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연재 Nov 17. 2020

#2 달걀찜인가 스크램블 에그인가? 뭣이 중헌데.

오랜 친구들과의 여행은 무계획이 계획입니다 @제주도

스크램블 에그 하면 무엇이 필요한가?

당연시 떠오르는 것들은 프라이팬, 올리브 오일, 달걀, 우유다.

여기에 소금과 후추 양념이 준비되었으면 땡큐 베리 감사다. 하지만 이번에 상당히 창의적인 스크램블 에그를 먹어보게 되었다.

냄비, 달걀, 우유 딱! 이렇게 3가지만 이용한 스크램블 에그다.


당연히 나의 혀는 부족한 짠 내를 찾고자 허우적 될 것은 이미 예상된 바다. 하지만 여행 중, 털털한 친구가 해주는 요리라는 것을 감안한다.

제주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다음날 깨어나니, 침실 2층은 상당히 고요했다. 침실 창문에서 1층이 환히 다 내려다 보이는 창이 있다. 일찍 일어난 동생들이 이미 아침 식사를 한 흔적이 저 멀리서도 보인다. 핸드폰을 하고 책을 보면서 각자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한가로워도 충분했다. 미세먼지 한점 없는 파란 하늘과, 살랑거리는 바람과 11월이라고 하기에는 따듯한 온도가 우리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으니 말이다.



느릿하게 일어나 1층으로 내려온 나를 발견한 ‘오늘의 조식 요리사’ 동생은 에그 스크램블을 해주겠다고 한다.

나는 티 한잔을 우리면서 달걀을 기다렸다.

“어 잠깐만. 우리 올리브 오일 없잖아.”

숙소에는 올리브 오일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걱정 어린 마음에 부엌으로 가서 말했다.

수술복을 입고 요리를 하던 동생은 자신 있게 우유  좀  넣어서 하면 돼. 계란찜이라고 생각해.” (수술복은 실제로 의사인 동생의 유니폼이라고 한다. 편해서 파자마로 입는단다.)

태우지만 말기를 간절히 바라며 홍차를 2그람 정도 넣어서 뜨거운 물에 넣었다. 3분 정도 지나고 티 백을 건져냈더니, 동생의 에그 스크램블이 완성되었다. 어떠한 간도 되어 있지 않은 포슬포슬한 달걀이 파스텔 색으로 너무나 예뻤다. 김이 모락모락 나니 호텔 조식이 따로 없다.


수술(?)을 잘 끝낸 달걀에 딱 후추라도 뿌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옆에 있던 다른 동생이 기가 막힌 팁을 건넨다.

“언니, 어제 사온 마늘 바게트 빵이랑 먹어. 간이 딱 맞아 그러면.”

우선 달걀찜 같은 스크램블 에그부터 맛을 보았다. 너무나 순수하고 때가 묻지 않은 맛이다. 잽싸게 마늘 빵을 한 입 베어 먹었다. 먹는 순간 행복감에 웃음이 감돌았다. 모든 것에 균형이 잡힐 때 행복한데, 특히나 맛에 예민해서인지 음식이 주는 균형감은 그날의 하루를 좌우한다.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더불어 홍차의 쌉쌀한 맛이 달걀의 순수한 맛을 감싼 마늘 바게트의 단맛을 잽싸게 잡아준다.

창을 바라보면 바다가 보이고, 블루투스 오디오에서는 90년대 음악이 흘러나오고,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올해 처음 비행기를 타고 멀리 온 여행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조식을 맛보는 순간이 귀하다.

여행 가면 모든 재료가 구비될 필요가 없다.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새로운 추억의 순간을 창작할 뿐.

일상에서는 생각지 못할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의 또 하나의 묘미가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