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열두 걸음

춘천, 그 자체가 영화

by 춘천시민


자전거 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루


덥다, 더워. 그래도 오늘 할 일은 해야지. 우선, 펑크 난 자전거 바퀴부터 고치자. 다 고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하는 거야. 오늘은 어디로 갈까? 오, 하늘 좀 봐. 구름이 장관이잖아? 좋았어, 오늘 산책은 저 구름을 가장 멋지게 담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 오늘은 하늘이 방향을 정해주는 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지상의 열기가 얼굴을 후려쳤다. 다행히 오늘 아침, 자전거는 이미 수리점 앞 거 치대에 놓고 왔다. 이런 땡볕에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면, 그건 거의 더위한테 날 잡아 잡숴라는 뜻과 마찬가지였을 거다.


수리점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고무 타이어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구멍. 손바닥을 가까이 대보니 아주 미세하게 바람이 새어 나온다. 기왕 수리하는 김에 녹슨 체인도 가능할까요?라고 묻기가 무섭게 사장님은 기름을 칙- 뿌려주셨다.


정비는 순식간에 끝났다. 수리비는 15,000원. 자전거 수리는 처음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낮은 가격에 괜히 땡잡은 기분이 되었다.


결제를 마치고,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구름은 금세 모양을 바꾸니까,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 더 빨리, 더 힘차게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포인트.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 위. 숨이 조금 가쁘고, 땀이 줄줄 흘렀지만, 마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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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오후 5:53

| 촬영장소 :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 위


찰칵. 뷰파인터 속에 구름이 고스란히 담겼다. 오호~, 만족스럽다. 생각했던 그대로 멋지게 담겼다. 오늘도 역시 운이 좋군. 산책을 시작하자마자 멋진 한 장을 건졌으니!


오늘은 나만의 출렁다리


출렁다리까지 올라온 김에 반대쪽까지 건너 볼까?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전혀 다른 느낌일 테니까.


날이 덥다 못해 뜨거운 탓인지 출렁다리 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 더위에 출렁다리 위에 올라선 나야말로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정수리는 뜨거움에 푹 익은 지 오래고, 얼굴은 불에 그을린 듯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더위에 3년 묵은 김치처럼 푹 익어가는 나와는 달리, 출렁다리 위에 드리운 구름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아무도 없는 출렁다리 위를 혼자 걷는 기분은 꽤 특별했다. 혼자라서 그런 걸까? 오늘따라 출렁다리는 출렁거림 하나 없이 조용했다. 이 찜통더위 덕분에 사업비가 52억 원이나 되는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를 나 홀로 전세 낼 수 있다니! 이 순간만큼은 이 더위마저 선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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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오후 5:58

| 촬영장소 :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 위


여름을 낚는 자들


슬쩍 출렁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우! 이 뜨거운 날씨에도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의암호의 물이 달아올라 혹여 호수 자체가 매운탕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은 날씨. 그 한가운데서 묵묵히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을 마주하니, 그 열정에 감탄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면, 춘천은 낚시꾼들의 천국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도시다. 그 증거라면, 1970년 8월 16일에 춘천 공지천에서 열린 제1회 전국낚시대회가 있다. 55년이 지난 지금, 춘천이 여전히 전국 낚시꾼들의 성지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하나 분명한 건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악천후를 제외하곤 언제든 낚시꾼을 발견할 수 있는 도시. 그곳이 바로 춘천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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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오후 6:00

| 촬영장소 :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 위


공지천 강가, 초록빛으로 가득한 곳. 사진으로는 느껴지지 않겠지만, 햇살이 마치 뜨거운 쇠붙이처럼 내려 꽂히고 있었다. 기온은 35도를 육박했고, 나무 그늘을 몇 걸음만 벗어나도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걷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 여름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시간을 낚는 낚시꾼은 월요일 산책 중에 내가 본 가장 대단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옮긴 반대편 강가, 그늘진 나무 아래에도 낚시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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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오후 6:01

| 촬영장소 :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 위


뜨겁게 달아오른 돌계단 위에 묵묵히 서 있는 일.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저 사람은 지금 이 타오르는 여름을 낚시로 견뎌내고 있는 걸까. 도대체 낚시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깊고 단단하길래, 데일 듯한 이 계절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는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로 도망치듯 들어가기 바쁜 날, 스스로를 여름 한복판에 세워두는 용기. 생각할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35도를 넘나드는 이 날씨에 카메라를 들고 나선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열정이란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결기. 7월의 막바지에 만난 낚시꾼들은 내게 여름의 한 문장으로 남았다.


초록빛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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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오후 6:07

| 촬영장소 :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 아래


출렁다리에서 내려와 세워둔 자물쇠를 풀고, 자전거에 올랐다. 바람을 가르며 3분쯤 달렸을까? 어느 순간 시야에 초록빛 생명체 하나가 번쩍 스쳤다. 끼익-. 급브레이크를 잡은 내 눈앞, 자전거 핸들에 덜렁 걸어둔 와이어 자물쇠 위에 사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몸집은 작지만 시선은 맹수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치 펜으로 찍은 듯한 두 점의 검은 눈. 그 작은 점들이 나를 꿰뚫는 순간 움찔했다. 나는 얘보다 수십 년을 더 산 인간인데... 왜 내가 약자처럼 느껴질까. 카메라 가방을 허둥지둥 열어 카메라를 꺼냈다. 초점을 맞추는 동안에도 사마귀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이 오라는 듯 당랑권을 펼치고 있었다.


도발이었다. 그것도 확신에 찬 도발. 그 순간, 내 이마엔 땀이 아니라 굴욕이 맺혔다. 무서움과 웃음이 교차하던 한여름의 짧은 대치. 나는 이 작디작은 사마귀에게 가벼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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