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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som Jul 17. 2016

Appetizing girl

적은, 아쉬운, 매력적인


Appetizer; 식욕을 돋우기 위한 것.


애피타이저들의 공통점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내가 느낀 하나는 양이다. 양이 적다. 무슨 맛이었지? 금방 잊혀질 정도로. 스푼으로 퍼먹으라는 거야, 그냥 핥아먹으라는 거야? 약간은 짜증이 날 정도로. 애피타이저는 늘 부족하고 그래서 아쉽고 그래서 더 맛있다.


관계에 있어서 애피타이저 같은 사람은 매력적이다. 외로운 순간에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지만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분명히 맛있었는데, 무슨 맛인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부득부득 기억을 짜내 설명한다고 해도 이를 듣는 친구들은 내게 그럴 거다. 아니, 별 일도 아닌 걸 왜 이렇게 길게 설명해. 맞기는 맞아?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걱정이 많으니까 차라리 누가 막 달려들면 좋겠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확신을 대신 책임져줄 사람이 필요해. 친구는 말했다. 그런 사람은 없어. 누구나 걱정해. 너처럼 그들도 확신을 원해.


사실은 나도 안다. 이제 열셋, 열넷 그때처럼 동네방네 마음을 드러내고 두 번, 세 번 “좋아해!”라고 말해줄 사람은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마늘쫑만큼의 애피타이저를 내놓으면서, 정작 나는 돈을 내겠다는 장담도 없이, 풀코스 만찬을 대접하기를 바라는 꼴이다.
 


스무 살에는 거침이 없었다. 뭐, 그 이후로도 쓸데없이 씩씩한 순간이 있긴 했지만 매번 후회했다. 여하튼 스무 살은 더 솔직했다. 내 표정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늦게 도착한 답장에 조금 더 늦게 답하기보다 나는 네이트온 같은 문자 메세지가 좋아, 라고 말했다. 너가 아니라면 할 수 없고. 여우처럼 굴지 못해도 까탈스럽지 않아도 나는 무시당하지 않았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냉장고를 탈탈 털어서 접시를 가득 채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운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버릇을 잘못 들였다. 어느 정도의 주눅과 어느 정도의 계산법을 배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감자스프를 세 스푼만에 해치우다가 별별 생각을 다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애피타이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본 요리가 되지 못한 게, 배부르지 못한 음식이 뭐 그리 멋진가 싶었다. 다시. ‘매콤크림돈까스’를 소스에 푹 찍어 먹고는 고민을 고쳐먹었다. 내 그릇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정성스런 요리를 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요리에 적어도 고마워할 줄 아는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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