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여섯 걸음

춘천, 그 자체가 영화

by 춘천시민
춘천, 그리고 나의 산책 이야기


춘천은 사계절 내내 놀라울 만큼 다정한 얼굴을 가진 도시다. 겨울엔 눈 덮인 산맥이 고요를 품고, 봄엔 물안개 너머 연둣빛이 번진다. 여름엔 짙푸른 강이 햇살을 품고 흐르며, 가을엔 울긋불긋한 낙엽이 골목길을 부드럽게 감싼다.


나는 그 춘천을 매일 걷는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카메라 하나 메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놓이고 풍경이 말을 건다. 내 산책의 시간의 늘 다르지만, 끝은 언제나 비슷하다.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것. 공지천 둔치에 앉아 물비늘을 바라보다 보면, 오늘 하루도 참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명동거리에서 바쁘게 스쳐가는 사람들 틈에서 셔터를 누를 때면,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장면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때론 햇살 가득한 골목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오늘도 잘 걷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게 내가 춘천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춘천은 여행지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매일이 무대이고, 골목은 장면이며, 풍경은 대사이다.


춘천이라는 도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특별한 순간을 만날 준비는 되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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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1년 4월 6일 화요일 오전 7:05

| 촬영장소 : 공지천교 위 (삼천동 469-1) / 출렁다리가 생기기 전


춘천에서 가장 자주 걷는 길이 있다면, 단연 공지천과 의암호 주변이다. 이곳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분홍빛 물결이 흐른다. 4월의 어느 날, 아침 7시 5분. 춘천은 마치 시간을 잠시 멈춘 듯했다. 햇살은 아직 낮게 깔려 있었고, 호수 위에는 바람조차 스치지 않았다. 물가를 따라 벚꽃이 만개하고, 보트장과 오리배들은 조용히 그 풍경 속에 머물렀다. 사진을 찍는 손끝에까지 고요가 번져오는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단순히 예쁜 장면을 남기는 일이 아니다. 그날의 공기, 빛, 그리고 나와 마주친 풍경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일이다. 때로는 사진 속에서 감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천천히 손을 맞잡고 걷는 노부부를 찍었을 때는, 말 없는 다정함이 화면 가득 전해진다. 비 오는 날, 뛰어가는 학생들을 담았을 땐 젊음의 속도와 생동감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같은 길, 같은 호숫가라도 그날의 하늘빛, 사람들의 발걸음, 나의 마음은 매번 조금씩 다르기에.


비 오는 저녁, 우산 아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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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7월 14일 월요일 오후 7:51

| 촬영장소 : 온의교 위 (온의동 1-9)


빗방울이 부드럽게 떨어지는 저녁, 나는 우산 아래에서 마주한 한 장면 앞에 걸음을 멈췄다. 유모차를 밀고 서 있는 두 사람.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비에 젖은 도로 위로 퍼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그 불빛 속에 조용히 반짝이는 실루엣.


이 사진은 소리 없는 대화였다. 비와 함께 묻어나는 삶의 온도, 어딘가로 향하는 걸음 속에 담긴 가족이라는 이름, 그 모든 것이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이런 순간을 만나기 위해 춘천을 걷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우산을 쓴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그저 함께 걷는 사람들. 그들의 아주 작은 몸짓 하나가 풍경을 완성한다. 그러니 언젠가, 당신이 춘천에서 산책을 하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카메라 렌즈와 마주친다면 아마도 그건 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낸 그 조용한 일상의 한 장면이 나의 사진 속, 이 도시의 기록 속에 작고 따뜻한 이야기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행복하다. 춘천의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이. 그래서 내일도 걸으련다. 이 길 끝에서 어떤 풍경과 어떤 마음을 마주하게 될지 기대하면서.


춘천역, 경춘선의 끝에서 마주하는 도시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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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4년 12월 10일 화요일 오후 4:36

| 촬영장소 : 카페 리버레인 루프탑 (근화동 532-8)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도시지만, 그 속 어딘가 시골역의 정취가 스며 있다. 선로 위를 따라 기차가 천천히 다가오고, 역사 위로는 따스한 빛이 부드럽게 번진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와 뒤편의 산줄기는 춘천이라는 도시가 간직한 사람 사는 곳의 진심을 전한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이 역은 많은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별과 만남, 그리움과 설렘,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들의 짐 가득한 손.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닮아 있는 건 아마도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끝이자 누군가에게는 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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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3월 7일 금요일 오후 5:33

| 촬영장소 : 춘천시 문화광장숲 근처 (근화동 3-32)


춘천역은 경춘선의 종착역이자, 춘천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1939년 개통된 이 역은 6.25 한국전쟁 중 소실되었다가 1958년에 다시 완공되며 역사 속 굴곡을 견뎌냈다. 이후 2005년부터 5년간 전철화 공사가 진행되었고, 2010년부터는 경춘선 ITX 청춘열차가 운행되며 더욱 편리하게 서울과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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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4월 13일 일요일 오후 3:32

| 촬영장소 : 평화의 종 (온의산 산43-1)


평화의 종각에 올라 멀리서 내려다본 춘천역은 작은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그 주의를 감싸는 산과 물, 아파트 단지들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감각을 전해주었다. 건물 너머로 물빛과 안개가 뒤섞이며 도시의 풍경은 몽환적인 색감으로 물들었다.


빠르게 움직이던 마음도, 이 풍경 앞에선 잠시 일상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듯하다. 춘천은 늘 그렇다. 지나쳐 가는 사람에겐 풍경이지만,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익숙한 하루다. 그 익숙함 속에서 나는 오늘도 셔터를 누른다. 도시의 속살을 담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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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4년 12월 5일 목요일 오후 6:22

| 촬영장소 : 춘천역 앞 (공지로 591)


겨울밤, 도시의 온기는 어둠 속 조명에서 비롯된다. 한 해의 끝자락, 춘천역 앞에 세워진 커다란 트리의 불빛은 누군가의 기다림을 위로하듯 반짝인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짧은 인사 속엔 수없이 건너간 인연과 추억, 그리고 또다시 시작될 이야기가 담긴다.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반짝이는 트리 앞에서 누구랄 것 없이 잠시 멈추고,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겨울의 공기는 차갑지만, 역 앞 풍경은 유난히 따뜻하다. 1939년 개통된 이 오래된 역은 전쟁과 복구, 전철화와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늘 이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이들의 시간 속 배경이 되어준다. 춘천역의 겨울밤은 그렇게 또 하나의 장면이 된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개봉되는 어느 겨울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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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17년 7월 22일 오후 18:23 (약 8년 전)


기차는 사람들을 태우고 떠나지만, 역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물기를 머금은 아스팔트, 젖은 옷깃 너머로 번지는 웃음, 그 모든 것이 춘천이라는 도시의 체온을 만들어냈던 어느 여름 날의 풍경. 춘천역이 품고 있는 삶의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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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일 : 2025년 6월 27일 금요일 오후 7:36

| 촬영장소 : 평화의 종 (온의산 산43-1)


해가 지고, 춘천이 천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 춘천의 저녁이 가진 고요함 속에서 기차는 여전히 도착하고 떠난다.철도와 도시, 자연과 계절이 만들어낸 완벽한 균형. 기차가 달리는 선로 옆으로 수많은 계절의 이야기가 함께 달려가는 것만 같다. 도시의 풍경이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 서면 알게 된다. 역사는 늘 제자리에 있지만, 그 주변의 계절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 안에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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