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지 않는 아이들
후원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담당자는 내가 후원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후원연결을 종료하게 되었으니 다른 친구를 연결할지 후원을 종료할지를 물었다.
- 아. 그래요. 혹시 나쁜 일이 있는 건 아니죠?
- 그런 건 아니고 저희가 후원하는 마을에 살다가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거나 아이가 성년이 되면 후원이 종료되기도 합니다.
- 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다른 친구로 연결 부탁드릴게요.
세상에 좋은 이별이 없는 것이라면, 아이에게 좋은 이사라는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아프리카에서 사는 아이가 이사를 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안 좋은 일로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건 아닐까. 아이가 아프거나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괜한 걱정에 휩싸인 채 그동안 아이가 보낸 카드를 꺼내보았다. 카드에는 연필로 꾹꾹 눌러 그린 집이나 나뭇잎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었고, ‘저는 축구를 좋아해요’ ‘학교에 다녀요’와 같은 짧은 영어가 적혀 있었다. 후원자에게 보내느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적었을 그 말들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 이 아이는 집을 이렇게 그리는구나. 공을 차며 노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앙코르 와트 중앙탑의 긴 계단 끝에 서서 만난 아이는 이름을 묻는 내게 토미. 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관광객들 사이로 몇몇 아이들이 보였다. 토미 옆을 서성대던 꼬마 여자 아이가 내 가방을 자연스럽게 열었다. 토미는 그 아이의 손을 가만히 툭, 쳤다. 하지 말라는 눈빛이었지만 화를 내거나 책망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나는 알았다. 토미도 그 아이와 같은 일로 여기 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나를 쳐다봐주었다. 나는 가져간 연필과 볼펜을 꺼내 주었지만 토미는 받지 않았다. 내가 자신의 이름을 물어봐 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너무 드러나버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토미가 좋았다. 토미가 웃는 게 보고 싶어서 괜히 툭툭 장난을 걸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그려주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고, 토미가 나에게 손을 들어 인사할 때 나는 이별인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돈이나 볼펜 따위도 주지 않기로 했다. 우린 그냥 친구니까.
여행 중 아이들을 만나는 건 큰 행복이다. 하지만 여행자가 보호자 없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대부분 열악한 나라에서다. 장난감이나 디즈니 캐릭터 없이도 골목에서 무엇으로든 놀 줄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부모가 아니라도 마을의 누군가가, 때로는 아이들끼리 서로를 돌보기도 했다. 가끔은 능숙한 어린 장사꾼들에게 당해도 그저 맹랑하다고 웃으면 그만이다. 페루에서는 기념품 파는 아이들의 붉은 볼 때문에 자꾸 라마 열쇠고리를 샀고, 인도에서는 인사만 해도 까르르 웃어 주는 아이들 때문에 자꾸만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쿠바에서는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야구하는 걸 한 시간 넘게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특히 라오스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웃음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수줍게 웃으며 벼처럼 자라고 있었다. 몇몇은 낡은 해먹 위에, 몇몇은 닭과 함께 마당에서, 몇몇은 창가에서, 몇몇은 장사하는 엄마 옆이나 도로 옆 밭두렁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다. 낯선 이가 지나가면 잠시 꽁무니를 빼도 곧 같이 손을 흔들며 눈을 맞춰주었다.
매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만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던 어느 날 한 남매를 보았다.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자 자전거를 타고 가던 어린 누나는 차분히 내려 자신이 입은 비옷을 뒤에 태운 동생의 머리 위에 나눠 씌우고 유유히 가던 길을 갔다. 파란 비닐 우비 속 두 아이를 태운 자전거가 빗속을 달리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여행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야, 너는 젖지 않겠구나. 이 땅의 어떤 소낙비에도. 이 땅의 어떤 눈물에도.'
나는 잦은 비에 여전히 당황하는 서툰 여행자였고, 누군가와 나누어 쓰기엔 우산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던 속 좁은 어른이었으며, 아이가 더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하찮은 문명인이었다.
그렇다. 후원기관의 담당자가 말한 대로 아이는 그저 흔한 이사를 간 것이 맞을 것이다. 학교 가까운 곳으로 갔을 수도 있고, 아이 아빠가 이웃 마을에 좋은 일자리를 찾았을 수도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후원 아동이라는 이유로 최악의 상황을 일부러 상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는 보내준 카드의 그림처럼 작고 동그란 축구공을 찼을 것이고, 엄마 일을 돕다가 늦게 공책을 펴고 졸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원기관에서는 다시 새로운 아이의 사진과 간단한 소개 카드를 보내주었다. 아이는 건강해 보였고 윤기 어린 뺨과 통통한 손을 다리에 꼭 붙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알겠다. 아이들은 누군가 보낸 후원금이 아니라 제 몫의 건강함으로 크고 있다는 것을. 비록 그들이 각각의 어려움들과 맞닥뜨리게 될지라도 믿고 지켜봐 주는 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겨우 어른의 일이라는 것을.
최근 아이를 아프게 한 어른들 때문에 온 나라가 분노로 끓어올랐다. 만나는 이마다 말도 안 되는 어른들의 경악할 행동들과 법적 처분에 목소리를 높이고, 책임자를 찾아 비난한다. 그동안 비슷한 사건들을 이미 경험했음에도 지나쳤던 어른들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좋은 어른들은 대부분 그 분노와 좌절 끝에 '부끄러움'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대개 생각지 않은 행동과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 준 일들이 있었고,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나누었다. 어른다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이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아이들이 여린 몸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온전한 한 존재임을 자주 잊었음을 후회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볕이 덜 드는 숲에 살아도 그곳의 햇빛만큼 자라고, 거친 땅에서도 기어이 바위틈을 파고들만큼의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디 어른은 어른다워서 거친 빗 속을 아이가 혼자 걷지 않게 되기를...
아이야, 너무 멀지 않은 이사였기를, 정든 것들과 좋은 이별이었기를...
여전히 네가 세상의 모든 거친 빗 속을 헤쳐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봐줄게.
그리고 때론 부끄러운 모습이어도 '겨우 어른의 일'을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