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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Jul 23. 2022

17. 그리스, 로마 미술로 Replay

오귀스트 르누아르 & 파블로 피카소


전통적인 미술과 대치하던 근대 미술 아티스트들도 다시 전통 미술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 본능이 있다. 새로운 스타일은 과거를 자양분으로 삼아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어 피어난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입체주의 작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볼 수 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근대화 되어가는 도심에서 잠시 벗어나 여가 시간을 보내는 중산층 사람들 혹은 자신의 주변인들을 주제 삼아 주로 그렸다. 르누아르의 인물을 묘사하는 독특한 화풍 때문에 초상화 의뢰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르누아르가 한창 활동 하던 시기는 인상주의 작가들이 주관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던 시기였다. 르누아르 역시 인상주의의 특징인 빠른 붓 터치와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어지는 듯한 색감들을 차용했다. 그래서인지 르누아르가 그린 인물은 예쁘지만 가벼워 보인다. 


르누아르가 표현하는 인물들은 아이이든 어른이든 보송보송한 구름 같은 매력이 있다. 마치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느낌과 흡사하다. 하지만 1881년 르누아르는 더 나은 작품을 그리고자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그의 스타일은 더 탄탄하게 변화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안, 플래미쉬 마스터들의 작품들을 관찰하며 웅장함과 고전적인 특징들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라파엘로, 티치아노, 루벤스 등 고전주의 작품들은 미완성 같은 회화 스타일을 재정립하도록 도왔다. 

          


 1876년에 르누아르가 그린 <그네> 속 인물들을 보면 인물의 안정적인 형태와 무게감 보다 자연광에 비친 인물들의 옷자락과 밝은 자연광을 강조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인물의 그림자가 뚜렷하지 않아 공기 중에 떠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 후 그린 그림 속 인물에서는 붉은 톤을 주로 쓰며 강렬한 색감 대비를 만든 점을 발견하게 한다. <알제리안 소녀> 속 소녀의 모습은 인상주의 화풍이 남아있지만 강렬한 색들을 쓰기 시작하는 흔적을 볼 수 있다. 점진적으로 르누아르는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작품 속 인물들처럼 화려하면서 웅장한 느낌을 인물에 불어 넣는다. 르누아르가 후반에 그린 여성의 누드화는 사우나를 하고 나온 듯한 붉은 피부의 인물들로 종종 표현되는 것도 볼 수 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네, 1876



<르누아르의 작품에 영향을 준 작가들>

      

티치아노, 에우로페의 납치, 1559-62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1827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제리안 소녀, 1881
오귀스트 르누아르, 데이지를 들고 있는 소녀, 1889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앞에 있는 두명의 소녀들, 1892



   “라파엘로 처럼 그리는데 4년이 걸렸지만 아이 처럼 그리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 라고 말할 정도로 아이 같은 자유분방한 화풍을 가진 파블로 피카소 역시 고전주의 작품으로 돌아갔던 시기가 있다. 1917년부터 입체주의에서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변화한다. 피카소 역시 르누아르 처럼 이탈리아에 거주하며 이탈리안 르네상스 작품들을 보게 된다. 피카소는 그들의 우아하고 웅장한 화풍에 감탄했다. 이전 입체주의의 특징인 복잡한 단면으로 구성되었던 인체들은 신고전주의를 만나면서 물에 몇 시간 동안 잠겨 불어 난 것처럼 풍만한 육체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피카소가 그렸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인물 표현이 너무나 고전적이고 “정상적”이기까지 하다. 


1918년 피카소는 올가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첫째 아들 파울로를 안게 된다. 관찰자로서 그는 아이를 향한 올가의 끝없는 사랑과 여유를 느끼게 되며 작품에도 풍요롭고 넉넉한 느낌이 반영된다. 피카소 역시 아이로 인한 평화로운 공기를 느끼기 되서일까? 뾰족하게 모나 있던 입체주의 스타일의 인물들이 서서히 둥글둥글한 형태로 잡아간다. 

피카소가 그린 올가의 초상화, 1918
파블로 피카소, 하얀 옷을 입은 여인, 1923
파블로 피카소, 해변을 뛰어다니는 두 여인들, 1922


           19 세기부터 꿈틀대던 근대 미술의 역동성으로 인해 미술이란 다이나믹한 예술 분야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색이 형태로부터 해방을 하게 되고, 붓이나 물감을 쓰는 법도 다양해졌다. 아티스트들은 사회적 관습이나 목적성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나만의 표현법”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미술의 재료나 소재에 있어서도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하지만 서양 미술의 기초 뿌리였던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수 백년이 지나도 근대 미술 거장들이 재 탐구해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창조하는 자양분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https://artlecture.com/article/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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