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복잡계 문제 풀기
얼음을 끓일 수는 없는거잖아요
회사가 커지고, 인원이 많아지고, 오퍼레이션이 복잡해지면 돌연 복잡적응계적 문제로 변해버립니다. 이 부분을 건드리면 저 쪽이 영향받고, 이렇게 정책을 펼치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구성원이 반응하고, 방향을 동으로 잡았는데 항로는 북으로 새고..
이유가 있습니다. 회사의 문제는 세가지 층위가 있기 때문이죠. 단순형(simple) 문제, 난해형(complicated) 문제, 복잡한(complex) 문제.
첫째, 단순한 문제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입니다. 고객이 불만을 요청하고 응대하고, 재고가 모자라서 추가 발주를 하고, 차량 배차가 늦어져 여유 차량으로 대체하고.. 대개 문제의 해결책이 간단하고 익숙하며 기본적 트레이닝을 받은 직원이면 해결가능합니다.
둘째, 난해형 문제는 난이도만 높은 문제입니다. 즉 간단한 교육과 숙지로 해결하긴 어렵지만, 적절한 역량과 경험이 있으면 해결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죠. 틀어진 재무상태표의 자산항목을 갱신하기 위해, 창고를 실사하고, 불용 재고를 골라내고, 감가상각 및 내구 연한을 재검토하고 경제적 가치를 재산정해서 재무상태표를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또는 고객 DB를 바탕으로, 우리 상품에 애호도가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비활성화 된 사람들 중, 신제품을 소개하여 부활시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리스트를 만드는 경우도 그러합니다. (실제 판매량까지 염두하면 아래의 복잡한 카테고리가 됩니다. 리스팅까지만을 목표하면 난해에서 그칩니다) 전문가나 경험, 지식, 역량이 필요하지만 절차와 방법이 옳다면 높은 확률로 해결되는 문제이기도 하죠.
셋째인 복잡한 문제는 가장 어렵습니다. 해법이 쉽게 안보이고, 확신도 떨어집니다. 게다가 문제를 푸는 도중에 문제 자체가 변하고, 변수는 당연히 변하고 상수라 생각한 것마저 변하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 확률이 계속 변화합니다. 대개, 시간 갈수록 해결 확률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복잡계 문제를 푸는게, 경영하는 사람의 끝판왕 기술이지요.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일반화된 방법론이 없습니다. 내가 몸담은 시스템을 최대한 이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빠르게 실행해보고 빠르게 피드백을 얻어 다시 인풋을 조절하는게 답이죠. 그래서 표준 법칙이나 왕도가 없고 각자의 개성과 상황과 이력따라 해결책이 나옵니다. 수많은 경영 이론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죠. 누군가는 전략으로 접근하고, 누구는 조직행동론으로 풀고, 누군 규칙으로 풀고, 누군 인센티브나 모티베이션에서 답을 찾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한가지 광범위한 시작점은 있습니다. 지렛점(leverage point)를 찾는 거죠. 모든 변수 중 가중치가 높은 변수, 민감도의 상당 부분을 감당하는 지점에 변경을 가하고 지켜보며 대응합니다.
서두의 말은 이런 과정에서 제가 한 말입니다. 팀장 A, B, C, D는 각자 문제의 원인을 알파, 베타, 감마, 델타라고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은 다 일리 있고 근거도 있는 진단입니다. 그렇다고 알파에서 감마까지 동시에 고치면 될까요? 일단 실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인력과 시간, 돈이 다 제약이 있어서죠. 만일, 그런 자원의 제약이 없다면요. 그래도 안됩니다. 대개 동시에 고친다고 고쳐지는게 아니라 새로운 엡실론, 감마, 람다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그중 예컨대 '베타'를 먼저 확실히 잡자고 주장합니다. 다들 갸우뚱하며 왜 B의 편을 드는지 의아해합니다. 전 B의 편을 드는게 아닙니다. 그냥 베타가 레버리지 포인트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보의 흐름상 허브이고, 베타의 취약성이 전체에 미치는 여파가 크다고 짚었습니다. 인터뷰로 확인해도, 여러 부서에서 공통적으로 베타의 둔함을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저라고 100% 확신은 없지만, 최소한 베타를 냅두면 아무리 알파나 델타를 고쳐도 시스템은 안 고쳐질거라고 예상 합니다. 지렛점인 베타가 에러와 노이즈를 지속적으로 시스템에 피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이런 문제의 연관관계와 특징을 설명하고 이렇게 마무리지었습니다.
얼음을 갑자기 끓여서 수증기를 만들수는 없습니다.
우선 물이 되게 만들어야죠.
마음 급하다고 얼음을 끓이려고 하지 마세요.
얼음에 열 가하는 비유는 상전이(phase shift)의 예로 많이 쓰이고, 복잡적응계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현재 얼음인데 바로 수증기 원한다고 그쪽에 집중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화된 진단을 경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글은 제 뉴스레터인 Tony in Weekly에 발행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