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아트 세기의 커플이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이별
2020년 3월 초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옛 여인이자 예술가 파트너였던 독일 출생 퍼포먼스 아티스트 울라이가 임파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둘은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의 연까지 가지 않았지만 평생의 동반자라고 서로 칭할 수 있을 만큼 둘의 관계는 각별하다.
울라이와 마리나는 함께 실험적인 작업을 하면서 연인들 간의 말할 수 없는 비언어적인 표현들을 퍼포먼스로 승화시켰다. 그들의 작업은 위태롭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며 미련해 보이기까지 하다. 보고 싶어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예술계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이자 아브라모비치의 lover인 울라이는 이제 그의 작품과 마리나의 작품을 통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R.I.P Ulay
아브라 모비치는 한 매체에 그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친구이자 전 연인이었던 울라이의 죽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로 저에게 슬픈 일입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아티스트였고 한 인간이었으며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날에 그가 남긴 예술적 유산들이 길이 남을 수 있는 점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1943년 독일 출생인 울라이는 독일의 부르주아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경멸로 자신의 거처를 암스테르담으로 옮겼다. 그는 죽을 때까지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며 예술활동을 지속했다. 마리나를 만나기 전 그는 폴라로이드사에서 폴라로이드 컨설턴트로 일하며 자신의 정체성이나 크로스 드레싱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 것)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하며 사진작가로 유명세를 탔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유고슬라비아 출생이며 자신의 신체를 고통스러운 환경에 몰아넣으며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을 표현하는 퍼포먼스 아티스트이다. 분명 그녀의 작품들은 잔인하면서 솔직함을 넘어 불쾌한 수준까지 도달한다. 그러나 동시에 숭고하다. 퍼포먼스 아트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진지하게 변화시킨 데에는 분명 그녀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번에는 울라이와의 파트너십 작업에 대해서만 얘기할 것이다.
1976년에 둘은 처음 만나 자석처럼 이끌려 "관계 작업(Relations Works)"을 시도한다.
관계 작업의 테마는 자신(self)과 타인(other) 간의 관계적 공간, 바운더리.
사랑만 하기도 아까운 시간에 그들은 함께 예술적 실험을 한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무뎌진 감각을 매섭고 날카롭게 찌른다. 서로의 빰을 때리고,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뒷머리를 묶기도 하고 망부석처럼 가만히 앉아서 눈을 맞추며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는 행위를 하는데 그들은 왜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
<빛과 어둠>은 칠흑같이 어두운 뒷배경에 오롯이 두 개의 빛이 때리는 공간 속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퍼포먼스를 하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서로의 뺨을 때리기 시작하며 시간이 갈수록 더 빠른 속도로 때린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때리는 것을 보는 사람은 통쾌하면서도 불안을 느낀다. 제발 그만 좀 해!!라고 소리 지르고 싶어 지게 만든다. 둘은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20분 후에야 한 사람이 끝내면서 본 퍼포먼스는 끝이 난다. 분노와 과격함이 끝이 나지 않을 듯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더 이상 한 사람이 참지 못해 백기를 들어야 끝이 난다.
이 외에 둘의 실험적인 작품들은 시리즈로 탄생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예술적 행위가 얼마나 재미있었을지 그들의 기이하고 엽기적인 이미지들을 보면 느껴진다.
그들의 사랑과 작업은 참 다이내믹하며 유별나지만 이별 또한 한 편의 영화처럼 서사적이다. 둘 사이가 나빠지고 있었을 때 즈음 1988년 중국 만리장성에서 둘은 만나 이별의 의식을 거행한다. 각자 만리장성 반대편에서 출발하여 2500 km를 걸어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 마리나는 황해해서 시작하고 울라이는 고비사막에서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이 헤어짐이 맞는지 수없이 고민하며 지난 기억을 회상했을 것이다. 힘든 만리장성의 여정을 마치고 중간지점에서 울라이를 다시 만났을 때 재회를 하고자 하는 바람이 사라지면서 연인이 아닌 '동반자'로 감싸 안아주고 싶다는 감정적인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울라이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다른 것에 방해 없이 자연을 등지고 묵묵히 걸으며 그들은 이별을 했다.
그중 젤 감동적인 작품은 단연코!!!
이 퍼포먼스 작품은 그녀가 인생을 살면서 탐구해왔던 자신의 내면을 빛을 찾아 순수한 의식상태로 도달하는 목표를 잘 드러낸다. 여러 문화권을 다니며 자신의 정체성과 내면의 깨달음을 찾은 그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빛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친절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아티스트는 출석 중이다.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관람객을 줄을 서서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둘은 대화를 전혀 하지 않는다. 둘만의 오고 가는 대화는 그저 눈빛과 주고받는 느낌. 모마에서 열린 736시간 30분 동안 그 공간은 고요하고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기'만이 살아있다. 그녀의 눈빛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참여자들도 있다. 나도 살아생전 정말 정말 참여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소리를 마리나의 큰 눈으로 들어줄 것만 같다.
재밌는 이벤트는 어느 날 헤어진 전 여인 울라이가 예고도 없이 저 작품에 참여를 하게 되며 모든 미술 관계자, 관람객 그리고 주인공 마리나까지 당황스럽게 만든 것이다. 마리나는 앞에 앉는 관람객이 바뀔 때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그 사람이 앉는 소리가 나면 천천히 눈을 뜬다. 눈을 떴을 때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울라이 인 것을 보자마자 3초도 안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는 반가운 마음과 함께 만감이 교차하며 어쩔 수 없는 흐름에 따라 손을 뻗어 울라이와 손을 맞잡는다. 울라이의 깊게 패인 주름은 수백 가지로 표현으로 마리나에게 말을 건네며 안심시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하지 못한 세월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서로 묻고 위로하는듯하다. 둘의 만남은 그 공간에서 큰 울림을 주어 지켜보던 관람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울라이 생전에 아브라모비치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울라이 라는 사람을 알아가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죠. 아마도 평생 걸릴 거예요.
울라이와 마리나처럼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며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예술적 재현 작업도 함께 했지만, 한 사람이라는 우주를 알기에는 참 힘든 과정인가 보다. 에너지 넘치며 치열한 사랑에 몸 사리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만난 두 개의 우주는 세상에 위대한 작품들을 남겨 우리에게 마음 깊은 진동을 남겼다. 한 편의 연극 같은 그들의 관계의 시작부터 이별까지 담아낸 작품들을 통해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