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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시음회 Sep 30. 2022

제 2회, 자랑

가현의 시 같은 나날, 내 플레이리스트에선 동요가 흘러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이영훈 노래를 들었다. 그는 가끔 맥주를 많이 마시는 날이면 라이브 방송을 틀고 잔뜩 적셔진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풍문으로만 들어왔던 그 방송을 이날 마주쳤는데, 너무도 귀한 시간이었고 혼자만 듣기 아까워 그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너무 좋은 걸 보면 호들갑 떨고 싶어지니까. 그러려면 필히 목격자가 필요하다. 



     나는 내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와 내 사이가 아주 좋아서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엄마처럼 스물넷에 결혼해 스물다섯에 아이를 낳으면 되겠다고 인생 설계를 했다. 어릴 적에는 어렸으니까 엄마가 친구들의 엄마보다 젊어서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줄 알았다. (지금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내가 싫다고 하는 걸 구태여 하라고 부추기지 않았으며, 보편적으로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혹 너와 너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면 설사 네가 다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서서 싸워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또, 사람이 만나 사랑하는 일은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니 사랑하는 존재를 다치지 않게 하는 선에서 모든 형태의 사랑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욕심이 많은 나에게 내려놓는 법을,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서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쳤다.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고.


     누군가 네게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면 내 엄마와 아빠 밑에서 내가 태어난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가 학교로 찾아오는 날이면 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곤 했다. 실체가 없던 말을 드디어 목격하게 된 친구들은 내 예상대로 가현이 엄마 예쁘다, 멋지다, 말해주었다. 설사 그게 치레의 말이라고 해도 나는 증명을 완성한 기분이 되어 좋았다. 



     언젠가는 다름없이 말했다가 너 지금 자랑하는 거니 ? 날 선 말을 들었다. 처음 있는 일에 무척 난감했는데, 그 뒤로 밖에서 내 가족에 대해서 말하는 걸 꺼리기 시작했다. 절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단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마도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 그 시절 그 친구에게는 나는 가졌지만, 걔는 가지지 못한 가족의 탄생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애는 모르겠지. 나도 그녀를 부러워했다는 걸. 따뜻한 물이 나오는 욕실과 집안에 있는 화장실, 그리고 양변기 같은 것.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지지 못했던 핸드폰과 계절마다 바뀌는 새 옷, 그 애가 곁에 지날 때마다 풍겨 나오던 달큰한 향기를.


     노골적이지 않지만 넌지시 가진 것을 뽐내는 그 애의 모습이 나는 싫지 않았다. 귀여웠다. 그러나 그 애는 수많은 애의 입에 오르내렸다. 쟤는 그렇게 자랑을 하더라. 제 잘난 맛에 사나 봐. 본인이 가진 게 다 자기 건 줄 아나 봐. 그래 봤자 우리 집보다 작은 평수에 살면서.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우리는 초등학생이었다. 임원이었던 나는 정의감이었을까, 아니면 그애에 대한 동정이었나. 가끔은 발끈하여 당사자도 아니면서 걔들과 싸우기도 했다. 그리곤 우르르 불려 가 선생님께 혼났다.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의 나를 좀처럼 잊지 못했는데 그때의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두렵고 무서울 게 없었다. 궁금한 게 많아 눈은 초롱초롱했고, 몸이 아주 잽쌌다. 꼭 다람쥐 같았다. 친구들은 내가 차분히 걷는 걸 본 적 없다고 했다. 주목받았고, 잘 싸웠고, 끝내 지켜내고, 그래서 사랑받았다. 



     그러나 열다섯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작아 보일 수 없었다. 하찮은 미물 같으니라고. 도덕성이 높은 부모님 밑에서 컸으므로 나는 물렁하지 못하고 좀 딱딱한 인간에 가까웠는데, 부서질 때마다 바스스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날카롭게 조각이 났다. 조각은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무너져 나를 찔렀고 상처를 냈다. 걱정하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도 못했다. 내게 왜 그러냐고 묻는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너무 싫어 견딜 수 없다고 하면 제일 슬퍼할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입을 닫고 살았다.


     온갖 것에 열등감을 느끼게 되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슬쩍 거리를 두게 되었다. 자신의 패를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의 자신감을 보기 힘들었다. 사실 그 사람은 잘못이 없었다. 근거 있는 대단함을 두 눈으로 보고도 질투하는 하찮은 내 모습이 보기 싫었다. 엄마의 그릇처럼 넓지 않은 소박한 마음이 창피했다. 내가 너무 나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멋없는 나를 알게 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얼굴을 드러내는 일도 멈추게 됐다.  



"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눠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예요 그댈 먼저 제일 먼저 안아줄 거예요 " 



     어떤 음악은 처음 만난 순간이 그림처럼 남아있다. 살다가 이 노래를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거리에서 가슴을 부여잡았다. 눈물도 났던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정류장에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간절하지도 않으면서 목표를 세우게 되었는데, 나는 행복해지기를 가장 먼저 적곤 했다. 그 노래는 내가 너무 잘 아는 다짐으로 가득히 차있었다.


     트렌치코트 안에 그 목소리를 품었던 봄을 보내고 오 년 반 만에야 노래처럼 됐다. 눈가 주름이 늘었고, 뼈도 예전 같지 않은데다 성격도 모나지는 것 같아 무엇하나 대단해지지 않았는데 나는 행복하다. 내가 정말 좋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27년이나 걸렸고, 올해 생일에 나는 이 말을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하나둘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갖기 시작했다. 아이를 갖지 않은 친구들은 무언가 성과를 내고 자신이 바라는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양껏 축하할 수 있다.

     세상이 자랑하는 사람에게 조금 관대하면 좋겠다. 대단하지 않은 나를 자랑하는 엄마 아빠더러 고슴도치라며 평생을 비난한 나였지만, 내 아이의 가치를 요목조목 셈하는 얼굴은 너무도 행복해 보이니까. 모든 엄마와 아빠가 아이 자랑을 널리 한다면 좋겠다. 나는 그 얼굴을 보는 걸 좋아하니까. 그리고 나도 양껏 하고 싶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제 아이를 말할 때 '자랑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이라는 말을 문장의 서두에 붙이지 않는 날을 바란다.


     지나치게 겸손한 내 친구들의 '손사래 치지 않기'도 응원한다. 나도 나를 의심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었는데, 나를 응원해주던 너도 결국 나와 닮아있지. 내가 나이기 위해서 많은 걸 포기하고, 적고 작은 걸 지켜나가는 본인들을 널리 자랑스러워하면 좋겠다. 



     다른 공간에서 그러나 같은 곡을 나눠 듣던 그 밤에 또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영훈의 숱한 커버곡 가운데 이걸 가장 아끼는 이유는 이영훈을 알려준 사람이 너였고, 나에게는 네가 꼭 이 노래 같아서. 목소리가 멈추고 나자 고고하게 듣던 몸을 들썩이며 나는 목격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듣고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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