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그 자체가 영화
춘천의 왜가리
| 촬영일 : 2025년 7월 17일 목요일 오후 18:00
| 촬영장소 : 온의교와 호반교 사이, 공지천 좌안길에서
촉촉한 공기가 뺨을 스치고, 작은 물방울들이 우산 위로 조용히 리듬을 새긴다. 비 내리는 춘천의 오후, 나는 오늘도 익숙한 산책길에 올랐다. 온의교를 지나 호반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물 위를 걷는 왜가리를 만났다. 비에 젖은 깃털, 그 위로 번지는 회색빛 정적이 어딘가 모르게 다정했다. 왜가리는 조금만 거리를 좁혀도 바로 날아가버리는 편이기에 한참을 바라보다 조용히 셔터를 누른다.
비 오는 날에 마주치는 생명은 평소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의 소음이 물러가고, 오직 눈앞의 숨결만이 또렷해진다. 물 위를 걷는 왜가리 한 마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 괜히 기분이 말랑해진다.
오늘 산책도 참 잘했다.
| 촬영일 : 2025년 3월 30일 일요일 오후 16:53
| 촬영장소 : 온의교 아래
물 위에 길게 드리운 봄날의 오후, 그 잔잔한 풍경 한가운데서 만난 왜가리. 춘천의 온의교 아래, 햇살이 부드럽게 번지던 시간.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평범한 길 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이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사냥에 집중하고 있던 왜가리는 마치 풍경 전체를 완성하는 고요한 주인공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평소엔 늘 멀찍이서 지켜보던 존재였지만, 이날만큼은 유난히 가까이 다가와 주었다. 덕분에 날렵하게 뻗은 부리 끝부터 머리 뒤로 우아하게 흘러내리는 장식깃까지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장식깃이라는 건 생존에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살아가는 데 없어도 되는 깃.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오직 멋을 위해 존재하는 깃털. 바람결에 흩날리는 자연이 허락한 작은 사치.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나날 속에서, 그 장식깃 하나가 괜스레 부러워졌다.
| 촬영일 :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오후 17:46
| 촬영장소 : 공지천 하천 정원 (공지천 좌안길)
6월의 햇살이 잔잔했던 오후. 항상 물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왜가리가 처음으로 뭍에 올라와 있었다. 푸릇하게 살아있는 들풀 사이에 수양버들을 배경으로 고요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멀리서 왜가리를 발견하자마자 속으로 환호를 질렀더랬다. 나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 순간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얼마나 따뜻했는지. 누구라도 좋으니 지금 이 장면을 함께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왜가리는 사색에 잠긴 듯, 말없이 바람과 풀잎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고요를 깨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멀리서 셔터를 눌렀다.
날아가지 않게, 놀라지 않게.
언제나 도도하게 물 위를 걷더니, 육지 위의 산책자가 되어 초록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니. 수양버들의 싱그러움과 어우러진 왜가리는 자연이 선물한 작은 장면으로 앞으로도 오랜 시간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자연이 가끔 들려주는 이런 조용한 이야기. 그걸 듣게 되는 날엔, 산책길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
| 촬영일 : 2025년 6월 6일 금요일 오후 22:12
| 촬영장소 : 약사천
세상의 색이 어둠 속에 스며든 약사천 산책길, 어둠을 가르며 천천히 물 위를 걸어가는 왜가리. 발끝이 스치는 물살 위로, 가로등 불빛이 부서져 내려 마치 별빛이 흐르는 듯했다. 밤 산책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날, 그 순간, 왜가리는 조용히 말하듯 속삭였다.
밤에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워요.
빛과 왜가리, 물과 그림자가 한데 어우러진 짧은 장면. 가끔은 이렇게 어둠 속을 걷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춘천의 밤은 낮이 담을 수 없는 풍경들을 은밀히 펼쳐 보이니까.
| 촬영일 : 2025년 5월 27일 화요일 오후
| 촬영장소 : 공지천 산책로
아카시아 나뭇잎 너머로 살짝 고개만 내민 왜가리. 그 모습이 꼭, 숨어 있는 자신을 아무도 못 본다고 믿는 아이 같았다. 들킨 줄도 모른 채, 잎사귀 사이로 부리만 삐죽. 나 안 보이지? 하는 듯한 순진한 눈빛이 웃음을 자아낸다.
어쩌면 춘천은 누구나 조용히 숨을 수 있고, 또 그렇게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 촬영일 :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오후
| 촬영장소 : 약사천
비에 젖은 날들은 유독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마르지 않는다. 어쩌면 마르지 않는 건,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던 나였는지도 모른다. 카메라 렌즈 위로 비가 쏟아져도, 포기할 수 없는 풍경. 빗방울은 수면을 두드리고, 왜가리는 묵직한 구름 아래 빗줄기를 뚫고 날아오른다.
"비가 와도 괜찮아. 물에 젖은 날갯짓이라도, 얼마든지 멈추지 않고 날 수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도 그래. 마음이 눅눅한 날, 무언가에 자꾸만 젖어드는 날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볍게 떠오를 수 있어. 비에 젖은 날개를 털고 다시 오르듯,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날아오르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지금은 그저, 비와 함께 쉬어가도 좋아. 언젠가, 너의 하늘이 맑게 열릴 테니까."
| 촬영일 : 2025년 5월 9일 금요일 오후 17:01
| 촬영장소 : 호반교 아래
물기를 머금은 공기 속에 스며든 푸르른 냄새. 우산 위를 경쾌하게 두드리는 빗소리. 텅 빈 산책로를 가득 채운 나의 발소리와 귓가에 스치듯 머무는 이름 모를 새들의 속삭임. 그리고 비를 조용히 맞고 있는 왜가리. 날갯죽지에 천천히 내려앉는 빗방울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은 세상의 모든 소란에서 한 발짝 물러난 것처럼 느껴졌다.
빗소리도, 새소리도, 내 발소리도... 모두 한 장면 속 배경음처럼, 이날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했다. 세상도, 나도, 왜가리도 비 오는 날의 짙은 감성에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에.
| 촬영일 : 2025년 1월 27일 월요일 오후 16:09
| 촬영장소 : 우두동 마장달빛교 위에서 촬영
눈발이 흩날리던 겨울 오후, 소양강 위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르는 왜가리. 입에는 갓 잡은 물고기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초점이 흐릿해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 비록 사진은 완벽하지 않아도 그날의 바람과 살갗을 파고들던 차가운 공기의 감촉, 눈송이 아래 사냥에 성공한 단단한 생명력은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고 보니 겨울에 찍은 유일한 왜가리 사진인 듯하다. 다시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날이 온다면, 나는 한번 더 왜가리를 찾아 나설 예정이다. 그때도 왜가리를 또 만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