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엔 비교 말고 음식을 나누세요.
해마다 겨울의 끝에서 떡국을 먹고 나면 후식 대신 순위를 삼켜보신 적 있으신가요?
민족 대명절이라 모두 모인 방방곡곡에서 "일가친척 천하제일 비교대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입학, 졸업, 취업 등 한 해가 지나간 다음 첫 모임이기에 더욱 비교할 거리도 덩달아 늘어나는 때입니다.
어린 시절 외가 쪽 친척들이 모일 때면, 장손이라는 이유로 동생들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제가 입학한 대학이 곧 사촌 동생들의 비교 기준이 되었기에 내심 미안해지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어머니의 형제분들은 우애가 깊고 서로 비교하려 하지 않으시기에 저만의 눈치보기였을 수도 있지만, 친가 쪽으로 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재산의 축적부터 결혼과 직업, 업적 자랑까지 차마 꺼내기 어려웠던 비교를, ‘가족 같은 친척’이라는 안전한 무대 위에서 마음껏 펼치기 시작합니다. 자랑은 축하해 주면 그만이지만, 축하받고도 한 단계를 더 나아가버리면 고통이 시작됩니다. 결국, 비교로 바뀌면서 명절의 즐거움은 변질되고 맙니다. 그런 불편한 현장의 증인이자 목격자가 되는 것이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더 이상 명절에 그들을 만나지 않게 되었지요.
그래서 명절에 특히나 도드라지는 그 '비교'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비교대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한자의 의미를 뜯어보면 그 잔인함이 드러납니다.
比 (견줄 비): 대상을 나란히 세워 놓고 크기나 우열을 가리는 '기준점(Reference)' 설정.
較 (견줄 교): 단순 관찰을 넘어 '교정'과 '가늠'이 들어간 상태. 즉, 손익(Cost/Benefit)과 순위를 계산하는 '판정'의 단계입니다.
결국 비교란 타인을 바라보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맥락은 삭제한 채 나를 단지 어느 집단의 '순위'나 '숫자'로 번역하는 습관입니다. "어느 대학 갔니?", "연봉은 얼마니?"라는 질문은 내가 누구인지 묻는 게 아니라, 내가 몇 등인지를 계산하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죠.
친척들이 예의 없게 굴었던 것도, 우리가 그 말에 상처받는 것도 사실 뇌의 '생존 본능' 때문입니다. 원시 시대에 집단 내 나의 위치(지위)는 생존과 직결된 정보였습니다. 뇌는 늘 "난 여기서 안전한가?"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을 거울삼아 나를 평가하는 '사회비교이론'을 작동시킵니다.
상향 비교(Upward):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며 동기를 얻거나 좌절함.
하향 비교(Downward): 나보다 힘든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거나 냉소함.
핵심: 인간은 행복보다 '정확성'을 원하기에 불안을 줄이려 끊임없이 타인이라는 거울을 봅니다.
문제는 뇌가 '행복'보다 '정확한 위치 확인'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내가 '되어야 하는 모습(Ought)'과 '현실의 나(Actual)'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 때 우리 뇌는 비상벨을 울립니다.
특히 SNS는 이런 본능을 악용합니다. 타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인 '하이라이트'만 모아 보여주며 우리의 '현실'을 초라하게 만들죠.
하지만 인류의 지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본능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습니다.
① 스토아학파의 일침: 행복을 나의 통제 안에 두라
타인의 시선이나 조건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내 행복을 묶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②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것을 모방한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이 주체(나)와 대상(물건/지위) 사이의 직선이 아닌 욕망의 삼각형 구조로 보았습니다. 그 사이에 반드시 '중재자(타인)'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내가 갑자기 특정 브랜드의 차나 아파트를 갖고 싶어진 이유는, 내가 그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선망하거나 경쟁하는 '누군가'가 그것을 원하고 가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비슷한 사람들(친척, 친구, 동료)을 모방할 때 발생합니다. 중재자가 가까울수록 우리는 그와 똑같아지려 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충돌'과 '시기'가 발생합니다. 명절의 비교대회는 사실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베끼느라 바쁜 '모방의 아수라장'인 셈입니다.
SNS라는 거대한 복사기까지 있는 세상이 되어버리니, 이제는 비교의 홍수와도 같은 세상이긴 합니다. 인스타그램의 피드는 전 세계적인 '모방 욕망'의 전시장입니다.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보며 우리는 그가 누리는 행복을 모방하고 싶어 하고,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극심한 자괴감에 빠집니다. 하지만 지라르는 경고합니다. 그 욕망은 내 영혼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결코 채워질 수 없다고 말이죠.
③ 알랭 드 보통의 지위 불안: 사회적 위치를 자신의 가치로 환산하는 공포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가난은 '불운'이었지만, 현대 능력주의 사회에서 가난이나 뒤처짐은 '무능'으로 해석됩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매혹적인 말은 거꾸로 "실패한 사람은 오직 본인 탓"이라는 잔인한 낙인이 되어 우리의 등에 '구조적 불안'을 새겨 넣습니다.
우리는 빌 게이츠와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슷한 출발선에 있었던 친구, 동창, 혹은 옆자리 동료가 나보다 앞서갈 때 미칠 듯한 불안을 느낍니다. 보통은 이를 '준거 집단(Reference Group)'의 확대라고 말합니다. SNS는 이 준거 집단을 전 세계로 확장해 버렸고, 우리는 24시간 내내 '내가 평균 이하가 아닐까' 하는 공포에 노출된 셈입니다. 이는 곧 평등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비교는 단순한 질투가 아닙니다.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랑의 결핍'을 채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우리가 명절에 친척들에게 성공을 과시하려는 이유도, 사실은 "나는 무시당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처절하게 증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존재를 증명하기보다 지위를 증명하려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교가 시작되면 우리 뇌는 마치 공격을 받은 것처럼 반응합니다.
사회적 통증(ACC): 마음이 아픈 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뇌의 전대상회(ACC)는 인지적 타격을 신체적 통증과 유사한 영역에서 처리합니다.
위협 감지와 코르티솔: 비교가 '위협'으로 인식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뿜어져 나와 몸을 긴장시키고 밤잠을 설치게 합니다.
반추의 굴레(DMN): SNS를 끈 뒤에도 생각이 꼬리를 무는 건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나를 깎아내리는 자기 서사 편집실을 가동하기 때문입니다.
비교당하거나, 비교하는 순간은 편치 않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뇌의 반응이니 잠시 호흡을 고르며 신경계가 진정되길 기다려 봅시다.
그렇다면 이 끈질긴 비교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비교하지 말자"는 다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① 환경을 설계하기: 나를 찌르는 과시용 계정은 과감히 '피드 다이어트'를 하세요. 물리적으로 SNS 앱을 홈 화면에서 치우는 것만으로도 뇌의 자동 스캔을 막을 수 있습니다. SNS는 다양한 목적을 위한 편리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 도구가 나를 평가대 위에 세우는 순간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라 피평가자가 됩니다.
② 감정에 이름 붙이기: 막연하게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나는 질투를 느끼고 있구나", "지금 조급함이 올라왔네"라고 라벨링해 보세요. 보는 순간 이미 뇌는 비교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이것을 메타인지나 개념 정의를 통해 정리해 버리면 우리는 비교가 주는 순작용으로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감정의 정체를 알면 처리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③ 질투를 정보로 바꾸기: 누군가가 부럽다면, 그 사람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가 들인 '과정'에만 집중해 보세요. "저 사람의 글이 부럽다"면 "그는 매일 한 줄씩 쓴다"는 데이터만 가져오는 겁니다.
저 역시 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엄청난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독서량으로 맥락을 뽑아내시어 자신만의 언어로 글을 담아내시는 작가님들, 찰나의 감정과 추억들을 보편화하여 몇 안 되는 글자만으로 모두를 매료되게 만드는 글들, 그리고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감정과 장면 그대로 전해주시는 작가님들을 바라보면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비교를 긍정의 자극제로 활용하고 있지요.
④ 절대평가의 지표: 비교를 멈추는 최고의 역설은 내 삶의 밀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남이 아닌 '어제의 나'보다 딱 1%만 더 나아지는 지표(오늘의 운동, 오늘의 독서)에 집중할 때, 온라인 세상의 비교는 힘을 잃고 내 삶이 메인 무대가 됩니다. 저는 루틴으로 극복합니다. 오늘도 산책을 한 시간 넘게 하고 왔더니, 이리도 맘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비교하거나 비교되면 따라오는 것들을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차이(差異): "다르다"는 사실의 확인 (중립적).
평가(評價): 가치를 매기는 행위 (기준의 개입).
경쟁(競爭): 자원을 둔 싸움 (행동의 유발).
질투/시기: 비교가 감정으로 번역된 결과.
열등감/우월감: 비교가 내 존재(자기 개념)까지 침투한 상태.
동경/롤모델링: 비교가 성장 동력으로 승화된 긍정적 형태.
일단 저는 차이와 동경, 가끔 생존이 걸린 경우엔 경쟁, 이 세 가지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물론 비교 이후에는 마음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차이를 알면 저의 현재에 집중하게 되고, 누군가를 동경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동경받을 수 있는 자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비교라는 단어를 47번이나 적을 정도로 충분히 비교했으니, 이번 명절 연휴에는 비교는 접어두고, 조용히 책과 함께하는 평안한 명절을 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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