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 우리가 만든 생태계의 범죄.
날씨가 따듯해져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기분 좋게 집을 나서다가
"아 맞다! 마스크"
현관문을 다시 열고 마스크 챙기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따듯한 봄날 피는 꽃의 향기도 맡지 못하는 요즘은 봄이 주는 기쁨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올해의 봄은 단순 기온만 조금 상승한 시기였다는 사실만이 알아차릴 뿐.
재앙 같은 요즘의 일상에서 그나마 감사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건 이전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들이 참 소중했다는 것이다. 편한 복장으로 영화관을 가고 대충 닦은 손으로 팝콘을 먹고, 꽃피는 봄날 벚꽃 구경 나들이를 하는 것. 참 감사했던 일상이 다시 돌아온다면 매 순간을 조금 더 즐겁게 느끼리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을 찰나 상승한 기온 변화만큼이나 전국 시민들에게 분노를 가져다준 N번방 사건이 나를 분노하게 했다.
입에 담기도 싫은 이름의 가해자는 20세 중반밖에 안 되는 청년인데, 그가 꾸민 이러한 온라인 방식의 성착취 비즈니스 시스템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는 것도 충격이었고, 여성을 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가학적이고 저질적인 행위를 시켜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는 사실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머리 끝까지 소름 돋게 한 사실은 이러한 영상을 공유하면서 본 사람들이 26만 명에 달하는 남성들이었다는 것. 묵인한 채.. 그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망각한 채..
그때 깨달았다. 이건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거구나... 한 인간의 욕구는 매우 중요한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욕구를 미성년자를 협박해서? 그리고 26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음지에서 해결한다는 사실? 절대 정당성을 요구할 수 없고 이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이러한 것들이 비정상적이라고 자각하지 않는 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의 인권과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점 썩어간다는 것.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설치 미술가,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로 유명한 바바라 크루거는 보그나 마드모아젤 등유명 패션 잡지를 발행하는 Condé Nast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잡지에 발행되는 예쁘고 화려한 이미지들의 정치적으로 개입된 편집과 메이킹이 어떻게 되는지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백인 남성우월주의로 형성된 사회에 뿌리 박힌 이미지를 들춰내고 비판하면서 치밀한 시각적 공식을 만들어낸다. 크루거는 메시지가 분산되지 않게 컬러도 블랙, 화이트, 레드로만 제한한다. 폰트는 센세리프로 볼드함과 커브가 특징인 Futura를 이용하여 단호하고 선포하는 뉘앙스를 만든다. 이미지는 블랙 앤 화이트로 빈티지하게 복사하여 재구성함으로써 보편적이며 상징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이렇게 크루거의 세 가지 특징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교육된 관념들을 비판적인 목소리로 꾸밈없고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날리고, 질문한다.
위 작품은 '무제 (우리는 움직이지 않도록 지시를 받았다)'다. 한 여자가 의자에 앉은 채 허리를 숙이고 무릎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몸을 꽁꽁 묶어놓은 모습이 상당히 답답한 느낌을 준다. 허리를 마음대로 필수가 없는 강압적인 자세이며 복종하는 자세로 보인다. 무릎부터 엉덩이까지 부분에 볼드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도록 지시를 받았다.
무슨 지시를 받았기에 스스로 저렇게 몸 전체가 꺾일 때까지 묶인 건가?
여자를 한 인격체로 인정하기 앞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다양하다.
여자는 이래야 돼~ 저래야 돼~ 하며 증조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는 유교적이며 고리타분한 것들.
"여자는 자고로~이뻐야 돼. 치마가 너무 짧으면 안 된다."
"화장은 그게 뭐니, 여자가 주장이 너무 강하면 안된다."
"남자보다 잘나면 백년해로하기 어렵다."
"요리도 잘해야 돼, 다림질도 잘해야 돼."
"여자가 참아야 돼."
여기서 "왜"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 "원래 그런 거야"는 답이 돌아온다. 이유가 없다.
세상에 사유해 볼 가치가 많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이유 없이 모르게 덮인 덮게들에 대해 질문을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 왜 그렇게 처신해야 되는지 이유는 특정하게 존재하지 않지? 결국 이러한 질문은 또다시 묻히고 사회는 어김없이 편한 대로 돌아간다.
n번방의 미성년자 여자아이들도 저렇게 몸이 묶였지만 그 흐름에 순응한 채 속으로 도움의 아우성을 외쳤을 것이다. 자신의 신상을 털린 채 금전적인 부분과 나체 사진을 이용해 협박당하면 어떤 성인들도 놀란 마음에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당황하게 마련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을 인지한다면 어린아이들이 맞닥드렸을 그 공포감과 수치심은 거대했을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나 자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만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 익명성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어리고 약한 이들의 약점과 수치심을 악용하면 돈을 벌 수 있고 팔로워를 만들 수 있는 무차별적인 환경인 셈이다. 4차 산업의 발달로 우리는 제 손으로 그러한 환경에 양분을 주며 더 크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익명의 생태계가 점점 더 커지면 아마 이런 사건들은 양지에 떠오르지 않은 채로 홍수같이 범람할 것이다. 이 사건의 가해자들과 비정상적인 것을 돈을 지불하고 묵인한 채 관음 한 사람들을 모두 처벌해야 되는 것은 당연지사고, 우리가 이런 사건을 계기로 그에 맞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한 법규 강화와 청소년들이 바른 루트로 성을 인식할 수 있는 교육이 발 빠르게 업데이트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