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열여섯 걸음

춘천, 그 자체로 영화

by 춘천시민
아장아장, 춘천을 걷는 마음


2025년 6월, 브런치 스토리에 덜컥 작가로 승인이 됐다. 그 사실이 아직도 조금 얼떨떨하다. 글 실력이 한참 부족한데도 호기롭게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일수록 점점 실감하게 된다.


아, 나 정말 글 못 쓰는구나.

무슨 깡으로 글을 써보겠다고, 이곳에 둥지를 틀 생각을 했던 걸까?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찰 때가 많다. 춘천을 산책한다는 주제로 다양한 사진과 함께 맛깔스러운 글을 전해보겠다는 열정은 준비했지만, 그 열정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어설퍼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의 시선, 나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 멋진 글보다 진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혹시 내 글에 감정이 너무 넘치진 않을까? 너무 설명투인가? 진부한가? 글을 대충 쓰고 싶지 않아서 여기저기에서 끌어온 문장들이 오히려 글의 숨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의 나는 소설 한 줄 써보겠다고 골몰하던 20대의 나를 자주 떠올린다. 그때처럼 지금도 문장 앞에서 자꾸만 길을 잃는다. 완벽한 글을 꿈꾸며 문장에 허우적거리던 그 혼란스러운 젊음 속으로 다시 들어서게 될 줄이야...


하! 지! 만! 이제는 그런 식의 고민은 잠시 접어두자. 그러다간 몇 달이고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할 테니까. 지금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아장아장 걷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산책 중에 떠오른 생각들, 눈에 들어온 풍경, 나를 스치는 사람들의 뒷모습. 그런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짧은 메모처럼 남겨보자.


글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다면, 기록이라고 바꿔서 끄적이자. 춘천을 나만의 시선과 리듬으로 어루만지며 한 걸음씩 내디뎌보자. 그렇게 걷다 보면 천 걸음쯤 걸었을 땐,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저절로 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글 속에서 누군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춘천이 태어날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차근차근 산책을 기록해 본다.


고요 속의 아우성, 여름
버들1.jpg 2025년 8월 7일 목요일 17:25, 온의교와 호반교 사이


수양버들이 물가에 머리를 푹 숙이고 있다. 놀랍도록 거대한 수양버들은 보는 이의 시간을 붙잡는다. 잎사귀마다 초록빛이 번지고, 햇살은 그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물빛은 초록빛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가지마다 흔들리는 그림자가 물속으로 흘러내린다. 바람 한 점 없는 오후, 정적은 온통 뜨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줄기의 바람도 없이 세상은 멈춘 듯했지만 나무 그늘 아래에는 흰뺨검둥오리들이 줄지어 떠다니고 있었다. 흘러가는 물 위에 그려지는 작은 파문들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쩌면 푹푹 찌는 이 오후에 공지천에서 가장 부지런한 존재는 이 오리들일지도 모른다.


오리2.jpg 2025년 8월 7일 목요일 17:26, 온의교와 호반교 사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백, 수천 개의 초록이 서로 다른 음으로 반짝이는 여름의 찰랑거림. 감탄과 동시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곁에 아무도 없어서. 여러분, 여기 좀 보세요. 이 풍경 좀 같이 봐주세요, 하는 마음이 불쑥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오리3.jpg
가마우지.jpg
2025년 8월 7일 목요일 17:24, 온의교와 호반교 사이


어떻게 찍어야 지금 이 풍경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앉았다 일어섰다, 카메라 렌즈를 당겼다 밀었다 하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을 혼자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조금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 외로움을 한 스푼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한여름의 정점에 선 공지천의 수양버들과 오리들의 행진을 누군가 이 사진을 통해 함께 바라봐준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은 없을 것 같다.


세줄나비1.jpg 2025년 8월 7일 수요일 18:03, 온의동 금호타운 뒷길 산책로


비가 그친 오후, 능소화가 고요히 젖어 있었다. 꽃잎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투명한 구슬처럼 반짝였다. 그 순간, 별박이세줄나비 한 마리가 조용히 날아들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묘한 무늬를 지닌 이 나비는 마치 초대받은 손님처럼 능소화 곁에 내려앉았다. 초록 잎 위에 멈춰 선 그 날갯짓은 나의 시선조차 멈추게 했다.


꽃과 나비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 그 한 장면이 나를 순식간에 '8월, 춘천의 여름'이라는 동화 속으로 데려다 놓았다.


세줄나비2.jpg 2025년 8월 7일 수요일 18:04, 온의동 금호타운 뒷길 산책로


살다 보면, 전혀 관심 밖이던 것들에 마음이 닿는 순간이 찾아온다. 누가 알았을까. 별박이세줄나비, 별박이세줄나비... 내가 나비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몇 번이고 중얼거리게 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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