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의 부엌> 속 바질 스파게티

삶을 구원해 줄 레시피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by 김미양

“비둘기는 굽는 게 좋아요. 그윽한 맛이 있죠.

그물버섯과 송로 같은 제철 버섯으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를 곁들이면 아주 잘 어울려요.”


상담실 소파에 드러누워 비둘기 조리법을 설명하는 여자가 있다.

속마음을 털어놓기를 기다리는 상담사의 바람이 무색하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오직 음식 이야기뿐이다.

그녀는 레스토랑 손님들에게 최고의 음식을 내놓기 위해 애쓰는 요리사다.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라는 양 심리상담사의 책상 위에 프랑스 요리를 몇 접시나 늘어놓고, 인사 한번 나눈 적 없는 아랫집 남자에게도 불쑥 찾아가 식사를 권한다. 주방일이 천직인 것 같은 그녀는 그런데 어째서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을까?


마사의 부엌 포스터1.jpg 영화 <마사의 부엌> Bella Martha (2001)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Martha. 한국에 개봉하면서는 <마사의 부엌>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독일식 발음은 ‘마르다’, ‘마르타’에 가깝다.

한편, 마르타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루카 복음에는 예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마르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귀한 손님을 모시기 위해 시중을 들고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해진 그녀와 달리 동생 마리아는 거실에서 예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만 있더란다. 이에 마르타는 마리아도 부엌일을 거들 수 있게 해달라고 예수에게 청한다. 그러자 예수는 뜻밖의 답을 내놓는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 성경 속 이야기는 몇몇 화가들의 상상을 거치면서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중 한 작품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다.

N-1375-00-000071-wpu.jpg Diego Velázquez.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c. 1618.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나무 테이블 위에는 마늘과 생선, 붉은 고추와 달걀이 놓여 있다. 마르타는 마늘을 빻거나 무언가를 섞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뒤에서 한 여자가 손가락질을 하며 그녀를 재촉하고 다그친다. 그 반대편, 우측 상단의 작은 창 너머에선 마리아가 예수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마르타는 얼굴을 찌푸린 채 정면을 응시한다. 그 순간, 그림 바깥의 ‘나’(감상자)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 속에 담긴 무언의 구조 신호를 감지하게 된다.


영화 <마사의 부엌> 속 마르타 역시 주방에서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누군가를 먹이는 데에 골몰하는 인물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먹일 줄 모른다. 레스토랑에선 매일 끼니를 거르면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정성껏 음식을 차려 식탁에 앉고도 이내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서 놓아 버린다. 식탁에 홀로 앉은 그녀의 표정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사의 부엌 스틸컷2.jpg 영화 <마사의 부엌> 스틸컷

도시에서 제일가는 요리사로 자리 잡기 위해 혹독한 노력을 해 오는 동안 서서히 그녀의 마음속에는 서서히 무언가가 결여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제대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친언니를 떠나보내게 된다. 조카를 맡아야 할 책임이 있기에 주저앉지도 못하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그녀. 수조에 물이 차오르듯 우울은 서서히 그녀를 잠식해 나간다.


영화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낮은 채도는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하는 듯하다. 자신의 요리에 불평을 쏟아내는 손님과는 언쟁도 불사하지만 우는 얼굴은 차라리 감춰버리는 게 익숙한 마르타. 그녀가 선 주방은 뿌연 안개가 낀 무채색에 가깝다. 따스한 노란빛 감도는 홀은 그녀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녀가 내면의 감정을 토해낼 수 있는 건 어둡고 차가운 푸른빛을 띠는 워크인 냉장고(walk-in, 창고처럼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진 커다란 냉장고) 안에서뿐이다.


바닷가재는 속부터 천천히 제 살을 먹어요.

그래서 바닷가재를 살 땐 무게를 확인해야 하죠.

보기보다 가벼우면… 수조 안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뜻이에요.”


워크인 냉장고 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눈물을 닦아내는 마르타의 모습이 꼭 네모난 수조 안에 갇힌 바닷가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랍스터가 키틴질의 단단한 껍질로 무장하고 있듯이, 마르타에게는 새하얀 조리복이 갑옷이다. 혼란과 슬픔은 감춰두고, 허리에 앞치마를 둘러 매듭을 꽉 묶은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조카 ‘리나’를 먹이는 일. 한순간에 엄마를 잃은 충격으로 리나는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식사를 거부한다. 몇 도씨 오븐에서 몇 분. 이런 고기에는 저런 소스. 심지어 돼지 방광의 조리법까지 숙지하고 있는, 모든 요리에 있어서 완벽한 해답을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리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식을 만드는 건 풀기 힘든 숙제가 되었다.


‘리나 먹이기’ 미션은 뜻밖에도 새로운 동료 마리오가 풀어냈다. 그는 독일인 마르타와는 정반대 성향의 이탈리아 출신 요리사다.

보모를 구하지 못한 마르타가 리나를 데리고 출근한 날, 마리오는 리나에게 초록빛 바질 한 다발을 내민다.

“자, 냄새 맡아 봐.”

그리고는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한 접시를 들고 와 리나 옆에 앉는다. 잘게 썬 바질잎과 파마산 치즈를 스파게티 위에 듬뿍 뿌린 후, 포크로 면발을 감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리나가 보든 말든, 아니 꼭 이것 보라는 듯이 온몸을 흔들며 외치는 말.

맛있다! 맛있어!


마리오가 화구 앞으로 가면서 리나에게 접시를 맡기자, 잠시 눈치를 살피던 리나는 스파게티 면발을 입에 한가득 집어넣는다. 주방 조리대에 걸터앉아 왼손으로는 접시를 끌어안고 오른손에 쥔 포크로는 몇 가닥의 면발을 들어 올리며 생의 의지도 함께 끌어올린다. 아니, 정작 자신은 생의 의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을 것이다. 신선한 바질 향이 코를 자극하고,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눈앞에 놓인 음식을 보고 침이 꿀꺽 넘어가는 순간, 리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였을 뿐이다.


이후 소꿉놀이하듯 주방을 들락거리며 차츰 생기를 되찾은 리나는 마리오를 이모의 집으로 초대한다. 마르타는 주방 밖으로 밀려나고, 마리오와 리나 둘이 준비하는 성찬이다. 마침내 셋이 모여 앉은 곳은 거실 카펫 위. 왜 식탁에서 먹지 않느냐고 의아해하는 마르타에게 리나는 답한다.

“캠핑하는데 식탁이 어딨어!”


마사의 부엌 스틸컷1.jpg 영하 <마사의 부엌> 스틸컷


바질페스토에 버무려진 스파게티가 바닥에 냄비째 놓여 있다. 노릇하게 구운 가지와 애호박, 빨간 피망. 꽃잎처럼 얇은 핑크빛 생햄과 굵은 아스파라거스, 슬라이스한 빵과 화이트 와인. 카메라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각도로 이 음식들을 보여준다. 누군가 포크로 스파게티 면발을 빠르게 감고 있다. 그 행동을 따라 또 다른 이가 천천히 스파게티 면발을 들어 올린다. 바로 다음 쇼트에서 보여주는 것은 사람의 얼굴.

여태껏 레스토랑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줄 땐 카메라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한 발 떨어진 곳에서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 식사 장면은 확연히 다르다. 음식 쇼트와 인물의 클로즈업 쇼트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나(관객)를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고개 숙여 맨손으로 빵 하나 집고, 고개 들어 앞에 앉은 이와 눈을 마주치고. 맛의 기쁨이 차오른 입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고개 숙여 포크로 스파게티 면발을 둘둘 말아 올리고.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이 셋이 아니라 나까지 포함해 넷이었나 싶은 기분이 드는 이 순간, 파올로 콘테의 <Via Con Me>가 흘러나오면서 분위기를 한껏 더 끌어올린다. 경쾌한 템포의 음악과 함께 반복되는 가사. “It’s wonderful. It’s wonderful. It’s wonderful. …”


식탁도 접시도 없이 바닥 카펫 위에 차려진 이 만찬은, 앞서 마르타가 병실에 각종 식기를 챙겨 가고 접시 가장자리에 묻은 작은 얼룩도 냅킨으로 꼼꼼히 닦아 리나에게 내밀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긴장을 풀고 조금 흐트러진 채로 함께 나누는 식사가 생각보다 더 즐거웠던 것일까. 늦은 밤, 부엌 냉장고 문을 열고 티라미수를 꺼내 한입 떠먹는 마르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인다.

주방 조리대에 걸터앉아 먹는 스파게티가 리나를 구원했듯이, 거실 바닥에 앉아 먹는 스파게티는 마르타를 구원했다. 주저앉고 싶은 현실을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마르타는, 자신과 함께 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고 떠드는 사람들 덕분에 생의 바닥에서 끌어올려졌다.

소식을 몰랐던 리나의 생부를 찾게 되면서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되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르타와 리나, 마리오 세 사람은 끈끈한 식구가 되어 서로의 곁에 머문다.




마르타의 부엌이 아닌 상담실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다시 상담실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이번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디저트 접시를 손에 들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마르타와 상담사.

“뭔가 부족해요.”

“하지만 당신이 말한 대로 만들었어요.

레시피대로 정확히 차례 차례. 당신이 써준 그대로요.”

마르타가 아니라 상담사가 조언을 구하고 있다. 레시피대로 했지만 어째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상담사는 도통 알 수 없다는 듯이 울상을 짓지만, 마르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세례명으로 쓰이는 마르타는 요리사, 주부, 집사를 수호하는 성녀라고 한다.

영화 <마사의 부엌>은 ‘이것저것 걱정하느라 행복을 잃어가던 성경 속 마르타’가 ‘주방을 수호하는 성녀’가 되기까지, 그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주는 한 편의 프리퀄 같다. 타인을 먹이느라 텅 비어버린 마음을 어떻게 다시 채울 수 있었는지,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마르타는 자신이 경험한 삶의 레시피를 전한다.

마르타는 요리하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회피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눈을 맞추며 식사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재료의 향을 맡고, 혀끝의 감각에 집중해 음식을 맛보고, 대화를 나누며 그 순간의 기억을 공유하는 기쁨을 깨달았다. 그녀는 좋은 쪽을 택하였으니, 다신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이들이여, 유명 레스토랑에서 허리 꼿꼿이 세우고 앉아 맛보는 푸아그라와 송로 버섯만이 우리를 위로하지는 않는다.

엄마가 손으로 양념을 비빌 때 옆에서 입을 아 벌리고 받아먹는 비빔국수. 이삿날 바닥에 신문지 깔고 앉아 먹는 짜장면. 이렇게 먹으면 코팅이 벗겨지지, 중얼거리면서도 프라이팬째 놓고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 먹는 김치볶음밥. 그 소박한 식사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격식 차리지 않는 편안한 식사.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마주 보던 좋은 사람들. 기꺼이 한 입을 내어주는 진심 어린 애정이 그곳에 있었다.


이제 부엌으로 가 한 다발의 국수를 삶아보자. 혹은 라면이라도 좋다.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를 때, 이 음식을 먹일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연인, 가족, 혹은 나 자신. 그 소중한 사람과 한 가닥의 추억을 공유하고, 하루를 또 이어 나가자. 우리의 아름다운 마르타(Bella Martha)가 부엌에서 당신을 수호할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미소를 입가에 가득 띄운 채로.


Bella Martha 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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