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고상한 취미이고 멀게만 느껴진다 생각될 때 장 줄리앙의 작품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장 줄리앙은 프랑스 출생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디자이너이며 화가다. 주황색 얼굴 속 동그란 흰자에 검은 점이 톡 찍힌 눈과 알파벳 U 자 코, 그리고 살짝 미소지은 입이 그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이 캐릭터는 작가의 외모를 간결한 요소로 만들어냈는데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귀엽고 독특하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은 텍스트 없이도 만화를 보 듯 이미지만으로도 그림의 내용과 맥락이 쉽게 이해가 가능하니 친근감을 유도한다. 볼 때마다 어쩜 저렇게 심플한 선과 점만으로도 유쾌한 인물들을 만들어내는지 기분 좋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분야는 순수 미술 과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 일러스트레이션은 크게 보면 디자인의 일부로 들어간다. 순수 미술은 굳이 청중에게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어떤 사건을 간결하고 직관적 이미지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은 그래픽 디자인에 일부 속하기에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 어린이 동화책이라면 어린이들이 동화 내용을 더 재미있게 읽고 이해를 돕도록 이미지들을 창조하는 것이고 잡지에 들어간다면 어떤 사건이나 시대를 풍자할 수 있는 직관적인 시각적 자료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작품을 통해 청중과 간접적으로 상호작용을 자주 하게 하는 역할이 시각 디자인에 속한다.
“나의 작품들은 모든 것들의 긍정적인 부분들을 교류하는 것이며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고 사고하게 만들고 싶은게 나의 바램이다.”
-장 줄리앙
올해 10월부터 서울 DDP 뮤지엄 전시장에서 개최한 장 줄리앙의 개인전을 관람했다. 사소한 일상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요소들을 보며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전시였다. 가장 인상 깊은 점으로 첫 번째는 18년 동안 그가 꾸준히 일기처럼 기록을 남겨온 스케치북들 전시였다. 빼곡하게 적어 놓은 불어 노트들과 익살스러운 인물들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장 줄리앙은 자신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부분들을 노출하는 거라 부끄럽다고 용감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스케치들은 그의 생각 과정과 경험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얼마나 성실하게 이 많은 스케치북들을 채웠는지 그의 열정도 느낄 수가 있었다.
두번째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공공미술 분야였다. 일러스트레이터가 공공 미술 프로젝트까지 확장하기까지는 순수미술과 비교해서 쉬운 과정은 아니다. 장 줄리앙은 전시 내벽에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게 된 이유와 설명들을 직접 수기로 쓰고 그려 넣었다. 사실 이 부분도 작가가 이 전시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관람자를 흥미롭게 하는 알짜배기 요소였다. 줄리앙의 조각 인물들은 조각이지만 입체적인 모습이 아니고 편편한 2D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두었다. 형태는 자신의 캐릭터처럼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을 가졌으며 신체도 단순화시켜 아이콘 같은 이미지다. 장 줄리앙은 처음에는 종이로만 흐물거리는 캐릭터들을 만들었었다.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종이 인형처럼 이 종이 피규어도 몸이 편편하다. 관절을 꺾으려면 종이를 접어야 한다. 마침 장 줄리앙은 2020년 낭트 식물원과 (Jardin des Plante of Nante)와 낭트시 녹지환경관리부로부터 낭트의 녹지 정원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그는 이 종이 인형을 거대한 스케일로 만드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경험들 때문에 제안을 거절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운이 좋게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는 철제 가공 작업을 하는 팀을 기회에 잘 만나 종이 질감을 살리는 거대한 종이 사람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장 줄리앙이 지금까지 얼마나 방대한 양의 출판물, 상품들의 디자인에 가담하며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어렵다고 여기던 순수 미술과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분야가 자연스럽게 중첩된 부분이 대중들을 확 사로잡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상품성, 대중성을 강조한 ‘팝 아트’ 라는 분야와는 완전히 다른 아기자기함과 설득력이 자연스레 녹아있다. 언어는 안 통해도 바디 랭귀지로 유머러스하게 소통하는 것 처럼 장 줄리앙의 단순한 캐릭터들은 재기발랄하고 귀여운 느낌을 선사한다.
*아래 이미지들은 장 줄리앙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All images from the catalogue ‘Jean Jullian’ , published by Phai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