인했다.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일은 5년 전 실종된 여성에 관한 피의자의 여죄를 추가로 심문할 예정이라는 말을 하며 박팀장은 퇴근 채비를 했다. 팀장이 사무실을 나간 뒤 규진도 이어 퇴근을 했다. 생각만 하면 자꾸 화가 난다. 어차피 저런 놈들은 잡아서 기소하고 재판정에 세워봤자 몇 년 안 살고 또 금방 기어 나올 것이 뻔하다. 요새 범인들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약한 형벌을 받는다. 그렇게 약한 형을 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형을 살면서 감형을 받을 기회도 많다. 우리나라는 종신형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무기징역형을 받아도 20년 정도 있으면 출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범죄자들에게 후하고 너그러운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은 사회가 우스워보이고, 사회가 정해놓은 법도 우습게 안다. 규진은 그 원인이 판사들의 안이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범죄자들을 접하며 살아온 형사들의 눈에는 출소 후 재범을 할 것이 뻔한 범죄자들조차도 언제나 뉘우치고 있으니 교화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어이없이 가벼운 형을 받는다. 그래놓고 저 놈들은 지은 죄에 비해 형이 무겁다며 항소를 한다. 그러면 1심에 비해 형을 할인받는 것은 이미 공식처럼 알려진 사실이다. 그다음 감형, 가석방으로 또 한 번 자신의 죗값을 줄인다. 그렇게 빨리 사회로 되돌아온 악마들은 여지없이 또 범죄를 저지른다. 전보다 수법도 진화하고 대담해진다. 늘 이런 패턴의 반복이다.  


오랜만에 들어가는 집 근처에서 규진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곰탕 한 그릇을 주문했다. 집에 들어가서 편하게 늦은 저녁을 먹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아내가 이미 치운 식탁을 다시 차리게 하기가 미안했다.

파가 듬뿍 들어간 곰탕이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규진 앞 테이블에 놓였다. 곰탕에 밥을 말은 채로 나오는 탕반이다. '후우'하고 피어오르는 김을 불어내면서 숟가락으로 밥과 고기, 파, 국물을 뒤섞는다. 숟가락으로 국물만 떠서 한 입 먹어본다. 기름지면서도 구수한 고깃국물이 진하다. 옆에 있는 후추통을 들어 적당히 후추를 뿌려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밥, 탕, 고기를 뒤섞는다. 이윽고 한 숟갈 크게 떠올렸더니 밥과 고기 한 덩어리가 담겨 올라왔다. '후우'하고 몇 번인가 숟가락을 향해 바람을 불어낸 후 입으로 가져간다. 적당히 국물에 불어 있던 밥알이 입안에 들어와 흐물대며 씹혔다. 입안 가득히 고기의 향을 머금는다. 뒤이어 후추향이 입에서 비강으로 타고 올라와 자극한다. 양지살은 바스러지듯 씹혔다. 양지살이 씹히는 중간마다 '아사삭'하며 파가 씹힐 때마다 파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바쁘게 입이 움직이는 사이 깍두기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은은한 고깃국물의 맛을 자극적인 깍두기가 제압해 버릴 때쯤 두 번째 숟가락의 밥과 탕이 입으로 들어와 깍두기맛을 다시 밀어낸다.


규진은 화가 났다. 약자를 괴롭히고도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들에게 화가 났다. 아무리 잡아넣어도 금방 나와서 또 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이 나라의 실효성 없는 사법 시스템에 화가 났다.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범들에게 더 적대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성범죄 사례들을 접할수록, 그리고 자신의 딸이 커갈수록 규진은 성범죄자들에게 점점 더 악의적으로 대했다. 감정을 억누르고 직업적 본분에 충실하자고 다짐해 봐도 소용없었다. 규진은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게 과도하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입의 매개는 다름 아닌 규진의 딸이었다. 규진은 아직도 딸이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배를 채우고 집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현관문을 열기 전 멈춰서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리지 말자는 주문을 자신에게 걸고 있다. 가족들과 있는 동안 잔혹한 사건의 생각을 오버랩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주입하며 현관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아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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