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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시음회 Oct 30. 2022

제 6회, 반항

[금요시음회] 가현의 시 같은 나날, 내 플레이리스트에선 동요가 흘러




     애를 낳고 사흘 만에 친구들이 놀러 왔다. 선우가 채 빨간 티도 벗지 못했을 무렵이었고, 크기는 고작해야 내 팔뚝만 하던 때. 엄마인 나도 아기가 이렇게나 작은 존재라는 걸 이제 막 실감했는데, 임신도 결혼도 전이었던 친구들은 봉긋한 배에서 이런 게 나왔다니 탄생의 신비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날까지만 해도 쿨쿨 자고 있었다. 잘 울지 않았고, 눈코입을 가운데로 모아 용을 썼으며, 고요히 잠든 와중에 응가를 하며 방귀를 뀌어 친구들을 웃게 했다. 이제 시작이네,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아직은 괜찮다며 웃어 보였지만 당장 나도 내 앞날을 몰랐다. 불과 며칠 뒤부터 몇 달은 더 잠을 못 이룰지 몰랐단 소리다. 우리의 마음은 같았다.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나의 평화를 빌어줄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걔들은 농을 놓지 않았다.  


“저 쪼끄마한 애가 어느새 우리만큼 커서 '엄마가 내 맘을 어떻게 알아 !!! ' 소리치고 방문을 꽝 닫는다는 거잖아. 놀랍다, 놀라워.” 


     기억하지 못하는 팔뚝만 한 시절을 상상하며 엄마아빠도 우리가 이렇게 자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무엇도 못 되어있을 줄 누가 알았어, 웃었다. 우린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스물아홉인 지금도 무엇이 되어있기보단 도전하기 바쁜데, 선우는 동생도 생기고 말이지. 어느 새 훌쩍 커버렸다. 주름도 없던 입술로 엄마 젖가슴 찾기 바빴던 아이는 동생을 찾아오고, 이제 이모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그리고,


     그렇게 대들려면 최소로 잡아도 십 년은 걸리겠지 싶었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는 오늘 아침에만 해도 엄마 나 너무 속상해 ! 소리칠 만큼 자랐다. 큰 소리에 민감한 아이는 문을 세게 닫을 만큼 당차지 못하지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부탁을 거절하고, 해야 하는 일을 미루거나 안 하겠다고 말한다. 


     대답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많은 감정을 느낀다. 대부분 고맙다. 아직 소화하기 어려운 감정일 텐데도 이제는 곱씹고 차분히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잠시 너그러움을 잊고, 순간적으로 화를 내게 되는 날도 있다. 주로 아침 시간이다. 어린이집을 늦지 않으려는 나와 가지 않겠다는 선우와의 팽팽한 싸움은 늘 나의 승리로 끝이 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다. 


“ 어린이집은 어제 갔잖아 ! “


 “ 어린이집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가야 해. 토요일이 오면 이틀 쉬는 거야. “


“ 그렇지만 어제도 갔잖아. 선우가 너무 피곤하대. 안돼 가. ” 


     내 첫 반항도 엄마의 바쁜 아침마다 이뤄졌다. 출근을 해야 하는 엄마와 엄마를 붙잡는 나 사이에서 할머니와 아빠는 매일 고생했다. 현관문 앞에 누워 시위하는 나, 엄마는 아침마다 울었다. 엄마를 붙들어 놓지 못하자 놀이방에 가지 않겠다고 차 바닥을 뒹굴었고, 우유를 떼지 않겠다면서 가족들이 숨겨놓은 젖병을 찾아다니며 울었다. 내 반항이 이리도 지독하였으니 엄마아빠는 선우의 투정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수 있나 보다. 뭘 어떻게 해도 너보단 덜하다는 말을 아빠는 달고 산다. 그러면 나는 반박도 못 하고 화끈거리는 얼굴이 된다. 미안한 기억이 떠올라서.

 

     진짜 반항이라 부를 수 있는 사건은 고작 아홉 살에 벌어졌다. 나는 그날 버려졌다. 나는 답도 없이 아빠더러 아빠 자격도 없다고 소릴 질렀고, 상처받은 아빠는 나를 공주의 한 박물관에 덩그러니 두고 일행들과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나는 벤치에 앉아 마음을 추스르고 미아보호센터에 가서 아빠를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고민했다. 공중전화를 바라보면서 경찰에 신고할지,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들고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할지, 히치하이킹을 해야 할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함께한 사람들이 가현이 저렇게 둬도 되느냐고 묻자 아빠는 걔 똑똑해서 괜찮다고. 우리 부부 휴대폰 번호도 외우고 있고, 사람에게 도움 청할 줄도 안다고 대답했다. 아빠는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던 거지. 어찌 저찌 엄마를 만나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로부터 아빠에게 일주일간 대화를 거절당했다.


     그날 내가 아빠에게 받은 섭섭함이 사라지지 않고 여태 남아 있지만, 그래도 내가 그만치 상처 줄 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두고두고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정정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 싫어. 진짜 싫어 ! 엄마 미워 ! “ 


     지금도 구석에 서서 고갤 숙이고 겨우 치켜든 눈으로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날 닮은 아이. 나는 말을 잃는다. 내가 생각해도 아이가 싫어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나는 중재를 해야 하는 처지고, 둘째는 선우보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선우가 불편한 상황이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아이에게 양보를 권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첫째였으니까. 자라며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말은 네가 누나니까. 나는 누나여서 많은 걸 내어줘야 했다. 반대로 받는 것도 많았다. 그것으로 내가 받는 작고 큰 부당함이 상쇄되었던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별수 없이 나도 아이에게 억울함을 선사하는 엄마가 되었다. 너무 착한 아이는 자신이 소리를 낼수록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엄마가 곤란한 상황이 된다는 걸 벌써 인지해버린 것 같다. 건네는 손과 머뭇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면 나는 걜 꽉 안아버리게 된다. 어린 날 안는 기분으로. 양보해줘서 고마워, 마음을 나누는 건 어려운 일이야. 그리고 혹 누구에게도 절대 주고 싶지 않은 게 생긴다면 엄마에게 꼭 말해줘. 싸워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살다 보면 분명 있을 거야, 일러준다.

 

     어릴 때 엄마의 품에 안겨서 그래도 엄마는 내 편이어야지,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우는 날이면 엄마는 내 머리를 한참 쓰다듬어줬다. 그 몇 분으로 나는 평생의 설움을 견뎠다. 그리고 좋은 누나가 되어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선우와도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 오붓하고도 단둘이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부비는 밤들. 하늘이 검어지면 마음에 대해서 말한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나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들. 정당하지 못했던 낮의 모습에 대해서 사과를 하면 아이는 마음이 슬펐지만, 알겠다고 말해준다. 사과를 받아준다. 반항을 녹이는 건 뒤늦게라도 속내를 알아주는 다정한 시간이라는 걸, 따뜻한 관심이라는 걸 선우도 알아가고 있을 것이다. 


     선우와는 대화를 할 수 있는데 말이지. 벌써 말도 못하면서 온몸으로 반기를 드는 우리 집 이번 친구는 어쩌면 좋지. 선우는 바닥에 눕거나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준우는 수틀리면 울지도 않고 냅다 바닥에 누워버린다. 이 똥강아지 벌써 반항하는 거야 !?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래, 그래라. 나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상황이면 그냥 내버려둔다. 준우는 내 반응에 어차피 크게 동요하지 않는 아이니까. 네 행동을 전혀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고 보여준다. 그러면 준우는 충분히 표현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난다. 녀석의 과정에는 상처가 없다. 우리는 평화롭지만, 덕분에 준우는 하루에도 옷을 서너 번 갈아입어야 한다. 밖에 나갔다만 오면 등짝이 죄다 검게 된다.


     아빠는 그런 준우를 보고도 내 예전 이야길 한다. 글쎄, 황가현이 말도 못할 때에는 사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서서 움직이질 않아. 사달라고 떼쓰지도 않아. 다른 애들처럼 뒹굴지도 않아. 가자고 해도 그냥 하염없이 있는 거야. 가마니도 아니고, 망부석도 아니고 이건 뭐. 


     내 반항의 역사는 얼마만큼 쌓여온 걸까. 그리하여 나는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부조리함과 부당함에도 소리를 내야만 하는 불편하고 피곤한 사람으로 커버린 걸까. 반항이 주제로 떡하니 떨어지자 호와 매정은 살면서 반항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그랬다. 아니, 그런 인생 대체 어떻게 사는 건데. 뭐 지금의 내가 퍽 싫지 않은 걸 보면, 그리고 열심히 작은 반항을 축적해가는 아이들을 보면, 나 역시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세상과 싸울 때에 뒷배를 서줬던 우리 부모님처럼. 보고 배운 게 전부라고, 아이들이 날 보고 뭘 배우겠나. 피는 못 속이더라고. 아이가 대들지 않아도 좋을 만큼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하고, 따뜻해지기를 바랄 밖에 나는 없다.


     반항이라곤 내내 모르고 자란 소년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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