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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Sep 22. 2022

19. 시카고의 랜드마크: 크라운 파운틴

도심 속  아름다운 공공미술


    앞으로 서울에서 십년만 더 살다가 자연이 어우러진 조용한 곳으로 가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문화, 예술적인 요소가 풍부하고 접근성이 쉬우니 서울을 벗어나 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제는 자연으로부터 마음의 쉼을 얻고 싶은 생각이 더 든다. 서울이 자연, 녹지와 잘 어우러져 살기 좋다면 아마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점점 인구는 줄어든다는데 경쟁하듯 아파트를 더 높게 짓겠다는 공사 현장을 지나가다 보면 몸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나듯 목이 경직된다. 차마 눈뜨고 쳐다볼 수 없어 눈을 감아버린다.

우후죽순 높아지는 고층 건물이 방해하지 않는 거대하고 넓은 하늘을 보고 싶은 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 싶다. 서울 보다 몇 십 배 큰 규모의 도시인 시카고도 거대한 고층 빌딩과 겨울이면 바람과 눈보라가 뒤섞인 추운 날씨 때문에 서울과 비슷하지 않나 할 수 있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 시카고는 현대와 고전 건축물들 그리고 녹지와 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철저한 도시 디자인 계획 아래 탄생되었다. 건축가이자 도시 설계사였던 다니엘 번햄의 도시계획으로 시카고를 질서 정연한 도시로 바꾸었다. 


▲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은 아름다운 뷰로 유명하다. 야경이 더 환상적이다.


    시카고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공공미술 작품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시카고도 산업화가 이뤄진 거대한 도시이다 보니 직선의 형태로만 뻗어버리는 멋없는 도시 뷰를 생각하게 되지만, 도시 속으로 들어가보면 적재적소에 배치된 예술 작품으로 도심에 활력이 돈다. 알렉산더 칼더, 파블로 피카소, 안토니 곰리, 아니쉬 카푸어 등 대가들의 작품들이 수변, 녹지, 건축물들과 잘 어우러진다. 건물 앞에 미술 작품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희한한 국내 건축법과는 확연히 다르다.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건물들에 묻혀버려 예술 작품의 재 기능을 하지 못하는 버려진 작품들과는 단연코 비교가 된다.


    시카고의 메인 랜드마크인 밀레니엄 파크 입구 쪽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공 미술 작품이 있다. 시카고 루프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크라운 분수대 (Crown Fountain)다. 이 분수대는 2004년에 스페인 예술가 하우메 플렌자와 크뤡 앤 댁스턴 건축사무소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공공 미술 작품이다. 보통 분수대라고 하면 위에서 아래로 올라오는 물살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분수대는 그 고정관념을 깬다.


▲ 하우메 플렌자


    작가 플렌자는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제작해야 하는 것이 분수대라는 것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분수대는 지속적으로 샘 솟는 물이며 고대부터 역사적으로 삶, 정화 라는 의미를 가진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마치 이탈리아의 트레비 분수 처럼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희로애락들이 공유되는 곳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십 여년 전 시카고에 거주할 때 친구에게 “우리 어디서 볼까?” 하면 “그 얼굴 분수대 앞에서 봐” 라고 말해도 알아들을 정도로 그 분수대가 없다면 어떻게 약속을 잡을까 싶기도 하다. 그 정도로 플레자의 분수대는 시카고 루프의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 하우메 플렌자, 크라운 파운틴


        이 작품의 외관은 현대적으로 단순하다. 15.2m에 달하는 박스 같은 타워 두 개가 쌍둥이 빌딩 처럼 마주 보고 있다. 그 벽은 LED로 구성되었으며 사람들의 얼굴 영상을 띄운다. LED 속에 있는 커다란 얼굴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얼굴들은 시카고 거주자 천명의 얼굴을 촬영한 영상이다. 언젠가는 자신의 얼굴이 이 커다란 전광판에 등장 할 거라는 기대가 있을 것이다. LED속 사람들의 입이 위치하는 곳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아이나 성인의 얼굴이 나와 입을 삐죽 내밀기도 하고 벌리기도 한다. 어떤 얼굴이 다음에 나올지 혹은 어떤 타이밍에 물을 뱉어 낼지 계속 보는 것 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시원하게 분수대 물을 맞으며 노는 아이들 이미지: www.ccachicago.org



        크라운 분수대에는 단골 손님들이 있다. 물을 보면 신나서 달려가는 아이들이다. 여름에는 아이들이 맨발로 옷을 다 적시면서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수영장인 것 마냥 배를 바닥에 깔고 헤엄치는 손짓과 발짓을 한다. 어린 아이들도 그렇지만 성인들도 입에서 물이 나오는 순간에는 하나같이 타워에 붙어 자신의 입에서 물이 나오는 듯한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는다. 

▲     저녁 야경 크라운 파운틴의 모습/ 이미지: milleniumparkfoundation.org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우스꽝스러운 커다란 얼굴은 부산하고 삭막한 도시의 분위기를 완화시킨다. 매년 5월 정도 되면 시카고의 티끌 없이 맑은 파란 하늘에 크라운 파운튼이 생각이 난다. 그만큼 크라운 파운틴은 예술 작품의 순기능을 하는 공공예술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크라운 파운튼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BCwTleCvf8




https://artlecture.com/article/2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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