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길에서 길을 묻는 부자 문답
연간 수십만이 완주하는 까미노입니다. 거기에 한명 더 완주한게 대수이겠습니까만, 까미노 가서 느낀건 그 많은 완주는 각자 최선의 분투란 점입니다. 십수년전 부상 당한 무릎이 약점이라, 남들 하는 완주 나만 못하는거 아닌가 걱정을 했습니다. 걸어 보니 치기였습니다. 남 눈치는 사치고, 저와의 싸움이 더 중요했습니다.
길게 자리를 비웠다 복귀해 아직 정신이 없는 편이지만, 일단 잘 다녀왔다는 인사 전합니다.
아, 부자간의 문답 어땠는지 물어보시는 분이 많았는데, 진짜 좋았습니다.
매일 오전, 오후 전력을 다해 걸은 후, 쉬는 동안 4개 정도씩 묻고 답했습니다. 탁 트인 길이고, 고생으로 혼이 나간 상태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정제된 답은 언감생심, 가식적이지 않은 속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어요. '가장 아름다운 비행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같은 가볍지만 흥미로운 질문부터, '아빠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는지 속박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같이, 생각을 오래 해야하는 질문도 많았습니다.
질문 뿐 아니라, 걸으면서 정말 많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걷는 동안 풍경을 보다, 그냥 수다를 떨다 저도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기억, 먼 친척 이야기, 산업시대 이야기들이 발에 채이듯 툭툭 생각나거든요. 어차피 심심한채로 6시간 이상 매일 걸으니, 일상에서 망각된 자잘한 이야기도 재미난 컨텐츠가 됩니다.
어찌보면, 까미노 걷는 동안 부자의 대화는 거대한 메모리 전송 (mass memory transfer)이었어요. 떠올릴수 있는 거의 모든 기억을 말로 전송해버렸습니다. 아들에겐 뭔가 이해의 폭이 커진 길의 대화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는 아들의 성장한 모습을 봐서 좋았습니다. 혈기가 왕성한 나이인데, 시종 인내하고 티안나게 배려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물론 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요. 제 맘 속, 소년의 모습에 머물러 있던 아들이 청년을 넘어 동료 성인이 된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희가 나눈 이야기는 아들이 틈나는대로 정리해서 여기에 올리도록 할게요. 따뜻한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