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그 자체가 영화
춘천을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자연과 건축의 절묘한 균형이다. 산과 강이 감싸고 있는 이 도시에는 유리창이 반짝이는 현대 건축물도 있고, 벽돌 하나하나에 세월이 밴 오래된 집들도 있다. 그 둘이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모습은, 언뜻 보면 조용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묵직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건물이라는 것은 단지 사람이 드나드는 구조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삶, 꿈, 고민, 기쁨,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은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3층 건물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뭉칫돈으로 계약한 사무실이었을 수 있고, 골목 어귀의 오래된 가게는 누군가가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셔터를 올리던 생활의 시작점이었을 수도 있다.
산책을 하며 그런 건물들을 자주 바라본다. 빛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유리 외벽, 건물 사이로 가늘게 보이는 하늘의 파란 틈,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물드는 벽면의 담쟁이덩굴. 이 모든 것이 사진처럼 내 마음속에 저장된다. 그날의 공기, 빛, 소리와 함께.
춘천의 건물들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듯하다. 자신도 춘천의 일부이며, 지금도 누군가의 시간을 품고 있다는 속삭임이. 그 소리를 들으려면 천천히 걸어야 한다. 급하게 지나쳐서는 안 되는, 그런 풍경이 춘천에 너무도 많다.
| 촬영일 : 2025년 3월 7일 금요일 오후 5:08
| 촬영장소 :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 위
춘천 온의 롯데캐슬 스카이클래스. 2015년에 준공된 이 건물은 춘천의 스카이라인을 더욱 웅장하게 만드는 랜드마크 중 하나다. 출렁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특별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야는 시원하고, 바람에 따라 살짝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춘천의 모습은 또 다른 감성을 더한다. 특히 해질 무렵, 건물 외벽에 주홍빛 노을이 물들면 춘천은 한층 더 따뜻한 분위기로 변한다.
햇살이 기울어가는 시간, 차가운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도 그 순간만큼은 따뜻한 빛을 머금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도시의 평온한 공기 속에 녹아드는 풍경. 롯데캐슬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신성근화미소지움 아파트, 우측에는 금호타운과 보배 아파트가 자리한다. 공지천 보트장까지 함께 내려다볼 수 있는 출렁다리를 춘천의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온전히 담을 수 있어 자주 찾게 된다.
공지천 보트장은 춘천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공지천에 위치한 수상 레저 시설이다. 공지천은 깨끗하고 수려한 자연 공간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종합 휴양지로 주위에는 조각공원과 보트장, 야외공연장, 인라인 스케이트장, 출렁다리 등이 자리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공지천 오리 보트는 춘천의 필수 데이트 코스로 꼽혔다. 현재도 보트장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여전히 인기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 촬영일 : 2025년 7월 18일 금요일 오후 19:37
| 촬영장소 : 춘천사이로248 출렁다리 위
일기예보엔 21시부터 비가 잡혀 있었다. 19시 37분, 이미 공기는 충분히 젖어 있었다. 바람은 습기를 머금은 채 살갗을 스치고, 하늘은 무거운 푸름을 드리운 채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왼편으로는 오래된 신성근화미소지움 아파트, 오른편으로는 높고 날카로운 온의롯데캐슬. 건물 사이로 겹겹이 흐르는 구름은 마치 숨죽인 강물처럼 산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은 긴장 속에서도 풍경은 오히려 고요했다. 나는 우산을 옆구리에 끼고 출렁다리 위에 섰다. 발밑이 출렁이는 그 미묘한 불안정함 속에서 셔터를 누르는 감각은 여전히 낯설고 흥미롭다. 카메라를 든 손끝은 흔들렸지만, 그 순간의 바람과 빛은 정확히 프레임 안에 담겼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때의 푸르스름한 공기와 바람이 지금도 귓가에 머무는 것 같다. 비가 내리기 전의 정적, 도시와 자연 사이의 숨, 그 모든 순간이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출렁인다.
| 촬영일 :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오후
| 촬영장소 : 춘천MBC 의암호 전망대
4월 23일 오후, 봄의 막바지에 담긴 풍경. 연분홍 벚꽃이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 자리엔 연둣빛 새잎들이 가지마다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벚꽃이 환희라면, 지금의 초록은 안도. 화려함이 지나간 자리를 채우는 건 결국 잔잔한 생기다.
자연과 도시가 절묘하게 겹쳐지는 풍경. 도시의 성처럼 솟은 높은 아파트와 푸른 산등성이, 그리고 하늘에 길게 나 있는 구름 한 줄기. 마치 손가락으로 조용히 그어놓은 쉼표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자취같기도 하다. 힐링이 뭐 별거겠어. 누군가에겐 고요한 호숫가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초록이 짙어진 이 풍경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찍을 수 있어 럭키
| 촬영일 : 2025년 7월 17일 목요일 오후 17:51
| 촬영장소 : 온의교 위
카메라 렌즈에 빗방울이 튀지 않도록 우산대를 겨드랑이에 끼고 온의교 끄트머리에 섰다. 정면엔 1993년 준공되어 올해로 33년차를 맞는 럭키아파트가 담담히 서 있고, 오른편엔 2008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철거된 춘천 종합운동장 자리에 2010년에 들어선 롯데마트의 둥근 외벽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는 그 종합운동장 자리에서 돈을 내고 롤러스케이트를 탔던 수백 명의 어린이들 중 하나였다. 넘어져도 마냥 환하게 웃던 그날의 기억이, 오늘의 비에 젖은 아스팔트 냄새와 겹쳐 불쑥 떠오른다. 빨간 신호등 아래 자동차들이 물살을 일으키듯 지나가고, 풍물시장 아치와 젖은 가로수, 층층이 정갈하게 쌓인 아파트 창들이 나지막이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사진은 지금 이 순간을 정지시켜 담고 있지만, 그 안의 시간은 계속 흐를 테지. 계절이 몇 번쯤 지나면 이 풍경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까. 30년 뒤, 나는 다시 이 자리에 서서 같은 구도로 셔터를 누를 수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30년 전엔, 여기가 이런 풍경이었다고.
| 촬영일 : 2025년 7월 15일 화요일 오후 18:13
| 촬영장소 : 봉황대 산책로, 출렁다리 위
의암호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언덕 위로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 하나 있다. 흐린 날씨에도 그 존재감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는다. 바로 춘천 MBC의 삼천동 사옥. 1983년 11월 11일에 준공되었지만, 그보다 앞선 1982년 12월 30일부터 이곳에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언덕 위에 우뚝 선채, 수십 년 동안 춘천의 계절을 보고 들으며 조용히 자리를 지켜온 건물이다.
앞에서 보면 세월의 흐름이 투명하게 비치는 유리창과 위로 뻗은 송출 안테나가 절제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뒤편에서 본 풍경은 또 다르다. 짙은 초록 숲과 겹겹이 포개진 산등성이,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배. 도심과 자연, 방송국과 오리배가 함께 있는 풍경이라니. 춘천의 고유한 결이 느껴진다.
춘천시는 앞으로 5년 안에 이 의암호 일대를 체류형 초대형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단순한 당일치기 여행지가 아니라 머무름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26개 사업이 추진 중이고, 유람선과 수상택시는 물론, 달밤의 호수를 유영하는 문보트까지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의 풍경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앞으로 펼쳐질 춘천의 미래도 꽤나 기대된다. 언젠가 이 사진 속 같은 자리에서 다시 셔터를 누르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 촬영일 : 2025년 7월 15일 화요일 오후 17:44
| 촬영장소 : 온의동 마내1길
마내1길에서 내려다본 춘천의 시내는 한 폭의 입체적인 지도 같았다. 초록의 나무들 너머, 겹겹이 들어선 건물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어 있었고, 그 뒤편으로 펼쳐진 산등성이들이 도시에 깊이를 더한다. 구름은 낮게 깔려 있었고, 햇빛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전거 페달을 밟아 올라온 길이었기에 숨은 가빴지만, 이 풍경 앞에선 잠시 숨을 멈추게 되었다.
마내1길. 온의동 중심지 서편, 작은 골짜기의 이름에서 비롯된 길 위. 높고 가파른 언덕 끝에 위치한 이 길은 춘천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다.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 위로 차들이 빼곡히 흐르고, 퇴직연금도 역시!라는 문구가 적힌 농협 건물의 외벽은 마치 한 시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듯 또렷하게 시선을 끈다. 고층 아파트 단지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듯 줄지어 서 있고, 낮은 주택들과 오래된 건물들이 시간을 품고 있다.
사진을 찍을 땐 구름이 너무 두터워 아쉬움이 컸지만, 흐린 날씨 덕분에 오히려 도시의 결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빛이 적을수록 색은 무채색에 가까워지지만, 그 안에는 뚜렷한 온도가 깃든다. 언젠가 하늘이 선명하게 열리는 날, 다시 이곳에 올라 같은 구도를 담고 싶다. 그땐 다른 빛, 다른 구름, 다른 마음으로 춘천을 마주하게 되겠지.
| 촬영일 : 2025년 7월 10일 목요일 오후 19:19
| 촬영장소 : 하중도
두 장의 사진 속 풍경은 말 그대로 언밸런스의 미학이다. 짙푸른 녹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단정하게 겹겹이 쌓인 초록의 결들 사이, 무심한 듯 불쑥 솟아오른 낯선 건물 하나.
처음엔 순간적으로 산속에 웬 건물? 하는 마음에 셔터를 눌렀는데,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 보니 그 이름하여 비발디 모텔. 그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비발디? 바로크 시대의 그 비발디? 사계라도 틀어야 할 것 같은 고상한 이름을 단 건물이 다소곳하게 숲 한가운데에 자리를 틀고 있다니.
건물 외벽에 쓰여 있는 Vivaldi라는 이름은 마치 나 여기 있어! 하고 손을 흔드는 듯 선명했다. 건물의 벽면은 세월의 흔적이 녹슨 듯 무심하다. 벽면에 모텔이라는 간판이 소심하게 덧붙어 있는데, 그 간극이 묘하게 웃기다. 의암호가 출렁이고, 산등성이가 감싸 안은 천연 요새 한가운데. 누가 봐도 이곳은 고즈넉한 별장 분위기인데, 모텔이었다니.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놓인 건물 하나가 이렇게 웃음보를 건드릴 줄은 몰랐다. 그래서 사진은 언제나 재밌고, 예측불가인 춘천이라 더더욱 사랑스러운 건지도!
| 촬영일 : 2025년 4월 10일 목요일 오후 18:30
| 촬영장소 : 하중도
하중도에서 바라본 근화동의 봄은 그야말로 한 편의 따스한 동화였다. 의암호 너머로 펼쳐진 벚꽃길. 흐드러지게 피어난 연분홍 꽃잎들 아래로 걷는 사람들. 그 위로는 단정하게 늘어선 아파트와 빌딩들. 특별한 건물도, 화려한 조형도 없었지만 그날따라 모든 건물들이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여기에서 오래 살아왔어요."
"지금 막 누군가 퇴근해서 창문을 열었답니다."
"오늘은 저희 옥상에서 벚꽃이 정말 잘 보이죠?"
그리고 그 모든 풍경 위엔 산이 웅크린 채 모든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있었다. 인간들의 작고 소란한 하루를 넉넉히 품어주는 산. 그 품 안에서 봄이란 얼마나 다정하고도 관대하며, 사소한 것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계절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 풍경과 건물 이야기는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