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열 걸음

춘천, 그 자체가 영화

by 춘천시민
2025년 7월 24일 목요일의 산책


산책을 나서기도 전,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자전거 뒷바퀴가 납작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어제저녁 8시,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던 순간까지도 바퀴는 멀쩡했다. 팽팽하게 잘 부풀어 있었고, 아무런 징조도 없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끌어내려는 순간 나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자전거 뒷바퀴. 고무는 맥없이 주름져 있었고, 공기는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위험해요. 그거 타지 말아요."


아파트 주차장을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던진 한마디.


'네, 안 탈게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정작 내 마음은 그 순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산책을 포기하고 자전거를 끌고 수리를 하러 가야 하나?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지? 누군가 일부러 공기를 뺀 건 아닐까? 경비실에 가서 CCTV라도 확인해 볼까? 큰일도 아닌데 감정은 뾰족하게 날을 세웠고, 억울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서 나는 어느 틈엔가 상상의 소란 속에 있었다.


아, 안 되겠다. 이러다 기분이 더 엉망진창이 돼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기분을 망치면 오늘 하루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생각을 끊어내듯 자전거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 걷자. 걸어서 이 뒤틀린 기분을 얼른 쓸어내자.


무더운 날씨는 숨을 죄었고, 공기는 축축하게 달라붙었다. 산책을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어깨를 짓누르는 카메라 가방도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이라도 가볍게 입고 나올걸... 스스로를 타박하며 걷던 찰나, 마음속 어딘가에서 묘한 평온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바퀴가 아닌 나를 수리하는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 촬영일 : 2025년 7월 24일 목요일 오후 7:02

| 촬영장소 : 공지쉼터 포토존


무더위에 질질 끌리듯 걷던 발걸음이 공지쉼터 앞에서 멈췄다. 마치 준비된 장면처럼 눈앞에는 노란 메리골드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포토존이었는데, 오늘은 마치 태양이 내려앉은 듯 환했다. 6월에는 양귀비꽃와 수레국화가 인사를 건네더니, 7월에는 메리골드, 제라늄, 엔젤로니아가 방긋 웃어주다니.


노란색은 늘 사람을 위로하는 것 같다. 밝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선명하지만 부드럽다. 그 안에 담긴 생기와 여유, 그리고 회복. 메리골드는 렌즈 너머에서도 또렷했다. 오늘의 시작이 삐걱댔기 때문일까? 이 작은 꽃의 존재는 더 크게 다가왔다. 무심히 지나치려던 산책길에 피어난 이 따뜻한 노란빛으로 땀이 식고, 어깨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그래, 이렇게 작은 꽃송이들이 사람을 붙든다. 삶은 이렇게 작은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아가며 흘러가는 것이다.



| 촬영일 : 2025년 7월 24일 목요일 오후 7:23

| 촬영장소 : 의암호 나들길 데크 전망대 (삼천동231-3)


상상마당을 지나 의암호 나들길의 데크 전망대에 서는 순간, 금빛 물결 사이에 작은 생명들이 보였다. 어린 괭이갈매기 세 마리. 어찌나 조용히 서 있었는지, 파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을 정도였다. 하루의 빛이 서서히 기울며 물 위를 금빛으로 칠하고 있었고, 그 위에 새들의 실루엣이 얹혀 있었다.


춘천에서 괭이갈매기를 본 것은 처음이다. 보통은 바닷가에서나 마주쳐야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은 이 의암호에서, 그것도 해가 질 무렵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 있었다. 만약 자전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순간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의 불운이 더 이상 불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새들은 물 위로 발을 내딛지도 않고, 날아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오래도록 어린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이토록 고요한 장면은,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만 나오는 풍경인 것일까?


모래밭, 갈매기, 잔잔한 파도, 금빛 물결. 나는 셔터를 몇 번 누르고는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춘천이라는 이름의 바다에 막 도착한 사람처럼, 이 고요한 감정을 더 오래 붙들기 위해.



| 촬영일 : 2025년 7월 24일 목요일 오후 7:37

| 촬영장소 : 수변공원길 산책로 (삼천동 276-2)


어린 괭이갈매기들을 뒤로하고 걸어 내려오던 중,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빽빽한 수풀 너머로 한 남자의 뒷모습이 모였다. 낚싯대를 들고 의암호를 바라보는 모습이 풍경을 완성하는 유일한 실루엣이었다.


이 자리는 내가 공지천에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코스로 산책할 때마다 스쳐 지나가던 장소였다. 사람 하나 없는 이 자리는 그저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풍경 속에 사람 하나가 들어서는 순간, 단숨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춘천 곳곳엔 수없이 많은 풍경들이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더해질 때 풍경은 문장이 되고 하루는 기록이 된다.


그 기록을 내가 남길 수 있다니. 얼마나 가슴이 쿵쾅대는 취미란 말인가.



| 촬영일 : 2025년 7월 24일 목요일 오후 7:50

| 촬영장소 : 봉황대 데크 전망대 (삼천동 469-1)


오늘의 산책 반환점, 봉황대 전망대에서 맞이한 하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떼가 하늘 무리 지어 걷고 있었다. 덩어리 진 구름들은 노을빛과 푸른빛 사이 어딘가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구름은 정말 잠깐이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겨우 6분. 양떼처럼 피어오른 구름은 빠르게 형체를 잃었고, 금세 흩어졌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내 등 뒤를 지나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선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주변을 가득 채운 건 또 하나 있었다. 귀청을 울리는 매미 소리. 쉼 없이 퍼붓는 그 울음이 이 풍경의 배경음악처럼 깔리면서 지금 이곳이 확실히 한여름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와씨, 하늘 미쳤다. 사진 좀 찍자."

"여보, 오늘 구름 진짜 예쁘다."

"어이구, 구름 좋다!"


누군가의 탄성이 하나둘 이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하늘이 모두에게 준비한 깜짝 선물과 그 선물을 함께 기뻐하는 낯선 사람들의 말이 오히려 내 마음의 행복까지 충전해 주는 듯했다. 오늘 하루의 피날레처럼, 정말 찬란했던 하늘.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본 행운의 산책자!



| 촬영일 : 2025년 7월 24일 목요일 오후 7:57

| 촬영장소 : 통일플러스센터 버스 정류장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용히 길을 돌아 나오던 순간이었다. 춘천에서만 볼 수 있는 옛 감성의 트롤리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멈춰 섰다. 잠시 후, 버스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내렸다. 나는 무심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 장면을 놓칠 새라 얼른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스피드' 뿐.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버스가 떠나기 전에, 할머니가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기 전에 담아내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7초 안팎.


셔터를 누른 순간, 나는 완벽한 춘천이라는 영화의 관객이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버스를 몰고 온 기사일 수도 있다. 방금 하차한 할머니일 수도 있다.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외국인 승객일 수도 있다. 혹은 버스 안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감독은 내가 해야지. 춘천이라는 이름으로 천만 영화를 만들겠다는 허섭쓰레기 같은 욕망과 상상력은 어쩌면 내 몫일 테니까!


※ 모두 실화입니다. 오늘 2시간의 산책을 그대로 나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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